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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3]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착함의 여러 스펙트럼행간의 접속/문학 2020. 12. 20. 11:04
책이름: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
지은이: 이기호
펴낸곳: 문학동네
펴낸때: 2018.05
이기호의 소설집이다. 이 소설집은 소설 제목들에 사람 이름이 다 들어간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람 이름, 고유명사가 들어간다는 것은 보편성이 아닌 특별함이 있다는 것인데, 소설을 훨씬 현실감 있게 만드는 느낌이다. 인상적인 작품으로는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와 「오래전 김숙희는」의 연작, 「한정희와 나」 등이 있다.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은 용산 철거민 참사 때 경찰 특공대의 콘테이너를 옥상 망루로 올리기로 했다가 다른 사정으로 빠진 크레인 기사와의 인터뷰를 담은 소설이다. 인터뷰에서 인터뷰이의 질문이나 반응은 하나도 없이 오직 인터뷰 대상자의 대답으로만 소설이 구성되어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적 상상력으로 그때의 뒷이야기를 파헤치고, 그 때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어떤 진실을 캐내는 것인 줄 알고 잔뜩 기대하고 읽었는데, 그런 얘기는 없고, 과중량 차량은 다리를 건널 수 없어서 가지 못했다는 얘기를 한다. 이게 뭔가 싶은데, 인터뷰 대상자가 마지막에 이런 얘기를 한다.
저기요.... 나, 근데 아까부터 진짜 궁금한 게 하나 있었어요.... 아니, 아니, 다른 게 아니고..... 거 용산에서 일어난 일 그거 말이에요..... 지금 형씨가 그걸 쓰겠다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그거 때문에 우리가 그 난리를 쳤고.... 한데요..... 그걸 쓰려고 하는 사람이..... 하필 왜 나를 찾아왔어요? 기출이 그 새끼하나테 다 듣고서도 나를 찾아온 거잖아요? 그러니까, 난 그게 진짜 이상하다는 거예요...... 거기 있었던 사람들을 만났어야지. 거기에 갔던 크레인 기사를 만났어야지, 왜 나를 찾아왔냐.... 나는 그게 진짜 궁금한 거예요...... 그게 정상 아니에요? 거기에 갔던 크레인 기사를 만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소설을 잘 몰라서 그러는 거예요? 아이, 씨발, 그게 맞는 거 아닌가? 난 이게 뭐..... 할 말도 없고..... 그러니까 자꾸 구질구질한 이야기나 하게 되고......
진실을 밝히려면 당시에 현장에 있던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언저리에 있던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진실을 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서가 아닐까? 그러면서 동시에 실제 작가 이기호는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자기 반성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크레인 기사의 목소리도 결국 실제 작가에게서 나오는 것이니까.
「나를 혐오하게 될 박창수에게」와 「오래전 김숙희는」은 연결되는 작품이다. 남편을 살해했지만 경찰이 확실한 증거를 잡지 못해 용의 선상에만 있던 채로 생활하던 김숙희는 어느날 자수하고, 경찰서에서 작성한 진술서가 소설의 내용이 된다. 김숙희는 박창수와 제주도 여행을 통해 다시 잘 지내기로 하는 얘기를 들은 후 서울로 와서 자수를 한다. 15년 전 남편은 자기가 죽였다고..... 그럼 박창수는 그 후에 만난 남자라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남편을 만났을 때의 이야기로 빠진다. 남편은 이삿짐 센터 일을 하면서 김숙희에게 대학에 가도록 용기도 주고, 등록금도 대주면서 응원하면서 힘이 되어 주고, 김숙희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가 된다. 그러나 유치원 교구 영업 사원 정재민을 만나고 바람을 핀다. 그러다 남편에게 바람핀다는 사실을 여러번 말했는데도 남편이 반응이 없자 그를 죽인다. 그럼 박창수는 누구인가? 박창수는 그 후 유치원을 그만 두고 길음동에서 호프집을 운영할 때, 동거했던 남자이다. 그 전에 두 명의 다른 남자와 동거를 한 적도 있다. 박창수는 술을 안 마셨을 때는 얌전했는데, 술만 마시면 욕하고 폭력적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남자와 사는 이유는 그런 일 없이 평안하게 되면 생각이 많아지고 견딜 수가 없게 되니까.... 그리고 남편을 죽인 이유는 자신이 생각한 반응과는 달라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바람을 피웠다고 했을 때 화도 내지 않고 그냥 듣고 싶지 않다는 투로만 반응하니까.... 자신이 무시당하고, 또는 자신만 나쁜 사람으로 만들고, 부끄럽게 만들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남편이 자신에게 약을 먹였듯이 자신도 박창수에게 약을 먹인 것을 고백하면서 자신도 남편과 같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이 소설을 읽고 이것으로 끝난 것인가? 같이 바람을 피웠던 정재민은 어떻게 된 것이지? 하고 생각하고 다음 작품을 읽을 때 그 답을 찾았다.
「오래전 김숙희는」은 김숙희와 바람을 피웠던 유치원 교구 영업사원 정재민의 이야기이다. 김숙희가 자수를 하자 참고인으로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는데, 조사의 과정에서 공범으로 인정되어 정재민의 인생이 한순가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면서 조마조마하는데, 결국 무사히 풀려난다. 이 소설은 앞 작품과 연결되면서 소설을 한층 완성도 있게 만든다.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지만 결론으로 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한정희와 나」에서는 아내를 한동안 키워주셨던 의붓부모님의 손녀를 한동안 키워주게 되면서 그 아이와 겪은 일을 쓴 소설이다. 나는 소설가이고, 한정희는 그 아이이다. 그 아니는 내 앞에서는 반듯한 소녀이지만 학교에서는 왕따를 일으키는 학교폭력 가해자이다. 그런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그 가운데에서 작가로서의 고통과 현실에서의 고통에 대해서 고백을 하는데, 이는 실제 작가 이기호의 고백이기도 하다.
작가는 숙련된 배우와도 같아서 고통에 빠진 사람에 대해서 그릴 때도 다음 장면을 먼저 계산해야 하고, 또 목소리 톤도 조절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아서 고통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그게 잘 되지 않는 고통.... 어느 땐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고통이란 오직 그것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어쩐지 내가 쓴 모든 것이 다 거짓말 같았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해서 쓰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쓰는 글, 나는 그런 글들을 여러 편 써왔다.
작가는 결국 상상으로 글을 쓰는데, 그 상상이 얼마나 현실과 차이가 없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직접 겪지 않고서 쓰는 것은 결국 한계가 있을테니까..... 작가로서 항상 고민해야 하는 문제같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다 착하다. 살인을 했어도, 폭력을 행사했어서도 악한 인물의 전형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절대적인 악인은 없고, 매우 착하고, 적당히 착하고, 살짝 착하고, 애매하게 착한 인물들이 여러 가지 사건들을 애매하면서도 불확실하게 만들어서 우리를 더 고민하게 만들고, 어정쩡하게 만드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소설들이 참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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