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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9]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이게 진짜 소설 쓰는 방법
    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20. 7. 23. 10:42

    책이름: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곁이름: 소설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지은이: 정유정, 지승호

    펴낸곳: 은행나무

    펴낸때: 2018.6

     

    인터뷰이 지승호의 인터뷰집이다. 대상은 소설가 정유정으로부터 듣는 소설을 쓰는 방법, 과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늘 궁금해해서 소설 쓰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놓은 책들을 좀 찾아읽어봤는데, 공감이 되지 않았다. 좀더 자세하고 좀더 구체적인 방법들이 있을 것 같은데, 그 이상의 깊이로 설명해주는 내용은 없었다. 소설가들은 그렇게 하면 된다고 하는데 정말 저렇게 하면 되기는 될까 싶은 생각이 많이 들었다. 뭔가 설명들이 미진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더 공감했던 것은 이런 소설은 아마 이렇게 했을 것이다라고 내가 미루어 짐작했던 것들에 대해서 정말 그렇다고 얘기해주기도 하였다. 치밀하게 준비해서 내용을 만들어내는 소설들.

     

    1. 삶과 죽음 사이의 자유의지

    죽음이 우리 삶을 관통하며 달려오는 기차라면, 삶은 기차가 도착하기 전에 무언가를 하는 자유의지의 시간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원하는 것을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시간. 내 시간 속에서 온전히 나로 사는 시간.

    삶과 죽음 사이에서 뭔가를 하려고 하는 인간의 모습이 소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2. 소설을 쓰게 만드는 '질문'에 대한 기준 두 가지

     

    욕망과 가치. 이 질문을 생각하면 잠도 오지 않고 이것만을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면서 들뜨고 설레고, 피가 끓는 것, 열병. 이런 욕망을 느낄 수 없다면 2~3년이나 걸리는 장편을 쓸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가치는 독자들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인가 하는 것이다. 세상에 나올 이야기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등이다.

     

    이런 설렘과 열병을 느껴본 적은 나는 여행을 준비하고 갈 때 느꼈었다. 일상에서는 그렇게 피 끓는 열병까지는 잘 느껴보지 못했다.

     

    3. 개요

     

    개요를 짜야 하는데, 이를 위한 여섯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놓는다고 한다.

    등장인물은 어떤 사람들인가: 개인사. 남녀, 신체 특징, 나이, 성격, 감정, 말수, 정치 성향, 직업 등....
    그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욕망. 겉으로 드러난 욕망과 내재된 욕망
    그들은 왜 그것을 원하는가: 욕망의 동기. 겉으로 드러난 욕망의 동기, 내재된 욕망의 동기
    그들은 어떻게 그것을 성취하는가: 인물의 행동과 선택
    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대립, 갈등, 장애물.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사건과 변화. 외면적인 사건과 변화. 내면적인 사건과 변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간략하게 달고,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데, 이 요약문이 이야기의 핵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잡아주는 기준점이 된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간략하게 설명하는 데에도 유용하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 드는 생각은 이 질문들에 대해 답을 찾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다.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취향으로 인물을 만들 수도 없고, 많은 욕망과 선택과 갈등들에 대해서도 나중에 다른 요소들과 치밀하게 연결되는 것도 고려해야 하고, 그러니 대답을 너무 쉽게 하면 개요가 너무 허술해서 이야기가 힘이 없을 것 같다.

     

    4. 자료 조사: 소설가는 전문가

     

    소설을 쓸 때 단편적이고 상식 수준의 지식으로 쓴다면 독자들은 대번에 오류를 찾아내고 개연성과 핍진성에 제동을 걸 수 있다. 따라서 소설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자료 조사를 해야 하는데, 그냥 인터넷 좀 찾아보는 정도로 해서는 안 되고 전문가 수준으로 자료 조사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작가는 자기가 만드는 세계에 대해 신처럼 알아야 한다. 그래야 그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다. 내가 만든 세계에선 파리 한 마리도 멋대로 날아다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이 작가가 작품 속 세계를 얼마나 치밀하게 만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그렇게 장악하려면 관련되는 지식은 당연히 전문가급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정유정 작가는 관련되는 전문서적을 수십 권 쌓아놓고 그 책을 시험 공부하듯이 노트필기하고 요약하고 밑줄 그으면서 공부하고 자기 자신에게 강연하듯 말로 풀어내면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러려면 차라리 학위를 따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소설은 그냥 상상으로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 전부가 아닌 것이다. 

     

    5. 공간: 소설가는 화가

     

    작가는 주된 공간을 설정할 때 그림으로 만들어놓기도 한단다. 사건이 벌어진 마을의 지도를 그린다거나 주인공 집의 평면도를 그린다거나 한다. 그래서 취재를 위해 배경이 되는 마을에 갔을 때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스케치북에다 스케치를 했다고 한다. 이제는 소설가가 그림까지 그려야 한다. 

     

    6. 등장인물

     

    주인공의 기본적인 자질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적절성이다. 소설의 절정 부분을 주도하면서 작가의 주제를 구현해내기에 적절한가이다. 
    두 번째, 주인공은 욕망을 가져야 한다. 개요부분에서 얘기한 외적인 욕망과 내적인 욕망을 말한다. 
    세 번째, 주인공에겐 자유의지가 있어야 한다. 
    네 번째, 독자가 동일시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한다. 독자와의 연결통로가 있어야 한다. 
    다섯 번째, 성격에 겹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 자아, 자식으로서으이 자아, 부모로서의 자아 등. 
    여섯 번째, 보편성을 가져야 한다. 너무 개성적이면 본질적인 이야기를 삼켜버린다. 

    이 중 세번째 자유의지에 대한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쉽게 말하면 스스로 뭔가를 하려고 하는 것을 말하는데 뭔가를 할 때 이게 잘 풀리지 않으면 변화를 추구하고 행동하게 되고 능력의 한계치까지 자신을 밀어붙이고 그 과정에서 고통 받고 견디고 감내하는 것. 그래서 작가는 자유의지를 '추구와 의지와 인내가 합해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삶의 의미를 드러낸다고 한다. 

     

    7. 초고: 작가의 두려움

     

    등단한지 10년이나 된 작가도 두려움이 있다고 한다. 그렇게 그 두려움을 이렇게 말한다.

    초고를 시작하기 직전엔, 두려움을 넘어 막막하기까지 하다. 알래스카 설원에 꽃삽 하나 들고, 그걸로 도시를 건설하겠다고 나선 기분이다. 나 자신이 너무나도 의심스럽다. 내가 과연 이걸 할 수 있을까? 초고를 끝내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면, 정말로 의심스럽다. 과연 이걸 끝낼 수 있을까? 퇴고를 하고 나면, 세상에 나가 어떤 평가를 받을지 두렵다.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글쓰기도 결국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두려움과 의심의 압박을 이겨내야 한다. 이겨내지 못하면 펜을 놔야 한다.

    마지막 말, 두려움과 의심을 이겨내지 못하면 펜을 놔야 한다. 두려움과 의심이 나를 압박하더라도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는 의지가 소설가를 소설가로서 세울 수 있게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초고는 완결성을 따지지 않고 쓴다고 한다. 90%는 버릴 생각으로. 그 얘기는 수정과 보완을 엄청 많이 한다는 것인데, 초고라기보다는 수정과 보완을 위한 재료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8. 플롯

     

    플롯은 카드로 작업을 한다고 한다. 초고를 장면별로 잘라서 표시하고, 에피소드와 사건을 분류하고, 장면들을 순서대로 요약해 카드에다 정리하고, 사건과 에피소드를 적절히 배여하면서 순서를 만든다. 초고는 시간순으로 썼지만 장면의 재배치를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만든다. 그러면서 서브플롯과 메인플롯 등을 정리하면서 장, 부, 프롤로그, 에필로그 등을 설계한다.

     

    이 부분을 읽고 플롯이 아주 복잡한 소설의 작가들이 작품을 쓸 때 그냥 계획하지 않고 쓰거나 머릿속으로만 쓸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이렇게 조각조각 카드를 갖고 쓸 것 같다고 예상했는데, 정말로 이렇게 작업을 한다고 하니 반갑기까지 했다. 그리고 역으로 독자들이 작품을 정리하기 위해서 플롯들을 카드로 만들어서 배열하는 작업을 한다면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작가의 작업을 따라가는 것이니까....

     

    9. 절정과 결말

     

    작가는 가장 쓰기 힘든 부부을 절정이라고 했다. 절정에는 모든 갈등과 인과관계가 한 방에 폭발하면서 주인공이 주도해야 하고, 주인공의 최후의 행동이 나와야 하고, 작가이의 메시지를 포함해야 하고, 거기다가 상투적이지도 않아야 한다. 정말 이 모든 조건을 갖추기는 정말 힘들 것 같다.

     

    절정은 쓰기 힘들 것 같고, 결말은 정하기 힘들 것 같다.

    결말을 정하려면 먼저 주인공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사회적 욕망이든, 내적 욕망이든, 성적 욕망이든, 그것이 주인공의 인생을 뒤집어놓는 욕망이라야 한다. 그것도 원상복귀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두 번째로, 욕망을 이루지 못했을 때, 즉 목표달성에 실패했을 때 잃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야 한다. 잃는 것이 사소하다면 이야기도 사소해질 가능성이 크다. 전 재산이 백만 원인 사람이 만 원을 잃는다 해서 인생이 뒤집히는 것은 아니니까. 반대로 목표를 달성한다면, 이 때에도 삶이 뒤집히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아무 것도 바뀌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얼마나 스펙터클한 사건들이 있었는가와는 상관없이. 둘 다 취할 수도 있다. 흔히들 '아이러니 결말'이라고 부른다. 주인공은 목표 달성에 성공했으나 그 대가로 가장 중요한 것을 잃는다.

    이 중에서 선택하면 된단다. 주제에 가장 맞는 결말을. 아무튼 주인공의 삶은 무조건 뒤집어놓아야 한단다. 무서운 것들....

     

    10. 문장과 단어의 원칙

     

    첫째, 필요한 것만 쓴다. 최소한의 원칙. 둘째, 미학성보다 정확성을 우선한다. 셋째, 동사는 수식어의 도움 없이 스스로 땅을 딛고 설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걸 고른다. 넷째, 형용사는 아껴 써야 한다. 다섯째, 부사는 항생제 같은 거다. 

     

    문장과 단어에 대한 원칙이 없다면 각 문장들에 대해서 판단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이와 같은 원칙이 있다면 점검하면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11. 주제: 작가의 세계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한 세계관을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세계관이 아니라 자신이 옳다고 믿는 입장을 가져야 한다. 그 입장이 편견이나 편향에 의한 것은 아닌지 검열도 해봐야 한다. 검증할 수 있는 틀도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틀림없이 그렇게 살아야 한다. 소설 속에서도, 실생활에서도. 그래야만 진실이 된다.

    작가가 자신의 세계관을 주제로 삼고 소설을 형상화하고 그 소설의 가치관대로 살아감으로써 진실을 추구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느낀다. 

     

    12. 추천

     

    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과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궁금한 사람들에게 강력 추천한다. 그런데, 지승호의 역할이 너무 미미하다. 인터뷰어가 돋보이게 하는 것은 맞지만 그래도 이전의 다른 책들에서 보여주었던 주도성과 적절함이 잘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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