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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4] 위생의 시대: 내 몸은 내 몸이 아니다.행간의 접속/역사 2015. 11. 20. 15:51
서명: 위생의 시대
저자: 고미숙
출판사: 북드라망
발행일: 2014.04
고미숙의 근대성 시리즈 3부작 중 제3권으로, 신체, 몸에 대한 근대적 기획을 다루고 있다. 특히 근대에 발생한 병리학(현대의학)의 관점이 우리의 신체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 얘기하고, 이와는 다른 방식으로 신체를 다룬 근대 이전의 허준의 관점을 소개한다.
1. 병리학과 기독교
계몽주의자들은 튼튼한 신체를 이상적인 국민의 형상으로 보았다. 그래야지 애국심, 경쟁심, 열정 등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런 튼튼한 신체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 여성, 부랑자, 고아, 동성애자, 매춘부, 광인, 외국인 등 동일화의 장을 벗어난 집단은 쓸모없고, 위험하며, 악한 존재들로 규정하였다.
결국 위생학은 건강과 질병의 대립으로 시작하여, 정상과 비정상의 분할까지 포괄함으로써 불결함과 질병을 도덕적 타락과 연관짓는 표상의 연쇄들을 만들어 낸다. 예컨대 근친상간, 동성애, 매매춘 등은 불결한 환경의 문제와 곧바로 직결되고, 결핵과 매독에 대한 공포는 기독교적 죄의식과 성적 억압의 장치와 견고하게 통치해야 한다고 하는 의식이 대두한 것도 성적 방탕이 나쁜 유전인자를 만들어 비정상적인 후손을 갖게 될 것이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질병은 그릇된 생활의 결과이고, 그러므로 '악'이다. 따라서 악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의학적 치료뿐 아니라 생활 하나하나를 건전하게 영위해야 한다. 한마디로 영혼을 정화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피료한 것이다. 영혼을 순결하게 정화하는 임무를 떠맡은 곳이 다름 아닌 교회이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질병과 공존하는 삶을 얘기한다. 질병은 악이 아니라 삶의 일부로서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이질적인 것을 풍부하게 수용하는 신체, 환경과 능동적으로 접속 가능한 신체, 다른 것으로 변이할 수 있는 신체를 생각하면 소수자에 대한 생각들도 바뀌고 결국 우리의 삶도 달라질 것이라 말한다.
2. 내 것이 아닌 나의 몸
몸이 지닌 독특한 리듬, 체질적 특성, 동선 그리고 그것의 발현으로서의 성격 등 우리 몸에는 무한한 비밀이 담겨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다 의사나 약사, 보험제도 등 소위 임상의학에 기초한 '국가의료시스템'에 맡겨 버린다. 그리고 임상의학은 언제나 '평균율'에 의해 움직인다. 평균 수명, 평균 신장, 평균 몸무게, 평균 수치, 평균이 곧 정상인 셈이다.
내 몸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내 몸이 아파서 어떠한 조치를 할 때 나는 그 조치들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까? 병에 걸렸을 때 의사의 처치에 내가 이유를 물을 수 있을까? 처치의 과정과 전망을 들을 수 있을까? 그저 병원에서 의사가 나보다 의학적 지식이 많으니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바로 근대의 의료 시스템이다. 그리고 의사는 결국 평균적인 통계치와 확률을 갖고 결정을 하며 평균에 들지 못하면 나는 비정상으로 의학적 조치를 받는다.
3. 더러움에 대하여
근대인들은 고통을 금기시하는데, 이는 불결함으로 견디지 못하는 것과 상통한다. 피나 고름, 구토와 설사 등 고통을 야기하는 것은 대개 더럽다. 시각적으로 불편한다. 따라서 이런 것들은 막아야 한다. 혹은 드러나면 안된다. 그러나 이런 작용들을 막으면 면역기능이 떨어져 더 약해진다. 하지만 근대 이전, 한의학에서는 달랐다. 한의학 전통에 따르면, 토하고 싸는 것만큼 몸을 정화시키는 것도 없다. 어떤 약도 치료할 수 없는 죽기 직전의 환자들을 사흘 정도 토하고 싸게 해서 기사회생시킨 '전설적인' 명의들도 있었다고 한다.
4. 사람들 간의 거리에 대해서
병리학이 도래하면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는 견고한 장벽이 세워졌다.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둘러친 방어벽이 결과적으로는 자신을 그 안에 가두는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 장벽 안에 갇혀서 사람들은 자연과의 거리, 타인과의 거리, 연인과의 거리가 세련된 도시인의 삶이라고 자명하게 받아들인다. 길거리에 이질적인 것들이 뒤섞여서는 안 되는 것처럼 인간 사이에도 서로 '지지고 볶는' 관계는 허용되지 않는다. 두렵기 때문이다. 고독과 우울이 근대인의 질병이 되는 건 그런 점에서 너무나 당연하다.
뇌과학자들의 연구도 이런 장벽을 깨는 것에 한 표 던지고 있다. 인간의 생리는 열린 구조이기 때문에 개인이 자신의 모든 기능을 지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전달되는 조절 정보가 영향을 미치면서 서로 생리적인 기능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처럼 거리를 두고 고립되면 인간의 생리 조절 기능은 더 불완전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대한 예로서 같이 밥을 먹으면 밥이 더 맛있다든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시간이 더 빨리 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런 것들의 대표적인 예인 것이다. 결론은 함께 지지고 볶자는 것.
5. 허준의 동의보감
질병이란 불인, 곧 정, 기, 신, 혈이 원활하게 운행되지 못할 때 생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치유란 모자란 것을 채워 주고, 막힌 것을 뚫어 매끄러운 흐름을 만들어 주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양상과 추이가 사람에 따라 매우 상이하다는 점이다. 타고난 체질 및 환경조건과 맺는 관계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치유는 그 차이를 파악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중략)..... 요컨대, 몸의 안과 밖을 감싸고 있는 다양한 조건들을 두루 파악해야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한 법이다. 그런 점에서 의사에겐 그 차이들을 단번에 간파할 수 있는 직관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때 차이를 안다는 건 인간과 외부를 두루 관통한다는 걸 의미한다. 따라서 한의학에 있어서 훌륭한 명의란 반드시 자연철학자가 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근대 의학은 표준화된 상태를 상정하고 여기에서 벗어나면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이를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그러니 근본적인 치유는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그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6. 책을 읽고
병, 신체, 의료 시스템 같은 것들은 우리와 밀접하게 있기 때문에 근대적인 것들을 비판할 때 불편하기도 하고, 난감하기도 했다. 잘 모르는 내용 중의 하나는 주뇌설, 뇌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자리잡은 과정은 잘 모르겠다. 나중에 이 부분만 다시 확인하고 싶다. 전체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의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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