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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44] 의학 오디세이: 의학의 문에 들어가는 문고리 잡기
    행간의 접속/자연과학/환경 2016. 7. 26. 13:57

    책이름: 의학 오디세이

    곁이름: 인간의 몸, 과학을 만나다

    지은이: 강신익, 신동원, 여인석, 황상익

    펴낸곳: 역사비평사

    펴낸때: 2007.02


    자연과학 분야의 책을 별로 접해 보지 않아서 책을 찾던 중에 생각해 보니 의학 관련한 책들도 별로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서 한 번 읽게 되었다. 차례와 내용을 훑어보니 어려운 이론적인 내용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고, 의학의 역사, 의철학, 생명윤리 등과 같이 의학과 인문학을 연결시켜서 살펴본 것 같아서 선택하게 되었다.


    의학이라는 것이 발생하게 된 계기, 혹은 필요성이 제기된 계기를 농경사회로 보고 있다. 그럼 수렵사회에서는 질병 같은 것들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인데, 왜 그럴까? 수렵사회는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먹을거리를 먹었으므로 영양 상태도 좋았을 것, 주거지를 옮겨다니므로 배설물 등의 오염원을 피했을 것이고, 질병이라고 해봐야 사냥하다가 다치는 정도일 뿐이니 의학이라는 것이 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반면에 농경사회는 농작물과 가축 등만을 먹게 되므로 영상실조가 늘고, 정착생활을 하면서 배설물과 폐수 같은 오염물질에 의한 전염병이 생기고, 일정한 자세로 농사만 짓는 단순 작업을 하면서 골관계 질환이 많아지게 되면서 의학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똑같은 이유로 수렵생활에도 의학이 필요할 것 같았는데, 왜 그렇게 보지 않는지 좀 의아하기도 하다.


    그 다음 인상적인 것은 사회적 의학에 대한 이야기이다. 프러시아의 피르호라는 의학자를 전염병 지역에 파견하여 조사를 시키는데, 그가 정부에 제시한 처방이 신선했다.


    그곳에 머무는 3주 동안 그가 듣고 본 가난한 자들의 처참한 현실은 본래 자유주의적 정치 성향을 갖고 있던 그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이후 그가 프러시아 정부에 제시한 처방은 놀랍게도, 위생과 영양 상태의 개선을 위한 인도주의적이고 개별적인 의학적 가이드라인이 아닌, 정치적 자유의 신장을 포함한 교육과 경제정책의 전면적인 개혁이었다. 발진티푸스가 만연한 궁극적 원인에 대해 피르호는 특정 세균이 아닌 열악한 생활조건,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라고 진단한 것이다.


    정말 근본적인 처방을 했다. 단순히 의학적인 처방이 아닌 사회적인 처방을 함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이 질병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처방이 받아들여졌는지는 나와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아무튼 의학이 단순히 연구실과 병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생활 속에서 존재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대 면역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철학적 의미가 인상깊었다. 면역학은 말 그대로 면역체계에 대한 이야기인데, 장기 이식을 할 경우 면역체계가 이식된 장기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들이 발생한다. 여기서 우리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현대 면역학은 우리에게 무척 귀중한 유산을 물려주었는데, 그것은 '나'가 '나'일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현대 면역학은, 나의 정체성은 수많은 '너'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역동적인 '과정'일 뿐 절대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는 생물학적 증거를 제시해주었다. 


    즉, 다른 사람의 장기가 이식될 경우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났다가 받아들이기도 하고, 자기 몸의 일부를 이식하는데도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경우를 보면 '나'라는 존재는 정해진 존재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생물학이 던지는 철학적 질문!


    읽으면서 의학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할 수는 없겠고, 이제 문고리를 잡고 엿보려고 하는 정도 접근한 것 같다. 의학과 관련되는 책들을 앞으로도 읽으면서 내가 의사를 할 것은 아니지만 병원에서 의사를 만날 때 최소한 병과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병과 나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들을 만들어가야겠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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