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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30] 처음 읽는 터키사: 더 가깝게 느끼게 된 터키
    행간의 접속/역사 2016. 6. 1. 13:44

    책이름: 처음 읽는 터키사

    곁이름: 동서양 문명의 교차로, 터키

    지은이: 전국역사교사모임

    펴낸곳: 휴머니스트

    펴낸때: 2010.08


    터키의 역사는 고등학교 세계사 시간에 잠깐 배운 것 같다. 쉘주크 투르크, 오스만 투르크, 케말 파샤, 술탄, 칼리프 등의 용어들이 기억나는데, 이 용어들의 순서나 역사적 맥락 등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터키 여행을 다녀오고나니 터키에 대한 관심이 좀 더 있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먼저 터키 지역을 '아나톨리아'라고 부르는데, 그 의미를 얘기하면서 비슷하게 쓰이고 있는 '트리키아'도 설명한다.


    아나톨리아: 고대 그리스어의 아나톨리코스(아나톨레)에서 온 말로 '해가 뜨는 곳', '동쪽'이라는 뜻이다. 유럽에서 볼 때 동쪽에 있기 때문이다. 라틴어의 오리엔트나 이탈리아어의 레반트와 같이 동방을 뜻한다. 히타이트 시대에는 아시아의 옛  이름인 아수아로 불렸으나, 고대 지중해 사람들이 더 먼 동쪽을 알게 되면서 '소아시아'로 불렸다. 아시아 대륙과 유럽 대륙의 연결 지점에 있어 문명의 이동이 많았다.


    트라키아: 발칸 반도의 남동쪽을 일컫는 말로 흑해와 에게해, 마르마라 해로 둘러싸인 반도다. 오스만 제국 전성기 때는 '로마 사람의 땅'이라는 뜻의 '루멜리아'라고 불렸다. 19세기 이후 동쪽은 불가리아가, 서쪽은 그리스와 알바니아가 차지하면서 현재는 이스탄불과 에디르네 일대만 터키 영토로 남아 있다.


    아나톨리아란 동방을 뜻하는 것이었다. 유럽 사람들한테는 터키가 동쪽이었으니까. 아울러 루멜리아가 로마 사람이라는 뜻이므로 '루멜리 히사리'는 로마 사람들의 성이라는 뜻이겠다. 이것도 새롭게 알았다.


    고대에는 히타히트가 이 지역에서 철을 사용하면서 지배했고, 로마 시대에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고, 콘스탄티누스 대제 때에는 콘스탄티노플로 불리면서 로마 제국의 수도가 되었고, 동서로마가 갈리고 서로마가 멸망한 후에는 동로마제국인 비잔틴 제국의 중심지로 역할을 했다. 이 때까지 이 땅의 지배는 지금의 터키인들의 조상인 튀르크인들은 아니었다.


    현대 터키인들의 조상들인 튀르크 족은 어떻게 발전했나?


    튀르크, 즉 돌궐은 오늘날 터키에서 동쪽으로 아주 멀리 떨어진 몽골 초원에서 살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6세기 후반에 몽골 초원을 아우르는 제국으로 발전했다가 동튀르크와 서튀르크로 분열되었다. 서튀르크족의 일부인 셀주크 튀르크가 점차 서쪽으로 이동해서 셀주크 제국을 세웠으며, 이들이 계속 서쪽으로 영토를 넓혀 터키 땅에 룸 셀주크를 세웠다. 그 뒤를 이어 오스만이 세운 오스만 제국이 오늘날 터키 땅을 중심으로 발달했고, 이를 직접 계승한 나라가 바로 터키다.


    간단하게 보면 튀르크-동서 튀르크-셀주크투르크-룸 셀주크-오스만 튀르크 순으로 제국이 이어졌다고 보면 된다. 문제는 이들의 영토가 커졌다가 작아졌다고 하면서 흥망성쇄가 나타나면서 주변 나라들과 얽히니까 복잡한 느낌이 든다. 제국들만 나열하면 그렇게 복잡하지는 않다.


    10세기에 그 중  셀주크 투르크가 아나톨리아에 진출하였고, 이슬람교를 수용한 것이 큰 변화이다. 그러다 룸 셀주크가 아예 아나톨리아에서 나라를 세웠다. 그러는 과정에서 서방의 십자군 원정을 맞기도 했다.


    13세기에 오스만 투르크가 건설되고, 15세기에 메흐메트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면서 대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다 19세기에 빈 포위에 실패한 후 서서히 영토를 잃기 시작한다. 러시아의 침략으로 흑해 연안을 빼앗겼고, 제국 각 지역의 여러 민족이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그리ㅅ, 세르비아, 불가리아, 이집트 등이 독립을 선언했다. 술탄의 지배가 무능하다고 느낀 젊은이들이 입헌혁명을 통해 입헌군주국으로 다시 섰지만, 의회가 해산되기도 했다.


    19세기말 20세기 초에 발칸전쟁으로 영토가 더 좁아져 지금의 터키 영토만 남게 되었고, 제1차 세계대전에 독일과 연합하여 참전했다가 패전하여 연합군의 분할통치가 결정되었다. 그러나 무스타파 케말이 중심이 되어 독립운동을 전개하여 앙카라에서 의회 선거를 하여 국민의회를 소집했고, 국민의회의 헌법으로 튀르키예 공화국으로 정부를 수립했고, 이스탄불에 있는 술탄 정부를 몰아냈다. 그 결과 연합국에 터키의 독립을 주장하여 인정을 받는다. 이스탄불을 얻는 대신 지중해의 섬을 그리스에 넘길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면서 수도를 앙카라를 터키의 수도로 선포한다.


    그럼 터키 최대 도시인 이스탄불이 수도가 안 되고, 앙카라가 되었을까를 보면 이스탄불은 술탄 정부의 중심으로 서구 열강의 지배 아래 있었고, 앙카라는 국민의회 정부가 중심이 되어 저항 운동을 한 거점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 터키 공화국은 냉전시대에 서방 진영에 가담하면서 경제 발전을 이루었고, 정치적으로 세 번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정치적 혼란을 수습한 후에는 민간에 정권을 이양하여 정당 정치를 할 수 있게 하였다. 세 번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지만 군부에 대해서 터키 국민들은 부정적이지 않은데 그 이유는 혼란을 수습하고 정권을 민간에게 이양했기 때문이고, 오스만 제국부터 이어져 온 엘리트적 전통, 장군 출신인 아타튀르크에 대한 절대적인 국민의 지지, 군부의 청렴성과 정직성, 애국심 등이 신뢰의 바탕이 되었다.


    터키의 역사를 자세하게는 아니더라도 통으로 확인하면서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게 되었고, 터키의 박물관이나 기념관에서 언뜻 봤던 그림이나 유물들, 설명들을 상기해보면 퍼즐이 맞는 느낌이었다. 터키에 대해서 가깝게 생각했는데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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