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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19] 빅 퀘스쳔: 언제 이런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을까.
    행간의 접속/인문 2017. 9. 29. 19:22
    책이름: 김대식의 빅퀘스천
    곁이름: 우리 시대의 31가지 위대한 질문
    지은이: 김대식
    펴낸곳: 동아시아
    펴낸때: 2014.12

    빅 퀘스천. 큰 질문들이다. 삶과 진리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책이다. 글쓴이는 과학자이지만 과학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폭넓게 인문학까지도 포괄하여 생각을 정리했다.

    존재, 원인과 결과, 친구, 삶의 의미, 아름다움, 환상과 현실, 죽음, 운명, 영혼, 진실, 책임, 정의, 민주주의, 소유, 사랑, 외로움, 시간, 노화, 정보, 기계 등을 키워드로 하여 질문을 던지고 있다. 평소에 문득 문득 떠오르는 화두들이지만 시간을 갖고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는 아니고, 조금은 더 깊이있게 생각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 특히 과학하는 사람들의 지식과 연관시켜 질문들을 풀어볼 수 있었다. 물론 정답은 없다.

    나도 이런 질문들에 대해 언젠가 고민할 것들을 준비하는 의미에서 참고할 만한 지은이의 생각들을 옮겨본다.

    인간이 먼 곳을 그리워 하는 이유는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끝이 존재하고 그것을 발견한다면 인간은 무섭고, 두려워서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게 된다. 추상적인 질문이라서 그런지 대답도 좀 추상적인 것 같다.

    친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공감의 필요성으로 답변한다. 불확실과 위험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자신의 행동과 생각에 대해서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이를 확인해 줄 사람이 바로 친구이기 때문이다. 즉, 친구를 통해 우리는 구원을 받는다.

    운명이란 무엇인가에서 인상적인 말이 있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들을 통해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선택이라는 실질적 점들을 연결해 그린 가상의 '선'이 바로 '나'라는 존재이며, '나'라는 허상은 '선택의 자유'라는 그럴싸한 '스토리'를 통해 자기 존재를 정당화하는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선택들을 연결한 가상의 선이 바로 '나'라면, 어쩌면 인류의 모든 선택들을 연결한 가상의 선이 '운명'일 수도 있겠다. 이런 말도 가능하겠다. 운명은 존재의 본질적 우연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약한 인류가 다 함께 꾸는 하나의 꿈이라고

    인간은 우연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는 근대의 인간이 그런 것 같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이성적 사고를 하면서 과학과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의미를 두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인간의 관념이 운명에 대해서 멀리하는 것 같다.

    진실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서는 하버마스의 대답을 인용한다.

    진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우울한 가설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현실적인 목표를 가지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하버마스의 결론이었다. 진실이 어차피 만들어진다면, 그나마 공평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버마스는 진실의 핵심을 사회적 합의라고 주장했다. 평등과 자유가 보장된 상태에서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공정한 토론을 거쳐 합의된 진실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실이라고.

    진실은 사회적 합의라는 말이 새롭다.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하면 진실이라는 것인데, 진실이 이렇게 가변적이면 진실의 무게감이 떨어져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진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가벼운 느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뭐 그렇게 문제가 될 것이 되겠느냐마는 말이다.

    우리는 왜 정의를 기대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면서 정의 개념을 정의한다.

    '정의란 무엇'이라고 정하는 순간 우리는 그 무언가를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당화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세상에 지각 능력이 없는 존재들만 있다면 '정의로운 세상'은 무의미할 것이다. 돌멩이와 지렁이 사이에는 '정의'라는 단어가 필요 없다. 우주에 나 혼자 존재하거나 존재하는 모두가 이 세상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면, 역시 '정의'는 무의미해진다. 정의는 인지, 감정, 기억을 가진 사람들끼리 한정된 것을 나눌 때 느끼는 분배 패턴의 정당성이지 나누는 그 자체는 아니다.


    정의는 분배 패턴의 정당성이다. 이 말이 명쾌하다. 나눈다고 정의가 아니고 정당한 나눔이 정의라는 것이다. 그럼 어떤 것이 정당한 것인지가 문제인데, 이게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 그게 문제다.


    서양이 세계를 지배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하는데, 한마디로 역사는 사후의 해석이 그렇게 되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과거를 재해석하고 평가하는 권한을 서양이 갖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시간은 왜 흐르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대답도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흐른다."라고 주장했다. 모든 것은 지속적으로 변하고 변화가 생긴 이상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강이 흐르기 위해서는 당연히 물이 있어야 한다. 그럼 시간이 흐르기 위해서도 무언가 존재해야 할 것이다. 흐름이란 변화이고, 변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뉴턴이 주장한 것처럼 존재로부터 독립적인 절대 현상이 아니라, 존재가 생성되는 순서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아니, 생성된 존재와 세계의 상대적 관계 그 자체를 시간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시간이 존재와 세계의 상대적 관계라고 하는 아주 추상적인 말인데, 그림은 안 그려지지만 느껴지기는 한다. 시간이 시추상적이라서.... 그러면서 시간의 역할을 세상의 모든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도구라고 말한다. 즉, 현상이 동시에 일어나지 않도록 순서를 정해주는 것이 시간적 틀이다. 정말 시간이 없다면 세상의 현상들이 뒤죽박죽으로 일어나서 세상의 논리는 없어질 것 같다. 아니면 그것이 혼란한 대로 논리를 만들든가..... 아무튼 시간이 질서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것 같다.


    인간은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도 있다. 인공지능이 등장하면서 논리적으로 따져보게 된 질문이다.


    만약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존재가 나타난다면? 우리가 지구의 모든 것을 도움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로 분리한 것처럼, 그들 역시 우리의 필요성을 묻지 않을까? 인간은 왜 필요한가? 신이 인간들이 바친 제물을 먹고 살기 때문에? 난센스! 우주를 창조한 전능한 신이 하찮은 인간의 숭배와 동경을 원해서? 아니면 신이 인간을 그저 사랑하기 때문에?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에게는 설득력이 없는 말이다. 그렇다고 "인간의 행복은 설명 없이 자명하다."라고 주장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간의 존엄과 행복이 절대가치라고 주장했던 수많은 철학자들도 알고 보면 모두 인간들이다. '팔이 안으로 굽는'식 주장 대신 인간의 필요성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을까?


    기계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필요성은 없다. 행동과 말이 일치하지 않으니까.... 오만하고,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이런 비관적인 상황에서 인공지능학자인 한스 모라비치는 그게 뭐 대수냐고 한다. 기계는 어차피 인류의 후손이라고.... 우리가 만들었고, 우리의 지식과 역사를 보존할 테니까..... 인간이,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듯이, 기계도 호모 사피엔스를 멸종시킨 것이라고.... 그게 자연의 법칙이라고 말한다. 후아~ 이렇게까지 생각해야 할까 싶다. 받아들이기 힘든 생각인 것 같다. 기계가 우리의 후손이라는 생각에서 차이가 날 것 같다. 인간은 인간이고, 기계는 기계일 뿐인데.....


    이밖에 여러 질문들이 있었는데, 지은이는 자신의 생각을 담기도 했지만 여러 학자들의 생각을 소개하는 식으로도 언급을 했다. 짧으면서도 나름 깊이가 있는 대답들에서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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