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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4] 로마인 이야기 15, 로마 세계의 종언: 허무를 넘어선 허무행간의 접속/역사 2014. 6. 18. 11:17
마지막 5권은 동서로 나뉜 로마 제국이 서로 나가다가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동로마 제국이 유스티니아누스 때에 반짝 부흥하다가 멸망하는 이야기이다.
1. 게르만족과 훈족의 침입
야만족의 침입은 로마가 멸명할 때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로마가 제국으로서 영토를 넓혔을 때부터 야만족은 침입했고, 로마는 강력한 방위력으로 그들을 막아냈던 것이다. 그러나 제국의 말기에 가서는 야만족의 침략 강도가 세지고, 통치 체제가 절대군주정으로 되면서 야만족을 막아내지 못하면서 멸망하게 된 것이다.
서고트족은 로마를 침탈했고, 강화로 얻은 전리품들을 갖고 갈리아 서부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다. 프랑크족은 갈리아 북부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았고, 부르군트족은 게르마니아 방벽을 넘어 알프스 북부에 자리를 잡았다. 수에비족은 갈리아를 지나 히스파니아로 들어와 대서양 연안에 자리잡았고, 반달족은 갈리아와 히스파니아를 지나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정착한다.
이 과정에서 로마는 갈리아와 히스파니아, 북아프리카에 대해서 막아내려고는 하지만 막아내지 못했다. 이탈리아 본토조차도 지켜내지 못하는데, 속주까지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탈리아가 게르만족의 침입이 빈번하지 않았던 이유는 게르만족끼리 갈리아에서 서로 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이 갈리아를 침입하고 패했지만, 북이탈리아를 침입하였으나 로마 주교 레오 1세가 훈족을 설득하여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 때부터 로마 주교가 로마교황으로 불리게 되었고, 서방이 황제가 아닌 로마 교황에게 의지하게 되었다.
2. 스틸리코
이런 과정에서 로마에는 스틸리코가 있었다. 스틸리코는 최후의 로마인이라고 불린 사람이다. 서로마 제국의 황제는 호노리우스였지만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커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스틸리코는 게르만족이었지만 로마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로마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이었다. 알라리크의 서고트족을 북부 이탈리아에서 물리치고, 북부 갈리아의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자 갈리아를 포기하면서 이탈리아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이탈리아를 지켜냈으며, 브리타니아를 벗어난 군단병의 반란을 진압하였다. 그러나 황궁 환관들의 모함에 의해 살해된다.
3. 서로마 제국의 멸망
그동안 황제는 이름만 걸고서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거나 제국을 부흥시킬 의지는 있으나 재정, 군사력, 참모진 등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이루지 못했고, 말년에 가서는 황제에 오를 사람이 없어서 황제가 없는 기간도 있었다.
그러다 야만족 출신 장군 오도아케르가 반기를 들고 황제의 군대에 승리를 하여 서로마 제국은 망하고, 오도아케르는 이탈리아의 왕이 된다.
기원전 753년에 건국한 로마가 476년에 멸망한 것이다. 1228년 간 유럽과 아시아,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대제국이 멸망의 순간에는 허무하게 역사 속에서 자취를 감춘 것이다. 그동안 쌓아온, 감탄해 마지 않았던 로마의 저력이 이렇게 사라지다니 내가 다 허무했다. 로마 멸망에 대한 작가의 묘사를 인용해본다.
로마 제국은 이렇게 멸망했다. 야만족이라도 쳐들어와서 치열한 공방전이라도 벌인 끝에 장렬하게 죽은 게 아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도 없고 처절한 아비규환도 없고, 그래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소년 황제가 퇴위한 뒤 오도아케르가 대신 제위에 오른 것도 아니고, 오도아케르가 다른 누군가를 제위에 앉힌 것도 아니었다. 아무도 황제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반세기 저인 410년 '로마 겁탈' 당시에는 제국 전역에서 터져 나왔던 비탄의 목소리도 476년에는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
4. 제국 이후
제국 이후 프랑크족은 갈리아 북부, 부르군트족은 갈리아 남부, 동고트족은 판노니아, 아라만족은 게르마니아방벽 안쪽, 서고트족은 갈리아 서부와 히스파니아, 수에비족은 히스파니아 서부, 바스크족은 히스파니아 북부, 반달족은 북아프리카, 앵글로 색슨족은 브리타니아족이 정착하였고, 이탈리아는 오도아케르의 왕국이 되었다.
오도아케르는 서로마제국의 조직이나 관직을 유지하면서 로마인과 게르만족이 공생하면서 평화롭게 통치했다. 그러다 동고트족의 테오도리크가 쳐들어오자 공동통치하기로 강화를 맺었으나 테오도리크가 오도아케르를 죽이고 단독으로 이탈리아를 통치한다. 테오도리크도 로마인과 게르만족의 공생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서 평화롭게 지냈다. 두 야만족 왕의 통치를 '팍스 바르바리카'라고 한다. '야만족에 의한 평화'.
5. 동로마 제국과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같은 시기 동로마 제국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제위를 이어갔는데, 황제가 특별히 능력이 있었다기보다는 어린 황제의 후견인인 어머니나 누나가 통치를 잘 했고, 페르시아나 게르만족, 훈족 등의 침입을 잘 막아내기도 하였다.
그러다 동로마 제국의 영토를 이전의 로마 제국 만큼은 아니지만 꽤 회복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등장한다. 그는 야만족이 통치하는 서로마제국을 해방시키기 위해 벨리사리우스를 파견하여 로마를 탈환하기도 하고, 페르시아를 원정하기도 하고, 북아프리카와 히스파니아 남부까지 영토를 넓히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벨리사리우스 장군의 활약은 정말 눈부시다. 아울러 장엄하기까지하다. 자신이 아닌 오직 황제를 위해 제국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사나이의 투쟁은 아름답기까지하다. 특히 야만족에게 넘어간 이탈리아를 탈환하라는 황제의 명령에 이탈리아에 도착하지만 병사도, 무기도, 군량도, 군비도,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명령을 내린 황제에게 직언을 하는 모습은 진정한 로마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이탈리아는 랑고바르디족이 남하하여 자리를 잡았고, 아라비아에서 발생한 이슬람교는 그 세력을 점점 넓혀 아라비아와 북아프리카, 히스파니아, 소아시아까지 차지하였고, 마침내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어 동로마제국도 멸망한다.
6. 15권을 마치며
로마인 이야기 15권을 다 읽고서 로마 제국에 대한 이해를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사 시간에 단편적으로 이해했던 내용들이 일관된 연결고리를 갖고 이어지는 느낌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위대함을 엿볼 수 있었고, 그 두 황제에 의해서 로마가 다져지고 로마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고 리더의 중요성을 읽었다.
로마의 관용도 멋있었다. 패자를 수용하여 동화시키는 포용력은 대인배의 모습이었고, 긍정적인 의미의 제국이었다. 현대에 와서 '제국', '제국주의'는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아 수탈하고 착취하는 국가의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로마 제국은 제국 안에 들어온 세력의 안전과 식량을 보장하면서 선진적인 로마 문화를 베풀어 함께 번영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실현하고 있다. 긍정적인 의미의 제국이 가능하다는 것을 읽었다.
로마의 유적지들이 이탈리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지중해 연안에 그렇게 많은데, 나는 왜 그런 것을 몰랐을까 생각이 들었고, 로마 유적지를 따라서 지중해와 유럽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에는 람세르를 읽으며 이집트의 역사를 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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