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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3]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2010년대 청년들에 대한 질적 연구행간의 접속/인문 2018. 5. 24. 16:09
책이름: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곁이름: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지은이: 엄기호
펴낸곳: 푸른숲
펴낸때: 2010.10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의 제자답게 학생들의 언어를 이끌어내며 그들의 언어로 사유하고 사회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수업을 진행하면서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정리한 것을 엮은 책이다. 2010년대 청년들에 대한 질적 연구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지은이는 세대론은 분명히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언어를 찾는 과정을 보는 것이고, 그들은 기존 세대와 다른 그들만의 언어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대학, 정치, 교육, 가족, 사랑, 소비, 돈, 열정 등 현재의 20대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그들의 생각을 그들의 언어로 풀게 하고, 거기에 대해서 지은이가 첨언을 한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는가 하면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있다.
새롭게 알게 되어서 인상적인 것들을 뽑아보았다.
사회는 청년들에게 스펙을 요구한다. 학점, 영어성적, 인턴 경력, 공모전, 해외연수 등.... 왜 이런 것들을 요구할까? 실제로 취업하고나서는 새롭게 직무교육을 할텐데.....
왜 자본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을 대학생들에게 요구할까? 현재 체제가 잉여를 해소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잉여를 생산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시장은 학생들의 스펙에 관심도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에서 스펙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를 계발하는 능력을 긍정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중략> 솔직히 말해 스펙은 이 잉여인간의 시대에 '자기관리'라는 도깨비 방망이로 탈락시킬 놈을 찾기 위해 강조되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시장의 무능을 '자유'의 이름으로 개인의 무능으로 돌려버린 것이 바로 스펙의 실체이다.
그리고 정치의 도덕화를 얘기한다. 정치의 도덕화는 도덕적인 잣대가 정치의 전면에 나선다는 것이다. 말 자체로는 정치가 도덕적인 것은 좋다. 그러나 상대를 비도덕적이라고 말하는 이는 도덕적인가? 그렇지 않다.
믿는다는 것, 그리고 그 언어로 말을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민주주의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을 믿지는 않는다. 이 두 가지 전혀 다른 태도의 접점이 바로 속물이다. 속물들은 도덕이 사기임을 잘 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도덕이라는 외피를 필요로 한다. 도덕을 자기를 돌아보기 위한 윤리로서가 아니라 남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무기로서 필요로 한다.
교육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특히 학교에 대한 불신을 언급한 부분은 뼈아프다. 그러나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교육이 과연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다. 어찌 보면 학생들은 교육의 실체가 폭력이라고 교실에서 몸으로 깨달아버렸는지도 모른다. 교육이야말로 권력으로부터 가장 초월한 척하지만 권력의 속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교육의 목적은 지식의 전달만이 아니라 이 사회가 요구하는 몸과 마음을 만들어내는 훈육이기 때문이다. 훈육이란 말 자체가 폭력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가장 믿지 않는 말은 이 모든 것은 너를 위한 교육이고 사랑이라는 말, 바로 그 거짓말이다.
인정한다. 그렇다면 폭력적이지 않게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 것인가? 감수할 수 있는 폭력과 그렇지 않은 폭력을 논의해야 한다고 하는데 쉽지 않을 것 같다.
가족의 문제도 언급한다. 한국 가족의 위기 원인을 모두가 쉬려고만 하고, 서로에게 노동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들었다. 집에서 무슨 노동이냐고 하겠지만, 서로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배려나 소통, 이런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가족 중에서 노동하는 존재는 엄마 뿐이다. 그 노동은 결국 감정노동이고..... 그래서 고요하게 멀쩡한 가족이 없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막장 드라마가 왜 인기가 있는지도 말한다.
막장 드라마가 왜 엄청난 인기를 끌겠는가? 아무도 그것이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말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마음속에서는 매일같이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극소수를 제외한다면 시어머니가 보기에 며느리는 자기 아들 등골을 빼먹는 존재이고, 며느리가 보기에 시어머니는 오로지 자기를 괴롭히는 것이 목적인 사람이다. 이 마음이 조금이라도 현실로 빠져나오면 곧바로 엄청난 사건이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떤 가족은 화목한 가족이라며 마치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여기고, 어떤 가족의 문제는 반대로 극단적으로 과장하곤 한다.
가정은 쉬는 곳이라는 생각, 내 생각과 일치한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쉬어야 하는데, 애들 봐야 하는 일은 감정노동까지 포함된 노동이다. 그러니 핸드폰으로, 잠으로 도피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아내가 채운다. 딱 우리집의 모습이니 할 말이 없다.
그리고 소비에 대한 얘기도 한다. 소비는 물건을 사는 것인데, 단순히 물건만 사는 것이 아니란다.
우리는 상품에 대한 소비에서 타인의 시선을 소비하는 것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타인의 시선을 소비하기 위해서 시간과 공간을 소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명품을 소비할 때 명품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다. 명품을 사기 위해 걷는 백화점이라는 공간, 그 공간에서의 서비스, 그리고 남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 속에서 만들어지는 동류의식,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소비한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소비하는 이미지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 즉 자신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다.
소비를 하면서 느꼈던 만족감, 특히 백화점에서 소비할 때의 만족감의 근원은 이런 것이었다. 주변의 시선, 그리고 이만큼 소비할 수 있다는 정체성 확인...... 가식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요즘 청년세대에 대한 담론이 거의 비슷비슷해서 뻔한 얘기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내가 몰랐던 심도 이쓴 얘기들, 새롭게 알게 된 얘기들이 많이 나와서 잘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도 이런 책을 이런 방식으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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