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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32]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생각을 생각해봐
    행간의 접속/문학 2008. 3. 15. 20:09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카테고리 소설
    지은이 알랭 드 보통 (생각의나무, 2005년)
    상세보기

    1. 소설인가? 전기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이 책이 소설인가 전기인가 구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허구인지 사실인지를 묻는 것이다. 허구라면 소설이고, 전기라면 사실이다. 초반에는 허구라고 생각해서 소설이라 여겼다. 그러나 중반에 사진이 몇 장이 나왔는데, 이야기 속의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진들이었다. 그렇다면 사실이고, 따라서 전기인 것이 된다.

    그런데, 전형적인 전기는 아니었다. 보통의 전기는 서술자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즉 전기의 주인공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거리를 두고 그의 업적을 이야기하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일단 서술자도 하나의 인물로 등장하여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전기의 주인공과 함께 대화하고 사건에 휩싸이고, 심리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결정적으로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나온다. 정리하자면 전기 작가가 자신의 여자친구의 전기를 쓰는데, 자신도 등장해서 쓴다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작가인 알랭 드 보통이 정말 이 여자와 사귀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어 다시 소설일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만일 소설이 아니고, 사실라면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들이 공개된 이사벨이라는 여자는 출판에 동의를 했는지 궁금하다.그러나 여기에 대한 정보는 없다.

    기존의 전기의 틀을 깨고 새로운 전기를 쓰려고 하는 작가의 시도는 신선한 느낌을 주고, 한 인물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를 가져올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낯설어서 특별한 집중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2. 섬세한 생각의 묘사

    사람들은 일상 생활에서 무수히 많은 생각들을 흘려보낸다. 많은 생각들이 빛의 속도로 빠르게 스쳐지나가는데, 느낌으로는 알지만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작가는 그것을 언어로 표현한다. 아주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이 작가의 작품들이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던 요인 중의 하나는 이러한 섬세한 묘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사벨이 일기를 쓰고 있을 때 내가 불편함을 느꼈던 것은 일기를 쓰는 사람들이 심리 상담가의 상징적 위치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말로 들려주는 것보다 우리에 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있고, 그것들은 비밀로 분류돼 우리에게 위압감을 주기 때문이다."

    3. 다양한 열거가 주는 재미

    또한 어떤 사실을 열거할 때 빈약하게 열거하지 않고, 다양하고 풍성하게 열거해서 열거하는 내용도 재미있지만, 이렇게 많은 열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를 느끼게 하는 특성도 있다. 주인공인 이사벨이 어렸을 때 궁금해한 것들을 열거하는 내용은 한페이지가 넘게 등장하기도 한다.
    "궁금한 게 많았다. 텔레비젼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꺼지고 나면 무엇을 하고 지낼까? 그들은 다 어디에 있다가 나오는 것이며 어쩌면 그렇게도 빨리 모습을 바꾸는 것일까? 엄마는 왜, 사람들한테 주기 위해 텔레비전 화면에 우유를 들이붓던 이사벨을 철썩 때렸던 것일가. -이사벨은 그들이 건강하냐고 엄마한테 묻곤 했다- 다른 것들도 있다. 만일 지구가 우주에 떠 있는 테니스 공 같은 것이라면 과연 우주는 어디에 떠 있는 것일까? 우주를 떠 있게 하는 더 큰 공간이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정원 울타리의 부서진 틈새로 기어다니는 개미들을 보는 것처럼 누군가가 지구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관리인인 브라이슨 아줌마는 어디로 갔을까? 아침에......"

    4. 그러나 내 취향이 아니다.

    작가만의 독특한 특성이 있는 책이었지만, 그 독특함이 나에게는 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읽는데, 3주가 걸렸다. 물론 새 학기가 시작되어 책을 읽을 시간이 부족했지만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더라도 일주일은 걸렸을 것 같다.

    읽으면서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전기인지 소설인지 구분하지 못해서 중반까지 일관된 생각을 가질 수 없었고, 작가의 글의 내용과는 별 상관없는 주변적인 지식이 선형적으로 그려지지 않고, 다소 산만하게 나열되어 있어 따라가기 좀 힘들었다. 익숙하지 않았다. 또 내가 글을 섬세하게 하나하나 꼼꼼하게 읽는 편이 아니라서 세부적인 묘사가 계속 이어지면 그 호흡을 따라갈 수가 없어서 힘들었다.

    마지막으로 현재 작가의 다른 책인 『프루스트를 좋아하세요』라는 에세이를 읽고 있는데, 좀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나에게 맞지 않지만 익숙해지고 싶은 이유는 생각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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