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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9] 최순덕 성령 충만기: 다양한 이야기 방식행간의 접속/문학 2020. 11. 29. 21:49
책이름: 최순덕 성령 충만기
지은이: 이기호
펴낸곳: 문학과지성사
펴낸때: 2004.10.
이기호의 소설들을 모은 첫번째 소설집이다. 기발한 상상력과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골라먹는 재미를 주는 소설집이다. 인상적인 작품은 「버니」, 「옆에서 본 저 고백은」, 「백미러 사나이」, 「최순덕 성령 충만기」 등이 있다.
「버니」는 랩의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 유흥업소에서 여성들을 공급하는 보도방에서 일하는 남자가 유흥업소에서 벌어지는 부조리한 모습들을 랩으로 쏟아내고 있다. 유흥업소에 처음 일하는 버니라는 여자가 랩을 잘해서 기획사의 눈에 들어서 유명 래퍼가 되자 기획사 매니저가 그녀의 과거를 묻어버리기 위해 유흥업소와 보도방 사람들을 입단속 시키는 얘기인데, 이런 입단속에도 불구하고 서술자는 랩의 형식으로 이를 까발리면서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 말라는 것을 거침없이 내뱉는 내용을 담기에는 랩의 형식이 딱 들어맞았던 것 같다.
「옆에서 본 저 고백은」은 앵벌이 집단에서 벌이가 좋지 않아 조직 폭력배로 이직하기 위해서 자기소개서를 쓰는 과정을 그린 두 양아치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자기소개서를 쓰기에는 자신들의 가방끈이 너무 짧아서 PC방 알바인 팔대이에게 대필을 요구하지만 팔대이는 그들에게 진정한 고백을 요구한다. 원래 자기소개서에는 진정성이 있어야 업체에서 감동 받는다고.... 근거없는 사실의 나열과 확인할 수 없는 열정은 껍데기일 뿐이라면서...... 결국 이들은 자신의 삶을 되짚어보면서 삶의 진정성을 찾으면서 팔대이가 그들의 자기소개서를 쓰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팔대이가 집착적으로 진정성을 요구하면서 양아치들은 위축되고, 팔대이의 폭력으로 자기소개서는 기한 내 제출되지 못한다. 대신 그 때까지 쓴 그들의 자기소개서는 앵벌이 할 때의 호소문으로 사용되어 벌이가 나아지는 아이러니를 보인다. 양아치들의 조폭 입사 자기소개서라는 발상이 기발하면서 재미있고, 이를 위해 진정성이 요구되고, 그 진정성이 엉뚱한 곳에 이용되는 모습이 재미있게 연결되는 소설이다.
「백미러 사나이」는 눈을 감으면 자신의 뒤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나이의 이야기이다. 그는 공부는 못했지만 학력고사에서 눈을 감고 뒷 사람의 답안을 컨닝해서 대학에 갔고, 우연히 학생운동을 하는 여학생을 마음에 두다 운동권이 되었고, 한 때 선봉대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앞이 점점 보이지 않고, 뒤만 보이는 현상이 벌어져 결국 속세를 떠나는데, 시간이 흘러 운동을 했던 총학생회장은 구청장 선거에 나가고, 운동권 여학생은 배타적인 여성운동을 하면서 과거의 운동의 순수성을 잃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최순덕 성령 충만기」는 모태신앙인 최순덕이 유부남 바바리맨을 쫓아가 신앙인으로 만들었다는 얘기인데, 성경 말투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성경을 보면 2단으로 되어 있고, 장과 절로 나뉘어져 문장 앞에 숫자가 있는 방식이다. 그리고 말투도 구한말의 의고체와 같은 말투(~했거늘, ~했더라. ~하옵소서)를 사용하여 현대적인 소설을 성경식으로 쓰면 이렇게 될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성스러운 성경의 형식에 담은 내용은 바바리맨을 쫓아가 그를 신앙인으로 만드는 약간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라서 형식과 내용 사이의 간극이 이 소설에서 재미를 주고 있다.
이처럼 이기호의 소설 속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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