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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02] 농담하는 카메라: 부제가 있었으면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13. 11. 20. 10:26
제목을 보고 두 가지를 생각했다. '농담하는'에서 성석제의 기지와 재치를 엿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카메라'에서 사진과 풍경, 그리고 대상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읽고난 후 내가 생각한 이 두 가지는 책 속에 없었다. 단지 대상에 대한 나름 깊이 있는 생각들은 발견할 수 있었다.
작가의 말에서 '농담하는 카메라'라는 의미를 카메라의 조작적인 여러가지 기법들이 결국은 농담이라고 할 수 있고, 그런 카메라의 관점으로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풀겠다는 것 정도로 풀어놓았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내가 생각한 '농담'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전체적인 느낌은 여러 곳을 다니면서, 일상적인 경험 속에서 드는 생각과 느낌을 편하게 풀어놓은 것이다. 간간히 성석제다운 기지와 재치가 느껴지기는 하지만 어쩐지 어르신의 입장에서 가르치려는 느낌도 드는 것도 있다. 이런 부분들은 실망스러웠다.
그래도 내용보다는 표현에 있어서 기발한 부분이 있어서 인용해본다. 황도 복숭아의 맛을 묘사한 부분이다.
이가 복숭아 과육에 박히고 나서 "아, 이건 중독성이 있다. 한번 빠지면 헤어날 수 없을 것 같다. 나 돌아갈래!" 해도 살아버린 인생을 되돌릴 수 없듯 박은 이를 되돌리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혀는 복숭아의 질감에 판단이 마비되고 볼의 점막세포가 과육에 닿기 위해 안으로 쏠린다. 시지는 않고 약간 새콤한 맛이 귀 아래쪽의 침샘을 자극하자마자 홍수처럼 분비되는 침 때문에, 심지어 고막에서 가까운 무슨 도랑에서 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는 사람도 있다. 향기는 어릴 때 먹던 노란 가루약처럼 약간 이국적이면서 진하다
복숭아에 입에 박히고부터 맛을 보는 과정을 미세하게 묘사하고 있어서 재미있다. 그게 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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