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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13] 연애의 시대: DNA까지 파고 든 근대의 기획
    행간의 접속/역사 2015. 11. 17. 22:56

    서명: 연애의 시대

    저자: 고미숙

    출판사: 북드라망

    발행일: 2014.04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 중 제2권이다. 부제는 근대적 여성성과 사랑의 탄생이라 되어 있듯이, 성, 모성애, 연애 등에 대한 얘기들이 나온다.


    1. 국민이 된 여성


    근대 이전에 여성은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였고, 관심 밖의 존재였다. 새로운 구성원을 생산하고, 가정을 꾸려나가는 존재였지만 그것에 어떤 가치를 두거나 의미 부여는 하지 않았고, 그저 당연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근대에 와서는 똑같은 일을 했지만 그 가치가 달라졌다. 모두 국가를 위해, 민족을 위한다는 것. 여성이 국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이 존중받아서도 아니고, 여성의 지위를 진정으로 높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인구를 재생산하고, 가족의 기능을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한 방편일 뿐이었다. 여성은 그렇게 국민으로서의 지위를 얻었지만 그러면서 탈성화되고, 욕망은 거세되었다.


    2. 사랑에 목숨 걸기


    요새는 사랑에 목숨을 걸어야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도 역시 근대적 사고방식이다. 그러면 근대 이전에는 사랑에 목숨을 걸지 않았나? 열정적인 사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코 '절대적'이지는 않았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사랑보다 더 뜨겁게 하는 것들이 많았고, 몸과 마음을 사사로이 섞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삶을 고양시킬 수 있었다. 그 얘기는 거꾸로 말하면 현대의 사회에서 사랑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사랑 이외에 목숨을 걸만한 다른 관계들이 별로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욕망을 투여할 것들이 별로 없다는 얘기... 시시하다는 얘기...그러니 기승전.... 사랑이 되는 것이다.


    또하나 순정. 순정과 애욕 사이에 중간이 없다. 사랑은 하는데, 순정도 있어야 한다? 육체적인 욕망을 가지면 그건 순정이 아니고 순수하지 않고.... 더러운 것이라는데.... 이런 생각의 근원에는 육체는 불순하고, 죄악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순정과 비슷한 것 순결 이데올로기도 이 시기에 출현하였다.


    근대적 사랑은 오직 영혼의 순수성으로만 승부한다. 그러기 위해선 가능한 한 '육체성의 흔적'은 지워 버려야 한다. 순결이라는 '강령'은 이런 맥락에서 등장했다. 그리고 정절과는 달리, 여기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전 구성원을 국민으로 호명해야 하는 근대권력의 속성상 순결은 모든 구성원들의 윤리적 명제로 부과되어야 한다. 정상적인 국민인 한, 누구나 순결의 이념을 수락해야 한다. 결국, 이것은 연애의 열정과 성적 욕망을 결혼으로 흡수하기 위한 성정치학의 일환이다. 인종론적, 인구론적 관점에서 볼 때, 함부로 성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그걸 일일이 검사하기란 난망하다. 각자 알아서 '자기 검열'을 해주면 가장 좋으리라. 특히 임신의 키를 쥐고 있는 여성들이, 모든 여성들이 처녀성이라는 테제를 자율적으로 수락하게 하려면, 거기에 엄청난 의미 부여를 해주면 된다. 순결이 곧 진정한 사랑을 보증한다는 식으로 물론 과대망상이다!


    3. 자의식의 근원


    사랑의 한 면은 목숨을 걸 정도의 열정을 동반하고 있는데, 반대편에는 권태로움이 있다. 그리고, 그 권태로움의 근원에는 황폐한 자의식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뭐 이른 질문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데, 이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는 오류가 있단다. 자아라는 관념을 실재하는 것으로 설정한다는 것이 그 오류이다. 실재하지도 않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하니 답이 없을 수밖에...


    그럼 근대 이전에는 이런 자의식이 없었나? 없었다. 근대 이전에는 인간과 외부 사이에 격차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도로 '자아'라고 설정하고, 그게 무엇인지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거꾸로 얘기하면 '자아'는 인간이 자연과 단절되는 순간, 생겨난 것이다.


    '자연의 타자화'는 가장 먼저 인간들 사이의 견고한 장벽을 낳는다. 물론 이것이 주체 생산의 핵심기제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근대국민국가는 명분상 개별적이고 독립된 주체들 사이의 계약관계를 전제한다. 따라서 개별구성원들을 민족이나 국민이라는 집합적 단위로 호명하는 한편, 마치 사람마다 고유한 아이덴티티가 따로 존배하는 듯이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유도한다. 이 질문은 일단 빠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 평생 동안 머리를 쥐어짜도 내가 누구라는 해답이 나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 나온다 한들 그걸 어디다 쓰겠는가? 그런 점에서 일종의 수렁 혹은 늪이며, 근대인에게 주어진 저주다. 자연을 정복한 대가로 주어진 저주. 구보씨가 겪는 고독과 우울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4. 대장금 사랑의 전복성


    사랑에 목숨 거는 사회에서 대부분의 드라마는 사랑은 죽음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다. 운명적 만남, 불치병, 불의의 사고... 그러나 드라마 대장금에서 사랑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없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었지만 대장금에서의 사랑은 두 연인과 그 주변 인물들을 살린다.


    그녀에게 사랑이란 삶의 모든 과정을 멈추게 하고,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사랑들과 함께 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 속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과정인 것이다.


    대장금 드라마를 안 봐서 잘 모르겠는데, 읽어보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5. 읽고나서


    사랑이라는 우리들의 욕망에도 근대의 기획이 치밀하게 파고들어 우리를 조종하고 있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겨지지 않고, 1권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질문이 여전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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