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45] 공부논쟁: 엘리트주의를 비판하다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16. 7. 27. 23:02
책이름: 공부논쟁
곁이름: 괴짜 물리학자와 삐딱한 법학자 형제의
지은이: 김대식, 김두식
펴낸곳: 창비
펴낸때: 2014.04
법학자 김두식은 여러 권의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그의 형이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그 형제들의 개인적인 생각을 나눈 책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면서도 동시에 그 형이 그 동생과는 생각이 많이 다른 측면이 있다고 하니 둘의 얘기가 나름 재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상반되는 두 가지 생각을 갖고서 읽게 되었고, 결론적으로 동생의 생각보다는 형의 생각에서 신선함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형의 얘기들 중에서 인상적인 것들을 뽑아보았다.
1.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는 지식인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아야 지식인이라는 얘기를 했다.
제가 호주제 폐지와 엄마성 따라 쓰기를 주장했다고 저를 진보로 분류하는 것도 곤란해요. 사람이 진영에 갇히는 순간 생각의 독립성을 잃게 됩니다. 자기 목소리를 잃는 거죠. 지식인을 자처하면서 진영 논리를 들먹여서는 안 돼요. 진영에 들어가는게 안정적이기는 하겠죠. 자기 편을 얻는 거니까요. 자기 편이 생기면 위기상황에서도 평화를 누릴 수 있죠. 싸움에 지치면 자기 편으로 돌아가서 쉴 수 있어요. 그러나 자기 목소리를 잃은 사람은 지식인이 아니에요. 욕을 아무리 먹어도 자기 생각을 있는 그대로 펼칠 수 있어야 지식인입니다.
자기 생각을 펼치는 독립적인 존재가 지식인이라는 것인데, 자기 생각을 갖고, 그것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용기있는 일이겠는가. 그렇다면 지식인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얘기하고도 통할 것 같다.
2. 과학자는 중소기업 사장
그리고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니까 어떤 연구를 하는지에 대해서 얘기하는데, 한마디로 중소기업 사장과 똑같은 일을 한다고 한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대답이었다.
저는 과학자인데, 중소기업 사장과 비슷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박사급 연구원 두 명, 석박사과정 대학원생 열명, 스태프 한명, 비서, 행정요원 각 한명, 대충 15명 정도 되는 연구팀을 이끌고, 주로 정부에서 연구비를 받아서 일을 해요. 연구비 받으면 돈이 쭉 나가는데, 인건비 비중이 제일 큽니다. 그 다음이 재료비인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실험을 해야 하니까 금도 사고 물도 사고 가스도 사야 하죠. 그다음으로 실험할 기계를 사거나 제작해야 하고요. 나머지는 인쇄비라든지 하는 작은 부분이 있습니다. 크게 보면 인건비, 재료비, 기자재비가 나가는거죠. 이렇게 돈을 나눠 쓰는 데에도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해요. 그러니 계속 돈 걱정을 해야 합니다. 만약 3년짜리 프로젝트가 올해 끝난다고 하면 6개월이나 1년 전부터 새로운 프로젝트를 따기 위해서 정신없이 뛰어다녀야 해요. 돈이 없으면 연구를 할 수 없으니까요. 서든 데스가 되면 안 되거든요. 과학자에게는 현실적으로는 연구비를 수주하는 게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이런 과학자가 연구보다 연구비 수주에 더 많은 신경을 쓰다니..... 그것도 서울대에서.... 사정을 모르는 우리같은 사람들은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현실로 여겨진다. 그 다음에 더 깨는 것은 연구팀에서 하는 연구들을 진행하는 과정이다. 연구팀들이 다른 경쟁연구팀을 견제하는 얘기도 나오는데, 정말 상상도 못했다.
그래도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앞으로 뭘 할 건지 고민하는 일이에요. 학생들하고도 그때그때 일주일에 세번쯤 다섯명 정도가 모여 전략회의를 합니다. '지금 이런 결과가 있는데 어떻게 내러티브를 만들어서 어떤 저널에 낼까?'하는 걸 의논하죠. 또 '경쟁그룹이 뭘 하고 있을까, 어떻게 좋은 논문을 써서 걔네들을 물 먹일까, 걔네들은 우리를 물 먹일 거리로 뭘 중비하고 있을까' 하는 등의 얘기를 나누죠.
대학 연구팀에서 경쟁 연구팀까지 신경써가면서 연구한다는 얘기는 처음 들었다. 기업들의 이윤 경쟁도 아니고.... 물론 연구를 위해 선의로 경쟁하는 논문 전쟁이라고 하지만 자칫 과열되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차라리 과열되는 것이 나은 것인가? 그 바닥에 있어 보지 않았으니 알 수 없지만.....
그리고 경쟁하는 모습도 얘기를 하는데, 경쟁팀에서 연구하는 결과와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결과를 갖고 있는 내 연구 결과물을 네이처 같은 1급 학술지에 내지 않고, 그 밑에 단계의 학술지에 낸다고 한다. 1급 학술지에 내면 연구 결과에 대해서 꼬치꼬치 수정 요구도 많고 까다롭게 굴어서 싣기 어려울 수 있지만 그 밑의 학술지는 그냥 실어준다. 그렇게 되면 경쟁팀의 연구결과는 쓰지도 못하고 사장되는 것이다. 내 것도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사장되기도 하는데, 결국 둘 다 죽는 작전인 것이다. 정말 비겁한 방법이고, 이렇게 해서 과학이 발달하겠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얘기한다.
연구 분야를 갖는다는 것은 빈 땅에 내 집을 짓는 것과 같아요. 땅을 먼저 차지하고 미리 머릿돌을 놓는 등 집을 짓기 위해서는 살벌한 경쟁을 피해서는 안 돼요. 과학자들이 고상한 세계에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온갖 치사한 일이 다 벌어져요.
예를 들면 자기 분야의 다른 학자들이 쓴 논문을 뻔히 읽어놓고도 완전히 모른 척하는 경우가 많아요. 빈익빈 부익부라서 잘 나가는 그룹은 다른 조그만 그룹을 무시하고 밟아요. 조그만 그룹의 실적을 슬쩍 가져와서 발전시킨 다음 '몰랐다, 미안하다' 그러고 넘어갈 때도 있어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서 벌어지는 온갖 나쁜 일들이 과학계에서 그대로 벌어진다고 보면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그만 그룹은 어떻게 싸워야 하느냐. 상황에 따라서 처음에는 제대로 인정받는 걸 포기하고 일단 코너에다 자기 돌들부터 넣어놓는 거예요. 파운데이션 스톤들을 몇개 넣어 그물을 쳐놓으면 세계적인 그룹들이 나중에는 인정을 안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기죠. 그런 전략을 학생들과 짜야해요.
이거 완전 기업간 전쟁 못지 않다. 실제로는 더 비열한 권모술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3. 노벨상은 우리 학문의 인프라로
과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얘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나라에 과학분야 노벨상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여태까지 우리나라 과학자가 노벨상을 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질문을 다르게 하고 있다.
과학 분야에서는 우선 질문부터 바꾸어야 해요. 한국 '사람'이 노벨상을 받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한국 '박사'가 노벨상을 받아야 해요.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 유학 가서 거기 교수가 되고 잘나가는 건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지만, 우리 학문의 성장과는 별 관련이 없어요. 물론 저도 그분들을 존경하고 좋아해요. 정말 아깝게 노벨상을 놓친 분도 있어요. 그런데 만약 그분이 노벨상을 받았다고 가정해봅시다. 미국에서 박사 받고 미국 인프라를 가지고 연구해서 노벨상을 받았는데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한국인의 DNA를 가지고 있으니까 민족주의적인 의미는 있겠지만 학문적으로는 우리나라와 아무 관련이 없는 거예요.
노벨상 꿈나무니 뭐니 해서 대기업이 학생들을 하버드대로 보낸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웃기는 거죠. 그 학생들이 노벨상을 받으면 그게 우리나라의 결과물인가요? 아니죠. 박사학위를 따는 순간에 새로운 과학자가 탄생하는 거예요.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미국 과학자지 한국 과학자가 아니에요. 그보다는 오히려 인도에서 유학 온 학생이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따고 한국 인프라로 노벨상을 받으면, 그게 우리나라 과학자이고 한국의 노벨상인 거죠. 혈통적으로 한국인이냐 아니냐에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어요.
정말 새로운 생각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는 혈통주의, 민족주의적인 측면에서만 생각했는데, 학문적으로 생각해서, 지속적으로 과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하고, 성숙하려면 우리의 인프라가 노벨상을 배출할 정도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이다. 혈통은 중요하지 않다.
나쁜 교수들, 특히 학문 종속적인 교수들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새로운 교수 임용할 때, 자기 밑에서 배워서 올라온 제자는 뽑지 않고, 자기와 같은 미국 교수로부터 배운 유학파를 뽑는 모습 속에서 학문의 종속을 얘기한다. 그런 식으로 미국 교수와 자기를 연관시켜서 혹시 그 교수가 노벨상 받으면 자신도 명함이라도 내밀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 무슨 치졸한 짓인지 모르겠다. 그럴거면서 대학원생은 왜 받느냐는 소리가 나온다. 대학교수 시켜줄 것도 아니면서.....
4. 창의성 없는 전교 1등
교육의 문제도 얘기하는데, 전교 1등은 시키는 것만 완벽하게 해내는 학생들이라서 창의성이 없어서 과학자가 되면 안된다는 말도 한다. 과학자는 상상력이 풍부해야 하는데, 전교 1등은 시험만 잘 보지 정말 똑똑한 게 아니란다. 그러면서 서울대 자연계 교수들이 좋은 학생들을 의대에 다 빼앗겨서 좋지 못한 학생들이 들어오니 이공계의 위기라고 말하는 것은 웃기는 얘기라고 말한다. 예전에 전교 1등들이 이공계에 들어와서 지금 연구력이 이 모양이냐고 되묻는다. 이공계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은 성적의 신화를 맹신하는 신도들이 되겠다. 그리고 자신도 전교 1등 출신이니 그것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도 있을 것이고... 실질적으로 연구력으로 뚜껑을 열어봤을 때 증명하는 것도 없으면서 성적의 권위만을 앞세우는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5. 엘리트주의 비판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기초과학에 투자할 돈이 100억이 있다면 그 100억을 1억씩 100개의 연구팀에 나눠준다고 한다. 1억 정도면 웬만한 실험실은 만들 수 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여러 곳에 뿌렸으니 몇 군데에서는 성과가 나올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100억을 한 두군데에 집중해서 투자한다. 성공한 한 명이 나머지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엘리트주의를 믿기 때문에.... 그러나 실제로 그런가 봤을 때, 기초과학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왜 그러냐 하면 기초과학의 성과는 투자나 노력보다는 운좋은 사람에게 성과가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기초과학은 운 좋은 사람을 아무도 따라가지 못하는 특성이 있어요. 기초과학의 특성 자체가 세런디퍼티에 있기 때문입니다. 발견의 반 이상이 세런디퍼티에 의한 거예요. 통계적으로 입증되기는 어렵지만 우연을 통해 발견한 게 80퍼센트 되고, 똑똑해서 발견한 게 20퍼센트 정도 될 겁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연성에 투자를 해야죠. 우연성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우연성에 투자하면 부수적인 효과를 누리게 됩니다. 기초과학에 투자하는 것은 교육에 투자하는 겁니다. 기초과학에서는 놀라운 발견을 할 확률 못지않게 교육 자체가 중요하니까요.
우연적인 요소를 믿고 투자를 한다는 것이 거부감을 든다. 잘하는 곳에, 열심히 하는 곳에 투자를 해야지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인데, 기초과학 분야에서의 성과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하긴 발견이라는 것이 하려고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겠는가. 일단 우연성을 인정하게 되면 성과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다양한 연구팀을 지원하는 것이 맞겠다. 정말 이러한 기초과학 분야의 현실을 모르는 관료들이 돈줄을 쥐고서 우리나라 과학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니 과학이 이 모양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어휴... 답답해...
6. 저출산 문제의 핵심
마지막으로 애 키우기 힘들어서 애를 많이 낳지 않는다는 말은 핑계라고 말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아이 키우는 게 힘들어서 애를 많이 낳을 수 없다고 불평하지만 그것도 다 핑계에요. 인류 역사상 애 키우기에 이렇게 편하고 좋았던 시대가 없어요. 애 키우기가 힘든 게 아니라 애를 명문대 보내기 힘든 시대일 뿐이에요. 자세히 보면, 사교육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강남 애들만 명문대를 간다, 가난한 자신이 애를 낳아도 명문대 보낼 희망이 없다, 그러니 낳지 말자, 이런 식이에요. 애를 명문대 보내겠다는 욕심만 버려도 애 낳아서 키우는 게 훨씬 덜 힘들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이 무엇인지 철학적으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세속적인 만족을 위해서 아이를 나의 분신처럼 생각하고, 아이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에게 신경을 쓰는 나를 포함한 주변의 여러 부모들의 생각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힘든 일이다. 그런데, 정말 부모가 아이를 명문대 보내기를 포기하면 아이 키우기가 덜 힘들어질까? 그런데, 포기할 수는 있을까? 한국을 떠나지 않는 이상 그건 쉽지 않을 것 같다.
7. 마지막으로
다 읽고나서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공부에 대한 얘기가 좀 깊이있게 다뤄질 줄 알았는데, 그런 것은 별로 없었다. 굉장히 현실적인 여러 문제들이 제기되었는데, 제목에 가려서 잘 드러나지 않는 느낌이고.... 그리고 논쟁도 아니다. 대부분이 형의 얘기들을 동생이 끄집어내는 형식이라서.... 그렇다면 어떤 제목이 좋을까? 마땅한 제목이 생각나는 것은 아니지만 대략적인 흐름은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간의 접속 > 에세이/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51] 철들지 않는다는 것: 과격함의 선입견을 무너뜨리고 (0) 2016.08.21 [책 46] 욕망해도 괜찮아: 선을 넓히기 (0) 2016.07.29 [책 35]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말로 해서 좋아야 잘 쓴 글이다 (0) 2016.06.23 [책 34] 다른 길이 있다: 핵심을 찌르는 부드러움 (0) 2016.06.21 [책 29]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 답지 않은 말랑함. 그러나 진진한... (0) 2016.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