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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0] 감독, 열정을 말하다: 집요한 준비가 만들어낸 인터뷰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16. 3. 17. 22:21책이름: 감독, 열정을 말하다
지은이: 지승호
펴낸곳: 수다
펴낸때: 2006. 07
지승호가 영화감독을 인터뷰한 첫번째 책이다. 이 얘기는 두번째 책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번째 책도 있다. 아무튼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감독들을 인터뷰하면서 그들의 생각들을 끄집어낸 책이다.
모든 감독들에게 묻는 질문들과 이에 대해 별로 다르지 않은 대답들이 좀 보였다. 대표적인 게 배우들의 연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어떤 감독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등등인데, 그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들은 평범해서 기억에 남지 않는다. 대부분 배우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 그리고 예술가로서 기억되고 싶다는 것 정도.... 이렇게 봤을 때 인터뷰어는 정말 인터뷰이에 대해서 철두철미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질문과 비슷한 대답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정말 감독들의 생각이 비슷해서이고 인터뷰어의 질문이 평범해서는 아닌 것들이었다. 대표적인 것인 감독들은 평론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영화를 혹평한 영화들에 대해서 쿨하게 넘어간다. "그건 그 사람 생각이고..", "그건 좀 너무 오버한 것 같고....", "하나하나 다 대꾸할 수는 없으니까....", "의도는 그게 아닌데.....", "일부러 알고 그렇게 한 것인데....", "그걸 감독이 모를리가 없는데, 그것까지 고려해서 선택한 것인데..." 등등과 같은 입장이다.그리고 결정과 판단의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 이상은 좋은 것들이 많은 것 중에서 선택하는 것인데, 현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나쁜 것들 중에서 덜 나쁜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감독들의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감독들이 생각하는 그림이 있는데, 그게 안 나와주니까 그런 것으로 보인다. 이 부분에서 감독들의 어려움을 느꼈다.그리고 산업으로서의 영화와 예술로서의 영화사이의 줄타기에 대한 얘기도 감독들의 생각이 비슷하다. 몇 십억, 때로는 100억이 넘는 남의 돈을 갖고 영화를 만들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 돈을 투자하는 사람도 감독을 믿고 투자를 했겠지만 그 사람도 생각이 있고, 바라는 것이 있는데, 자기가 생각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의견을 줄 수 있다고 본다는 얘기를 한다. 그것을 지혜롭게,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한다. 감독 힘들다.인상적인 이야기들이 몇 개 있는데, 김지운 감독의 마지막 대답이 그 중 하나다.현재의 무의미한 시간을 견딜 수가 없어서 영화를 하는 거고, 내가 살면서 어떤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 좋아진 것이 있기 때문에 그런 작품 하나 정도는 남겨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아름다운 것 하나 남기기 위해 영화를 한다는 말이 심장을 찌른다.변영주 감독의 이야기 중에서는 영화 얘기가 아닌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얘기가 인상적이었는데, 그건 사실 이번 인터뷰에서 나온 얘기가 아니라 지승호가 다른 인터뷰에서 한 말을 인용하는 부분에 있었다.할머니들이 착하지 않아서 참 좋아요. 할머니들이 심지어 착하기까지 하면 되게 미울 것 같아요. 착하지 않다는 건 언제나 자기를 중심에 놓는다는 거예요. 할머니들의 용감함 사이사이에는 정말 치졸할 정도의 자기애도 있고, 이기적인 마음도 있고, 비겁한 마음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것 하나하나가 오히려 할머니들의 용기를 더 빛내주는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당해본 사람만이 착하지 않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도 마찬가지로 항상 자기를 중심에 놓아야 된다고 생각해요.한마디로 자기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착하지 않아서 좋다고 표현한다. 피해를 입고 사과도 받지 못한 사람한테 이제 그만 용서하고 포용하라고 하는 것은 자기를 버리라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10년전에 인터뷰를 이야기를 읽으니 시의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었다. 봉준호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지승호가 한국사회가 계속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보느냐고 물었더니, 봉 감독이 대답했다.속도의 차이와 그때그때 얼마나 피로하게 전진하느냐의 문제이지, 후퇴한 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렇게 단순하게 대통령의 이름만 나열해도 알 수 있을 것 같구요. 매 단계 변화의 과정이 너무 피로하고, 힘들고, 실망의 반복이긴 했어도 속도와 피로도의 문제이지 후퇴한 적은 없는 것 같아요.아.... 그러나, 그 대통령의 이름들 뒤에 이명박, 박근혜를 나열하면 얘기는 달라지지 않을까? 진보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지만 속도와 피로도를 넘어서는 다른 문제가 또 있을 것 같다.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니까 말이다. 진짜 대통령 잘못 뽑으면 역사가 뒤로 가는 것은 일도 아니다.
인터뷰는 단순히 궁금한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끄집어내는 작업이라는 것을 보았다. 인터뷰이가 이전의 다른 매체들에서 한 얘기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생각들을 깊이 있게 만드는 것은 정말 집요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작업이 인터뷰를 의미있게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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