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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14] 역사의 역사: 역사는 서사의 힘
    행간의 접속/역사 2020. 9. 3. 13:06

    책이름: 역사의 역사

    지은이: 유시민

    펴낸곳: 돌배게

    펴낸때: 2018.06

     

    유시민이 쓴 역사 관련 책인데, 어떤 지역의 역사를 다룬 것이 아니라 역사책에 대해 소개하면서 역사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은 책이다.

     

    1. 역사가와 역사학자

     

    이 둘이 비슷한 것 같은데 다른 의미라고 한다. 영어로는 똑같이 'historian'인데말이다. '역사학'은 학문이고, '역사 서술'은 예술이다. 역사학자는 역사를 분석하고 연구하고 비평하며, 역사가는 역사를 서술하면서 창작한다. 이 책에서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역사가를, 역사 이론서가 아니라 역사서를 다룬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의미가 있었다고 여겨지는 역사가와 그의 역사서를 언급한다. 

     

    2. 헤로도투스의 '역사'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최초의 역사서를 지은 사람인데, 이 사람의 '역사'는 사실 그리스의 통사가 아니라 페르시아와의 전쟁만을 다룬 역사서이다. 그런데 이 역사서를 쓰기 위해서 역사가는 문서로 전해지는 자료는 거의 없이, 구전되는 이야기와 비석의 글 정도를 조합해서 상상을 하면서 썼다고 한다.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되는 환경에서 집필을 한 것이라서 사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서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고 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역사가는 그 당시의 환경에서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고, 어쩌면 비평이 아닌 창작을 하는 역사가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투키디데스도 그리스의 역사가이고,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전쟁을 다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썼고, 헤로도투스와 비슷한 집필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사료가 부족하여 신뢰성에 의심이 드는 이런 역사책이 서양의 고전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읽는 이유는 뭘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서사의 힘'이다. 그들은 뚜렷한 목적을 품고, 명확하게 특정할 수 있는 대상에 관하여, 최대한 사실에 토대를 두고,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으면서 지적 자극을 받고 정서적 공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야기를 꾸몄다.

    그럼 우리는 이 책을 꼭 읽어야 할까? 지은이는 당시의 사회와 지리 등 모르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몰입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3.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은 한나라 때의 의전과 기록 등을 담당했던 직을 수행하던 사람이다. '사기'는 황제와 그에 준하는 권력층의 업적을 서술한 본기 12권, 역사적 사실을 연대순으로 정리한 표 10권, 문화와 제도의 특징을 보여주는 서 8권, 황가는 아니지만 뚜렷한 흔적을 남긴 가문을 다룬 세가 30권, 인물 평전인 열전 70권으로 되어 있다. 이렇게 방대한 저서를 또 후대의 사람들은 열시히 읽는다. 그 이유를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사마천은 사실을 기록하는 일에 엄청난 열정을 쏟았지만 그것을 역사 서술의 유일한 목적으로 삼지는 않았으며 인간 본성의 빛과 그늘, 삶의 의미, 군주의 덕성, 권력의 광휘와 비루함, 반복되는 사건의 패턴을 포착해 드러내려고 노력했다. 그랬기 때문에 사회와 인간을 연구하는 인문학자들, 지나간 역사를 보면서 삶의 보편적 의미를 사유하는 평범한 역사 애호가들,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방법과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에 관심을 가진 기업인과 정치인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사기'를 읽는다.  

     한마디로 인간의 본성과 존재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다는 말이다.

     

    4.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

     

    이븐 할둔은 북아프리카의 역사서를 썼지만 사실상 인류사를 쓴 인류학자에 가깝니다. 이슬람 문명에 대한 기록이 역사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역사서설'은 '성찰의 책' 3부작 중 서문과 서론, 본론 1부를 묶어서 '서설'이라는 제목으로 붙인 책이다. 이 책에서 역사 뿐만 아니라 지리학, 인류학, 정치학, 사회학 등의 내용도 담으면서 폭넓게 지중해의 삶과 풍경과 시간을 담았다. 이런 '역사서설'을 읽는 이유를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역사서설'이 오늘날까지 역사서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는 보편적 역사법칙을 밝혀서가 아니라 귀중한 역사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발견했다고 믿었던 역사법칙을 논증하는 과정에서 7세기에 탄생한 이슬라 문명과 아랍 사회의 현황 및 특징을 기록했고, 당시 아랍 지식인들이 인간과 문명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정밀하게 서술했다. 이런 정보 때문에 '역사서설'은 이슬람 문명의 발생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귀한 길잡이가 되었다. 이 책은 또한 시대를 한참 앞서간 과학적 사고방식과 인문학적 상상력을 담고 있어서 만만치 않은 재미를 맛볼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세계사에서 이 사람 이름을 살짝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5. 랑케

     

    랑케는 이전의 역사가와는 달리 풍부한 문헌 자료를 접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있었던 그대로의 역사'를 쓰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게 가능한가? 문헌 자료가 아무리 풍부해도 있었던 그대로를 글로 재현할 수는 없다. 자료는 아무리 많아도 완벽할 수 없고, 설사 완벽한 자료를 갖고 있더라도 이 중 의미있는 것을 취사선택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또 주관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글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한 이유는 타고난 보수성향과 현실의 권력자들로부터 명예와 지위를 얻으려는 처세술이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문헌학과 사료 연구에 깊이 있게 빠지다 보니 이를 중시하는 경향이 객관적 역사를 주장한 이유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럼 지은이는 이 역사가를 이 책에 넣었을까? 배울 점도 많지만 반면교사로 삼아서 인간미 없는 역사에 대해서 생각해 보라는 의미인 것 같다.

     

    6. 마르크스

     

    마르크스는 역사가는 아니지만 사회 변화에 대한 사상과 이론을 펼쳤기 때문에 역사학과 인문학, 사회학에 강력한 충격을 주었다. 그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력이 무엇이며 사회가 발전하는 법칙을 찾아내고 인간의 역사는 공산주의로 귀결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보고,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역사가의 역할을 역사가가 아님에도 충실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예측이 많이 빗나가기는 했지만.... 하긴 점쟁이도 아닌데 예측이 언제나 맞아 떨어지겠는가? 하물며 변수가 많은 역사에서.... 

     

    7. 박은식, 신채호, 그리고 백남운

     

    박은식은 개명 유학자였다. 쓰러져가는 나라, 빼앗긴 나라를 보면서 나라를 다시 찾는 민족의 투쟁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에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의 독립운동을 하는 모습을 담은 당대사를 썼다. 

     

    신채호는 조선의 정신을 살려내기 위해 조선의 상고사를 새로 썼다. '조선 상고사'에서 중국의 왕조에 굴하지 않는 진취적인 모습을 강조함으로써 나라가 망한 민중의 의식에 민족 정신과 자부심을 가지도록 했다. 그리고 그의 유명한 역사철학인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라는 생각도 밝힌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 '아'와 '비아'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마음의 활동 상태의 기록이다. 세계사는 세계가 인류가 그렇게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요, 조선사는 조선 민족이 그렇게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다. 무엇을 '아'라고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는가? 주관적 위치에 선 자를 아라 하고, 그 밖의 것을 비아라 한다. <중략> 아와 비아의 접촉이 잦을수록 비아와 아의 분투가 더욱 맹렬해져 인류 사회의 활동은 끊임없이 계속되며 역사의 전도가 완결될 날이 없다.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이다. 비아를 정복하여 아를 드러내면 투쟁의 승리자가 되어 미래 역사의 생명을 잇고, 아를 없애어 비아에 바치는 자는 투쟁의 패망자가 되어 과거 역사의 묵은 흔적만 남긴다. 이는 고금의 역사에 불변하는 원칙이다.

     

    백남운은 사회주의 계열의 경제사학자이다. 공산주의의 역사발전 5단계설에 맞추어 우리나라의 역사도 원시공산사회(고조선)-노예제사회(삼국시대)-봉건사회(통일신라와 고려, 조선)-자본주의사회라는 법칙에 따라 발전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이 법칙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딱 들어맞지는 않은 것 같은데 그가 이렇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주의 사상을 갖고 있으니까 그렇게 했을 수도 있는데, 일제에 대한 저항의 측면에서 이를 적용한 것일 수도 있다. 즉, 일제는 조선은 자신의 힘으로 봉건제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일제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를 폈고, 이에 대한 반박으로 조선시대에 자본주의의 싹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배에 벗어날 자격이 있다고 한 것이다. 

     

    8. 에드워드 H. 카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강연집이다. 대학생들과의 대담을 엮은 책인데 역사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문장도 들어 있다. 이에 대해서 지은이는 이렇게 설명한다.

    사실은 과거의 것이고 역사가는 현재에 산다. 과거의 사실 가운데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을 선택하는 기준과 그 사실들을 일정한 관계로 맺어 주는 해석의 관점은 역사가를 둘러싼 현재의 환경, 역사가의 경험, 역사가의 이념과 개인적 기질의 영향을 받으며 형성된다. 그래서 사실과 역사가의 상호작용은 불가피하고 자연스럽게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먼 과거에 관한 것이라도 역사는 현대사일 수밖에 없다. 역사란 오늘을 사는 역사가들이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과거 사건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9. 슈펭글러와 토인비, 그리고 헌팅턴

     

    토인비의 문명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주었다고 하는 슈펭글러는 '서구의 몰락'이라는 책을 썼는데, 지은이는 이 책을 '어마어마한 독서 이력을 가진 천재만이 쓸 수 있는 최고 수준의 횡설수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읽는 것을 권하지는 않으면서 커다란 통나무를 깎아서 나무 젓가락을 만드는 느낌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이 책에서 슈펭글러는 서유럽의 문명을 중심으로 한 세계사를 비판하고 몰락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토인비는 개별 국가나 민족의 역사가 아닌 보다 큰 관점인 문명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았다. 그래서 현존하는 문명을 나누고, 언제 어디서 존재했는지, 특징은 무엇인지, 흥망성쇠의 과정은 어떠했는지, 문명끼리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등을 분석했다. 그리고 문명은 도전과 응전의 산물이라고 하면서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하면 발전하고, 실패하면 쇠퇴한다는 것을 얘기한다.

     

    헌팅턴은 토인비의 이론을 국제정치로 가져와서 '문명의 충돌'을 썼다. 그러면서 문명의 충돌을 막기 위한 방법도 얘기했는데, 인류가 다문명 체제임을 인정하고 분쟁이 전쟁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말이 쉽지. 머리는 이해하지만 마음이 따라가지 않고, 경제적인 문제까지 얽히면 충돌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10. 재레드 다이아몬드, 유발 하라리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생리학, 조류생태학, 진화생물학, 생물지리학, 문화인류학 등을 연구한 과학자였다. 그는 뉴기니에서 연구를 하던 중 현지인의 질문을 받는다. 백인들의 문명이 발전하는 동안 자신들은 왜 그렇게 발전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총, 균, 쇠'인데, 그 세부내용은 간단하다. '우연히' 또는 '운이 좋아서'이다. 유럽인이 다른 대륙의 사람들보다 뛰어난 능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우연히 유리한 환경을 만난 덕분일 뿐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대답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단다.

     

    유발 하라리는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질문을 더 확장시켰다. 문명 이전의 인류, 즉 호모 사피엔스의 기원부터 탐구하면서 지구 상에서 여러 인종 중 호모 사피엔스가 이토록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그는 인류의 과거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도 미래에 대해서도 예측을 하는데, 미래에는 호모 데우스(신이 된 인간)가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호모 데우스는 과학 혁명으로 새로운 인류가 등장한다는 것인데, 좀더 자세히 얘기하면 환경의 오염, 자연 파괴, 핵무기 등으로 인간은 멸종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11. 마무리

     

    마지막 에필로그에 지은이는 역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다.

    나는 역사를 역사답게 하는 것이 '서사의 힘' 또는 '이야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의 꿈과 욕망, 사람의 의지와 분투, 사람의 관계와 부딪침, 사람이 개인이나 집단으로 겪은 비극과 이룩한 성취, 사람이 세운 권력의 광휘와 어둠, 사람이 만든 문명의 흥망과 충돌과 융합게 관한 이야기다. 변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과 본성, 예측할 수 없는 우연, 사회 제도와 자연환경이 뒤엉겨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 가운데 당대의 역사가들이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엮어낸 서사다. 역사의 역사가 드러내 보이는, '발전'이라고 하는 몇 가지 역사 서술 환경과 내용과 관점과 방법의 변화는 힘 있는 서사로 구현할 때만 독자의 생각과 감정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역사의 역사에 남은 역사서들을 만나 본 소감이다.

    읽으면서 내가 역사서를 직접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친절하게 요약하고 설명해줘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역사는 '서사'라는 점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유시민 역시 글 잘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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