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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73] 학교의 풍경: 교사의 변화 없이 학생의 변화 없다.
    행간의 접속/교육/청소년 2013. 8. 26. 13:20

     


    학교의 풍경

    저자
    조영선 지음
    출판사
    교양인 | 2011-10-0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11년차 교사의 좌충우돌 분투기를 통해 우리 교육을 정직하게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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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직 교사로서 인권을 중심으로 한 학교의 모습을 내밀하게 드러내고 있는 글이다. 요점은 권위주의를 바탕으로 한 수직적 관계로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고, 인권을 바탕으로 한 수평적 관계로서 교육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직적 관계에서 수평적 관계로 이전하는 역할을 인권이 맡아서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권은 어떤 대안을 제시한다기보다는 끊임없는 질문으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균열을 내어 성숙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로서 공감하는 것들, 인상적인 것들을 남기고자 인용해본다.


    교사라면 누구나 '바른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때 전제는 '바른' 것은 정해져 있고, 무엇이 바른지에 대해 교사는 명확히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바른' 것이 아이들 입장에서 '바른' 것이 아닌 경우도 많았고, 오히려 '가르쳐야 한다'는 나의 태도가 아이들을 배움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을 알려주겠다는 열망 때문에 '좋은' 것을 '거부'하는 아이들을 지도하겠다고 비인간적인 수단을 쓰기도 했다. 그 결과는 '좋은' 것을 '좋은' 것으로 가르치지 못하고 '위선적인 것'으로 기억하게 했다. 즉 '배려'를 가르치면서 떠드는 아이를 참을 수 없어 훈계의 탈을 쓴 모욕을 던져, 그 아이가 '배려'를 '모욕'이라고 기억하도록 했던 것이다.

     

     교사는 교사의 입장에서 배려를 하지만, 정작 배려를 받는 학생들은 그 배려를 모욕, 혹은 위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이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왜 내 말을 듣지 않느냐고, 학생들의 문제만을 지적하는 것은 진정한 문제 해결이 될 수 없다. 물론 교육적이지도 않고....


    아이들이 짐승처럼 구는 게 사실이라면, 왜 아이들이 짐승처럼 굴까? 짐승처럼 구는 모습이 그 아이의 전체 모습일까? 학교라는 특정 장소에서 교사라는 특정 존재에게만 짐승처럼 구는 것은 아닐까?


    맞다. 짐승처럼 구는 아이들은 학교에서만 짐승처럼 굴고, 교사에게만 짐승처럼 군다. 때로는 특정 교사에게만 짐승처럼 구는 경우도 있다. 즉, 학생과 소통하지 않고, 권위적으로 학생들을 끌고 가려는 경우에 학생들은 주로 짐승처럼 구는 것이다. 학생들의 의식은 바뀐지 오래 되었는데, 여전히 옛날식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경우가 이런 경우이다. 담임교사로서 이런 교과선생님과 우리 반 아이들 사이에 끼어 있을 경우 피곤하다. 아주!

    그렇다면 이런 짐승같은 아이들을 학교 밖에서 만나면 아주 멀쩡하다. 인사도 잘 하고, 반가워하고, 친구들도 잘 챙기고, 도무지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다. 학급 행사를 야외에서 할 때 보면 저희들끼리 계획을 세워서 역할 분담하고, 아침에 일찍 깨워주기도 하면서, 누군가가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에는 도와가면서 진행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다 못해 사제동행 산행이라도 가서 같이 땀흘리면서 산에 오르면서 얘기를 나누면 자기도 학교에서는 왜 그렇게 변하지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결국 짐승은 학교가 만드는 것이다.


    아이들은 모의고사 성적표가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즉 모의고사 성적으로 자신의 능력이 표현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은 자신이 전국 2만등짜리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기준이 자신을 표현하는 의미 있는 근거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잔다. 즉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잤기 때문에 그런 성적을 받은 의미 없는 성적표로 만들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시험을 안 보고 자거나 모두 같은 번호로 찍는 행위는 어찌 보면 최소한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이다. 자신의 능력을 어떤 평가 도구로도 잴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우리 학교도 작년 학업성취도평가 결과가 좋지 않아 올해 학습부진 학생지도를 위한 예산을 천만원이 넘게 지원받았다. 그리고 올해 성취도평가에서는 성적을 올리기 위해 그 돈들을 쓰고 있는 중이고, 특히 올해 6월 시험에서는 백지 답안이 없게, 한 줄로 체크하지 못하게, 자지 않고 볼 수 있게 하도록 담임들에게 특별 연수도 했다. 또한 체험학습도 불가하고, 질병으로 빠질 경우 명확한 근거 서류를 챙겨야 했으며, 매 교시 후 담임이 학생들의 답안을 체크해야 했다. 이제 자신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최후의 소극적인 몸부림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잤고, 한 줄로 찍었다. 그걸 다시 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한 줄로 찍는 것은 안되고, 여러 개로 찍으면 된다고 하면서 다시 체크하라고 들이민다면 그것도 우습지 않나? 정말 교사들을 개그맨 일보직전까지 만드는 상황이다.


    마지막으로 교사에게 반항하는 학생들의 심리를 잘 분석한 부분을 좀 길지만 인용해본다.


    지금까지 교사는 인성에 있어서도 지적인 우월자로서 미성숙한 존재들이 알지 못하는 잘못된 행동을 판별하고 지적한 후 벌을 주어 그것이 교정되도록 하는 존재였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이 주로 잘못하는 행동을 '판단'하고 '지적'하고 '벌을 주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런 교육 방식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우선 학생이 교사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는다. 그래서 교사의 지적에 "왜요?"라고 먼저 묻는다. 그리고 지적의 내용보다는 '교사'가 지적했다는 사실에 꿀리지 않으려고 더 센 척을 한다. 그래서 교실에서는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교무실에 와서는 잘못했다고 한다. 학생들이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교사를 같은 인간이 아닌 권력의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자신을 같은 인간으로 존중해주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점을 찾아내어 지적하는 데 집중하는 존재, 때로는 자기 스스로도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약점을 들춰내어 고치겠다고 자신에게 명령을 하는 존재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적한 내용에 집중하지 않고 그 존재를 배척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교사는 자신에게 강압을 쓸 수 있는 존재니까 교사에게 반말이나 욕설 등 인간적인 상처를 줘도 죄책감을 못 느끼는 것이다. 즉 평등한 관계여야 상호 배려가 가능한데 지금의 배려는 순종이나 복종으로 읽히기에 울림이 없고, 서로 인간다운 관계를 맺는 데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교사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를 여기서 발견했다. 교사는 명령만 하는 존재이고, 인간적인 것을 교류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그런 것이었다. 결국 교사와 학생이 어느 정도는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해야지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드는 생각은 교사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서 학생이 변하기를 원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교장이 변하지 않으면 학교가 변하지 않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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