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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 전국일주 종합편: 태양, 비, 바람과 함께 한 시간들
    바람의 시선/자전거 2008. 3. 18. 20:10
    작년에 자전거 여행을 하고나서 여행의 무용담을 얘기했더니 원고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전국일주 여행기는 하루 단위로 썼지만, 그래도 전국일주 종합편이 블로그에 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블로그에도 올려본다.

    0. 들어가며: 왜 자전거 여행인가?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발딛고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보고 싶었고, 지도의 길들을 밟고 싶었고, 모르는 사람들과 얘기도 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자전거를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다. 버스나 승용차, 기차를 생각했었지만 그러려면 주로 관광지나 유적지, 그밖에 볼거리 위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곳을 다니는 여행은 나하고 맞지 않았다. 나는 직접 길을 찾아서 밟고 싶었고,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자전거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정은 서해안과 남해안, 동해안을 돌고 미시령을 넘어 강원도를 지나 서울로 돌아오는 코스를 잡았고, 대략 23일을 계획하고 출발했다.

    1. 서해안: 태양의 시간들

    서해안이라고 해서 해안으로만 다니지는 않았다. 대전이나 전주, 광주 등과 같은 대도시도 들려서 월드컵 경기장도 방문해 보고, 대천이나 변산반도와 같은 해안가도 달리면서 바다도 보았다.

    이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전라북도 담양이었다. 담양에서 내가 방문한 곳은 죽녹원과 관방제림, 그리고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이었다. 특히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은 2차선 도로 양 옆으로 10m도 넘는 가로수가 뻗어서 터널을 이루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영화 속 주인공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구간을 지나는 동안 비는 한 번도 내리지 않았고, 오직 태양만이 우리 곁에 있었다. 더워서 힘들었지만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과 시원한 나무그늘이 피로를 풀어주었다. 때로는 낮잠도 자면서

    2. 남해안: 비의 시간들

    남해안은 목포와 부산을 연결하는 2번 국도를 주로 다니면서 군데 군데 섬이나 경치 좋은 곳을 골라다녔다. 특히 땅끝마을이 기억에 남았다. 땅끝마을은 섬이 아닌 국토의 최남단이었다. 땅끝이라고 해서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국토의 가장 남쪽을 자전거로 밟아본다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다음에는 진짜 최남단인 마라도도 가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리고 인상적인 곳은 땅끝에서 배 타고 들어갔던 보길도라는 섬이다. 이 섬은 조선시대 시조 작가인 고산 윤선도가 유배생활을 했던 곳인데, 이런 곳에서 유배하러 왔는지 자연을 즐기러 왔는지 아리송했다. 그만큼 경치가 좋았다. 특히 윤선도가 있었다는 세연정이라는 정자는 연못과 주변 바위와 나무들이 잘 어울어져서 한폭의 그림처럼 놓여있었다.

    남해안을 다니는 동안에는 8월 초였는데, 시종일관 하루도 빼지 않고 지겹게 비가 내렸다. 처음에는 비가 그치기를 바라면서 출발을 늦추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비와도 그냥 출발했다. 비가 나의 길을 막아도 갈 길은 갔다.

    3. 동해안: 바람의 시간들

    부산을 거쳐 7번 국도를 따라 가면 동해안을 따라 갈 수 있다. 여기에도 많은 볼거리가 있었지만 특별히 들르지는 않았고, 주로 타면서 경치를 둘러보기만 했다.

    동해안을 따라 가면서 불었던 바람은 에어컨 바람이었다. 바람을 맞으면 시원한 것이 아니라 추웠다. 땀을 식혀주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얼려주는 것 같았다. 나는 동해안 바랑은 원래 이렇게 다 에어컨처럼 시원한 줄 알았는데 나중에 얘기들어보니까 내가 동해안을 달릴 때 한랭기류가 와서 그랬던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아무튼 정말 추웠다.

    동해안 구간 중에서 울진에서 삼척을 지나 동해로 가는 구간은 고개길의 연속이었다. 고개를 넘었다 하면 또 고개가 나오고, 쉴만하면 고개가 나와서 나의 한계를 시험하는 듯 했다. 그렇지만 중간중간에 만나는 다른 자전거 여행객들과 인사하면서 힘을 내서 지날 수 있었다.

    4. 미시령: 여신이 있다면 나의 편

    속초까지 와서는 강원도의 마지막 고개를 넘어야 했다. 그것은 속초와 인제를 잇는 미시령이었다. 미시령 터널이 생겨서 편하게 갈 수도 있지만 정상에 오르고 싶었다. 이제 여행의 막바지에서 정상에서 절정의 순간을 맛보고 싶었다. 미시령 터널 앞의 만남의 광장에서 출발하여 53분에 걸쳐서 쉬지 않고 꼬불꼬불한 모퉁이길과 앞바퀴가 들리는 경사길을 올라 날아갈 듯한 바람이 부는 미시령 정상에 올랐다. 한 번도 쉬지 않고 올랐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믿어지지 않았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적이었다. 정상에 올라섰을 때의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미시령을 넘으면서 만일 미시령을 지키는 여신이 있다면 나의 편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5. 마치며

    서울에 와서 여행의 순간들을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겠고, 힘들었던 것 같은데, 힘들었던 순간들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재미있었던 것, 인상적인 풍경들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다시 꼽아보며 새로운 여행을 계획한다.

    여행 중간에 만났던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대단하다고 하면서 잘 대해주었다. 여행을 하지 않고, 만났으면 그냥 무심하게 지나쳤을 사람들이지만 여행이기에 친해질 수 있었다. 식당 아줌마, 주유소 아저씨, 도보 여행객, 다른 자전거 여행객, 찜질방 사장님 등...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도움이 있었기에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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