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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9] 만화, 세상을 그리다: 만화가들의 개성이 뚝뚝 묻어나는.
    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16. 3. 13. 18:21
    책이름: 만화, 세상을 그리다
    지은이: 지승호
    펴낸곳: 수다
    펴낸때: 2014.02

    지승호의 인터뷰집을 오랜만에 들었다. 인터뷰 대상은 만화가들이다. 내가 만화는 잘 안 보지만 그래도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는 만화가들이 있어서 그들의 생각을 접하고 싶었다.

    읽으면서 만화가들의 공통된 생각 한 가지를 찾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작품은 잘 읽지 않는다는 것. 이유는? 영향을 받을까봐. 특히 작업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거의 그런다는 것. 그만큼 자신의 세계를 분명히 이루어내고, 지키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자신의 세계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다음에 공통된 생각. 자신의 일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 직접적으로 숙명이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이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고,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지만 마감 후의 해방감과 독자들로부터 받는 인정이 계속 만화를 그릴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게 숙명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겸손함. 자신의 성공이 자신이 잘나거나 능력이 특출나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계속 배우는 자세로 준비했기 때문에 얻어진 것이라는 생각이 느껴진다.

    개별적으로는 강도하의 이야기 중 인상적인 것이 하나 있었다. 규정지어지는 것에 대한 분명한 거부.

    저는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냐, 하는 질문 때마다 좀 한숨이 나오는 것이요, 그 얘기만큼은 만화 절필하고 싶어요. 제가 상상이 안 될뿐만 아니라 상상해서 억지로 문장으로 만들어서 입 밖으로 토해내봐야 허무한 것 같아요. 벌써 연도마다, 심지어는 규정하는 말들이 넘치고 넘쳤거든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처럼. 단기 기억만으로 그 작가를 규정하고, 빨리 잊혀지고, 새로운 콘텐츠로 새로 규정하고 또 새로 규정하는 것의 반복이기 때문에 그 역시 그것을 다 수용하는 작가는 없겠지만, 수용이 아니라 실은 반응만 해도 휘둘리는 거거든요. '그런가 보다, 땡스' 이러면 되는데요. '제가 그렇죠. 감사합니다', 그러는 순간 그 자리에 서겠다는 거예요. 앞으로 가지 않고. 작가는 그건 것을 절대 인정하면 안 되죠. 하물며 자기가 자기를 규정해버리는 것은.


    규정되어지는 순간, 작가는 발전할 수 없고, 휘둘리게 되고, 자기의 세계를 잃게 된다는 얘기다. 주변의 사람들한테는 그냥 들릴 수 있는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질문이 작가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말은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작가만의 감수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 다음 최규석의 얘기에서 사람들이 과도하다고 하는 표현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한국에서 대중문화를 받아들이는 특성 중의 하나가 그런 것이 있는 것 같아요. 현실의 끔찍함에 대해서는 별로 놀라지 않다가 대중문화에서의 끔찍함에 대해서는 굉장히 과도하게 반응한단 말이에요. 실제로 과도하다고 느껴서 그런 건지. 계속해서 그런 교육을 받아와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대중문화에서 이런 표현이 나오면 사회가 어두워진다고 굉장히 단순하게 연결 지어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작품에서 숨어 있는 의미를 뽑아낸다는 것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은 무엇을 의미한다는 게 있는데요. 창작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작품에서의 끔찍함을 더 과도하게 해석하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반대가 되는 것이 맞는 것 같거든요. 문화예술 영역에서는 모든 것을 오픈하고 갈 데까지 가도록 놔두고, 사회를 다잡는 것이 정상적인 것이 아닌가 싶어요. 저는 소설이든 만화든 무슨 얘기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 현실의 끔찍함에 무신경하면서 예술의 끔찍함에 과민하는 이중성을 언급하고 있다.


    이 책이 좀 아쉬운 점은 인터뷰 발언 중에서 비문들을 조금 다듬어서 읽기 쉽게 했으면 하는 점이 있다. 사실 인터뷰는 구어체라서 어느 정도의 현장감을 위해서 많이 손 보지 않고 가져와도 되지만, 그래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수정하는 것은 괜찮다는 생각이다. 특히 강도하의 인터뷰 부분은 생각이 많은 작가의 말을 언어로 담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부연하는 질문이라든가, 인터뷰이가 느낀 바를 넣는 방식으로 풀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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