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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77] 남자의 물건: 남자의 존재를 드러내는 물건들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12. 11. 28. 22:23
대학교수인데 대학교수 같지 않다. TV에 나와서 얘기하는 것을 들어보면 진지함과 무게감이 없다. 그래서 내용들이 쉽게 들어온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쉬운 내용들이 아니다. 그게 그의 매력이다. 쉽지 않은 내용을 쉽게 얘기한다. 접근성... 아주 좋다. 글도 마찬가지다. 문장이 호흡이 짧고, 명확하다. 감정적이며, 위트가 있다. 밉지 않고 맛이 있다.
1부는 '남자에게'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남자들의 삶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이렇게 살자는 얘기를 한다. 불안해 하지 말고, 재미있고, 현재를 즐기면서, 자기를 찾아서.... 뭐 그런 얘기다. 그 중에 재미있는 부분들을 보자.
새해가 되면 계획을 세우면서 결심을 하는데, 이런 것들을 들여다 보면 거의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거다. 그러나 글쓴이는 제발 자기 자신은 싸워서 이겨야 할 적이 아니라 조곤조곤 달래서 설득해야 할 여린 존재라고 말하면서 자기자신과는 많이 싸웠으니까 그만 싸우자고 말한다. 그러면서 새해가 되면 좀 재미있고 통쾌한 것을 세우자고 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기. 실제로 얼마나 실천할지는 모르지만 이런 불가능한 계획을 세운 것만으로도 통쾌하지 않는가? 그리고 인류가 1년 365일을 만든 이유를 얘기한다.
미래는 원래 불안한 거다. 어디로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는 무한 지속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견디지 못해 1년 365일을 만든 것이다. 무한한 미래를 1년 단위로 끊어놓으면, 미래가 매년 새로 시작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365일이 지나면 또다시 시작할 수 있는 미래는 그다지 무섭지 않다. 영원으로 사라지는 게 아니라 매번 반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해는 인류가 시간의 공포와 불안에서 풀려나기 위해 지난 수만 년간 고안해낸 마법이다. 그래서 새해를 축하하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정말인지 아닌지 모르겠는데, 정말 그럴 듯하다. 과학이 만든 1년을 문화심리학로 정말 잘 포장했다. 쏙쏙 들어온다.
주말과 휴가가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대나무는 아무리 태풍이 불어도 부러지지 않는다. 채 몇 센티미터도 되지 않는 가는 줄기가 높게는 수십 미터까지 올라간다. 마디가 있는 까닭이다. 마디가 없는 삶은 쉽게 부러진다. 아무리 바빠도 삶의 마디를 자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 기다. 그래서 주말도 있고 여름휴가도 있는 거다.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 삶의 마디를 잘 만들어 '가늘고 길게' 아주 잘 사는 것을 뜻한다.
삶의 마디를 만들어서 가늘고 길게....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다.
2부는 '남자의 물건'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는데, 자기 이야기가 풍요로워야 행복한 존재고, 할 이야기가 많아야 불안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 남자들의 존재 불안은 할 이야기가 존재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 이야기거리를 찾아주기 위해서 남자의 물건을 들고 왔다. 물건 자체를 얘기하기보다는 물건을 통해서 매개된 존재의 스토리텔링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유명인들과 그들의 소장품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그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얘기를 나눈다. 안성기의 소장품은 스케치북이다. 그는 그림을 그린다. 조각가인 아내가 작품활동을 할 때 옆에서 가만히 있으면 심심하니까 자기도 옆에서 뭔가 해보려고 시작한 것이 그림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이제 작품활동을 접었는데, 그는 여전히 그림을 그린다. 촬영이 없을 때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내면을 다듬는다고 한다. 그렇게 다듬어진 내면은 그의 겸손함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안성기의 겸손함에 대해서 글쓴이는 반짝이는 생각을 내놓는다.
많은 사람들은 안성기가 매우 겸손하다고 이야기한다.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모든 사람이 겸손하다고 하는 사람은 결코 겸손한 사람이 아니다. 누구도 나와 비교할 수 없다는 내면의 절대적 자만이 있어야만 모든 사람에게 겸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겸손하지 않은 사람의 허접한 자만은 정말 못봐주겠다.
조영남의 소장품은 안경인데, 안경 얘기는 재미없고, 결혼 얘기가 재미있다. 조영남은 결혼중임제를 얘기한다. 결혼은 5년만 하게 제도화하는 것이다. 5년 살아보고 계속 살만 하면 5년 더 살고.... 그렇게 10년까지만 살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배우자를 바꿔야 한다. 이런 공약을 대선 공약으로 하면 여자들은 남편 갈아치우고 싶어서 표를 몰아줄 것이고, 멍청한 남자들은 다른 여자들과 살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표를 몰아줄 것이다. 그러면 당선! 아.. 정말 재미있는 상상이다.
그밖에 이어령의 책상, 신영복의 벼루, 차범근의 계란 받침대, 문재인의 바둑판, 김문수의 수첩, 유영구의 지도, 이왈종의 면도기, 박범신의 목각 수납통 등을 통해 사람들을 얘기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있고, 예상대로인 것들도 있었다.
사람마다 물건이 있는데, 나의 존재를 드러내는 물건이 뭐가 있을까 싶다. '소유의 향취' 카테고리를 활성화해봐야겠다. 돈은 좀 안들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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