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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42] 달과 6펜스: 영혼과 문명 사이에서 우리는.....행간의 접속/문학 2018. 10. 2. 10:56책이름: 달과 6펜스지은이: 서머싯 모옴옮긴이: 송무펴낸곳: 민음사펴낸때: 2000.06책 이름으로만 알고 있던 작품이다. 굉장히 낭만적인 제목이라서, 그 제목만으로도 느낌은 좋다.내용은 폴 고갱을 모티브로 했다. 폴 고갱은 증권거래인으로 생활하다 어느 날 홀연히 남태평양의 타히티로 가서 그림을 그리고 살았던 화가이다. 이런 갑작스러운 인생 행로를 약간의 허구를 첨가하여 쓴 작품이다.소설에서는 찰스 스트릭랜드가 주인공이고, 그도 폴 고갱처럼 안정적인 증권 거래인을 그만 두고,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먼저 파리로 간다. 거기서 예술 활동을 하지만 인정을 받지는 못하고 병에 걸려서 위독한 상태까지 가지만 동료 화가의 도움을 받아 살아난다. 그런데, 그 동료 화가의 아내가 그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와 살지만 그녀의 갑작스런 자살로 파리의 생활을 마감한다. 이어서 마르세유 등에서 유랑을 하다 우연히 만난 사람으로부터 들은 타히티에 가게 되어 거기서 작품 활동을 하고, 아내를 얻고, 자식을 낳고, 살다가 문둥병에 걸려 죽는다.찰스 스트릭랜드가 왜 갑자기 그런 선택을 했을까를 파헤치는 것이지만 그것이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다. 그러나 그 생각의 단편을 알 수 있는 말들은 나와 있다.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걸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기 때문에 그것을 한다는 운명론적인 신념이 찰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말은 그가 파리에 있을 때 했던 말이라서 문명을 벗어난 타히티의 상황까지 포괄하지는 못한다. 파리와 마르세유에서의 혼란과 방황을 뒤로 하고 우연히 찾은 타히티는 그에게 희망처럼 여겨지는데, 결국 그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그리고, 책 뒤에 있는 제목에 대한 해설을 보면 그가 추구하는 것을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달'과 '6펜스'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세계를 가리킨다. 또는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암시하기도 한다. 둘 다 둥글고 은빛으로 빛난다. 하지만 둘의 성질은 전혀 다르다. 달빛은 영혼을 설레게 하며 삶의 비밀에 이르는 신비로운 통로로 사람을 유혹한다. 마음 속 깊은 곳의 어두운 욕망을 건드려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빠지게도 한다. 그래서 달은 흔히 상상의 세계나 광적인 열정을 상징해 왔다. '6펜스'란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은화의 값이다. 이 은화의 빛은 둔중하며 감촉은 차갑고 단단하다. 그 가치는 하찮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결국 이 작품은 달의 세계에 끌린 사나이가 6펜스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달은 문명과 떨어진 낙원에서의 예술 세계로 나타난다.이 과정에서 현실적인 생각을 해본다. 영국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해서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의 재산권을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하더라도 미리 얘기도 하지 않고, 어느날 갑자기 가버린 것은 그동안 함께 살았던 이들에 대한 도리가 아니지 않은가?그 다음 파리에서 도움을 받았던 스트로보 부부에 대한 그의 몰인정함이다. 그를 유일하게 인정해주었고, 그의 병간호까지 맡았고, 그가 아내를 데려가도 인정까지 했던 친구에게 일말의 미안함도 없이 냉정하게 구는 태도는 윤리적으로 맞지 않다. 사람이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예술가는 그렇게 비윤리적이어도 된다는 것인가? 예술적으로만 멋있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닌 것 같다.주인공의 이런 면모가 예술가다움을 보여주지만 사실은 그도 인간적인 구석은 있다. 타히티에서 만난 여인 아타에 대해서만은 진정으로 사랑하고 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본다면 문명에서의 인간들 사이에서의 윤리나 관습, 이런 것들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으로 몰인정함을 드러낸 것 같다.실제로 마지막 장면에 '나'가 스트릭랜드의 첫번째 부인을 영국에서 만났을 때 그녀는 찰스가 사람들로부터 천재 작가라고 인정을 받자 그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그를 자랑스러워 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작가는 이런 모습에서 문명인들의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이 사람의 일대기를 관찰자인 '나'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나는 작가이고 예술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찰스 스트릭랜드가 죽은 후 그의 작품이 인정을 받자 그에 대해서 사람들은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도 역시 그를 잘 아는 사람의 하나로서 그에 대한 얘기를 할 필요가 있어서 이 책을 쓴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작품은 '나'가 쓴 찰스 스트릭랜드의 회상기인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중간중간에 그에 대한 얘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하는 내용도 들어간다.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른다는 말을 하면서 자신이 그렇게 쓸 수밖에 없음을 얘기하는 부분은 친숙함도 느껴진다. 특히 중후반 정도 되는 타히티 생활에 대해서는 '나'가 타히티에서 그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를 접했던 사람들을 만나 들은 얘기로 그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런 간접적인 이야기 전달이 오히려 사실감을 부여하고, 독자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 같다. 꾸며진 얘기지만 꾸미지 않은 것 같은 느낌....
번역도 자연스럽게 되었고, 내용도 복잡하지 않아서 무난하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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