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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51] 나의 한국 현대사, 1959-2014, 55년의 기록: 미래는 우리 안에행간의 접속/역사 2014. 12. 26. 16:51
유시민이 쓴 한국 현대사이다. 제목 그대로 '유시민의' 한국 현대사이다. 1959년 생이니까 그가 살았던 시대인 1959년부터 현재인 2014년까지 그가 겪고, 듣고, 생각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역사가 객관적이고, 사실에 근거에 해야 한다는 기존의 생각으로는 약간 의아스러운 책이지만, 원래 역사라는 것이 역사가의 시각에 의해서 걸러진 것이라고 보았을 때 역사는 결국 '누군가의' 역사일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과 내용은 타당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더 쉽게 잘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목차를 보면 전체가 6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1장은 1959년과 2014년을 비교하면서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달라진 것들을 먼저 얘기하고 있다. 제2장은 4.19와 5.16을 얘기하면서 1960년대를 얘기하고 있고, 제3장은 그 이후 경제적인 측면의 변화를 짚었고, 제4장은 정치적인 측면의 변화를 짚었고, 제5장은 사회 문화적인 측면의 변화를 짚었다. 제6장은 남북 관계의 변화를 짚었다.
현대사라고 해서 있는 사건 없는 사건을 시시콜콜하게 다 나열한 것이 아니라 글쓴이인 유시민의 생각하기에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고,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는 데에 의미있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썼기 때문에 특별히 새로운 얘기가 나오거나, 특별히 다른 얘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글쓴이의 의도대로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 조금은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칼 포퍼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생각해 볼만해서 인용해 본다.
포퍼는 어떤 국가가 민주주의 체제인지 전제정치 체제인지 가리는 기준을 하나로 정리했다. 다수 국민이 마음을 먹었을 때 정권을 평화적으로 교체할 수 있으면 그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다. 그게 불가능한 나라는 독재국다.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하는 법률과 제도가 아예 없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런 제도가 있다고 해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그 역시 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한 법률과 제도가 있다.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부분이 많지만 국정원 같은 국가기관에서 대선에 개입한 것을 보면 정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으니.... 아울러 포퍼는 민주주의 현실적 역할을 얘기도 했다.
민주주의는 최선의 인물이 권력을 장악해 최대의 선을 실현하도록 하는 제도가 아니다.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악을 마음껏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제도다. 민주주의는 현실에 존재하는 현실에 존재하는 구체적인 악을 최소화함으로써 사회를 지속적으로 개량해나가는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이다.
각종 선거에서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악을 마음껏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제도가 민주주의인데, 이 나라에서는 최악의 인물이 나와서 악을 마음껏 저지를 수 있으니 아직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최선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최악을 피하고 싶은데 정말 쉽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사람들이 지배하는 사회에 살 수밖에 없을까? 정말 답답해서 질문을 던져보았는데, 거기에 대한 대답도 이 책에는 있다.
지금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기 위한 시민참여의 시대다. 2008년 이후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지만, 우리의 민주주의는 그런대로 작동하고 있다. 대통령과 정부가 헌법을 무시하고 법치주의를 파괴하는 행태를 보이지만 권력의 제한과 분산, 상호견제를 통해 국가기관이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 역시 국가운영의 많은 분야에서 민주화의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정책과 행태를 보이는데, 그 기반은 불합리한 제도나 경찰과 군대의 폭력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거대 보수언론과 재벌, 공안세력이 반복 주입하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휘둘리는 시민들의 의식이 그 기반이다.
정답은 우리들의 의식이다. 한마디로 우리들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까 그런 지도자를 뽑았고, 그런 정치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하여 여론을 조작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지 않고, 이미 지난 일을 어쩌겠냐고 무관심하니까 권력자들은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고, 보수 언론이 국정원을 수사하려는 검찰총장의 사생활을 야비하게 들추어서 창피를 주어 내쫓아도 분노하지 않으니 보수 언론은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필사적이고 우리들은 무관심한 것이고, 그것이 오늘날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여기에 대한 답도 이 책에 어렴풋이 나와 있다.
고령화와 에너지 위기, 양극화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변화를 이루려면 민주주의 제도와 절차를 통해 국민의 공감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것은 산업화나 민주화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한 과제다. 각자의 욕망과 신념과 이기심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연민, 교감, 공감을 바탕으로 상호이해와 협력을 이루어야만 이 과제를 해낼 수 있다. 여기서 핵심은 시민들이 자신의 욕망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관리하면서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것이다.
여태까지는 욕망의 우선순위가 생리적 욕망과 안전에 대한 욕망에만 집착해서 물질적 풍요, 대북 증오와 공포감으로 지내왔지만, 앞으로는 자기 존중과 자아실현의 욕망, 그리고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공감하는 능력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이런 시민들이 많아졌을 때 민주주의는 발전하고 우리의 위기도 극복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능력은 우리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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