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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1] 김 박사는 누구인가?: 니 이야기를 해봐행간의 접속/문학 2020. 12. 7. 15:22
책이름: 김박사는 누구인가
지은이: 이기호
펴낸곳: 문학과지성사
펴낸때: 2013.04
이기호의 소설집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인상적인 작품으로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 「김 박사는 누구인가?」 정도를 뽑아볼 수 있겠다.
「밀수록 다시 가까워지는」은 시골 출신의 삼촌이 서울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때에 차를 몰면 여자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할머니가 프라이드 차를 사주고 그 차를 몰면서 있었던 일들을 '나'가 되짚어 가는 이야기이다. 삼촌은 공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 여자를 차로 데려다 주면서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했지만 못했다. 한편 같은 공장에 다니던 고모는 노동운동을 감찰하는 경찰인 고모부에 빠지게 되면서 노동 운동의 정보를 흘리게 되고, 삼촌은 프락치로 몰리는 일들을 겪는다. 이런 이야기들을 시간 순으로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역순행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드러내기 때문에 독자들을 점점 빠지게 만든다.
「김 박사는 누구인가?」는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교사 지망생이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상담하는 Q&A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최소연은 공부를 하는 중에 자신도 모르는 자아가 자신의 머리 속에 들어와서 누군가를 심하게 욕하는 소리를 듣게 되는데, 그것에 대한 상담을 하는 내용이다. 상담을 통해서 어느 정도 차도를 보이고, 그것이 어릴 적 어머니와의 어떤 일화 때문인 것으로 추측이 된다. 즉, 아버지가 출장이 많을 때에 어머니와 갈등이 많았는데, 아마도 바람을 피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어머니는 그 상대에게 심한 욕을 하지는 못하고 끙끙 앓으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가 딸인 최소연에게 쏟아부었던 것이다. 그 때의 경험이 최소연에게 잠재되어 있다가 강박적인 상태에서 드러난다는 것이다. 여기서도 과거의 일들을 하나 하나 찾아가면서 이야기를 끼워 맞추는 재미가 하나가 있다.
또 하나의 재미는 상담자인 김 박사의 태도에 관한 것이다. 김 박사는 시종일관 거리를 두면서 좋은 말로만 최소연의 내면이나 감정에 진입하지 않는 객관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런 김 박사의 태도에 최소연은 5번째 편지에서 그런 듣기 좋은 껍데기 같은 얘기만 하지 말고, 김 박사 자신의 얘기를 하라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싶다고 요청한다. 그런데 작가는 여기에 대한 대답을 밑줄만 그어 있는 빈 칸으로 놓아두고, 독자들 보고 김 박사가 무슨 말을 했을 지 스스로 채우라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6번째 질문에서 최소연은 김박사한테 욕을 한다. 내면에서 나오지 못하게 진정시켰던 그 욕을 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소설집 맨 뒤에 평론가의 평론에서는 소설가가 평론가에게 퍼붓는 솔직한 감정 표현인 것 같다는 얘기도 한다. 평론가는 뒷짐 지고 소설과 거리를 두면서 소설을 이리 재고 저리 재고 멋있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모습이 김 박사가 상담하는 것 같고, 최소연의 욕은 평론가들한테 남 얘기 하지 말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라고 외치는 소설가의 주장 같다고 한다.
이기호의 소설집에는 항상 종교적인 이야기, 운동권 이야기 등이 항상 등장하는데, 역시 이 소설에도 등장하여 일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소설들의 결말이 대부분 다 열린 결말이고, 독자들이 채워야 할 것들이 많아서 한 번 보고 덮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 소설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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