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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7] 토끼전 (꾀주머니 뱃속에 차고 계수나무에 간 달아놓고 : 근대적인 인물, 토끼행간의 접속/문학 2013. 3. 30. 22:25
토끼전을 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1. 토끼와 자라, 토끼와 용왕의 밀당
토끼전의 재미는 밀당이다. 토끼를 용궁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자라가 토끼를 꼬시는 장면에서 육지가 얼마나 위험하고, 수궁이 얼마나 안전하고 좋은 곳인지를 알려주고도 토끼가 반신반의하자 자라는 그럼 관두라고, 호랑이한테 가겠다고 하면서 승부수를 던진다. 토끼는 남주기는 아까운지라 그 미끼를 덥석 물고 따라나선다. 그 과정이 재미있다.
또, 용왕이 토끼의 간을 꺼내려하자, 배를 갈라서 간이 나오지 않으면 자신이 죽는 것은 상관없지만 병도 못고치고 헛수고니까 나를 가서 간을 가져오겠다고 하고, 용왕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자, 못 믿겠으면 배를 갈라도 좋다고 승부수를 던지니까 용왕이 그 말을 믿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토끼의 한 수가 용왕을 이긴다. 이 과정도 재미있다.
밀당은 연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2. 별주부의 아내
별주부의 아내는 주변인물이지만 사회적인 상황을 드러내기도 한다. 자라가 육지로 가기 전에 부인에게 떠나야 함을 얘기하니까 부인은 위험하니까 가지 말라고 한다. 이에 대해 자라가 갈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이웃집 남생이가 가끔씩 자신의 부인을 넘보는 것이 신경쓰여서 절개를 지키라고 하자, 부인은 내 마음이라고 한다.
또 토끼가 용왕을 속이고나서 자라가 토끼의 꾀에 빠지지 말라고 간언을 하자, 오히려 용왕은 토끼의 편을 들어 자라 부부가 벌을 받을 처지에 놓이자 토끼는 자라의 부인을 바치라고 요구하여 하룻밤을 보내는데, 자라의 부인은 토끼에게 완전히 빠져서 떠나는 토끼를 기다리겠다고까지 한다. 남편을 잃은 과부가 재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멀쩡히 지아비가 있는데 다른 남자를 마음에 품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파격적이다.
3. 풀려난 뒤의 토끼 뒷 얘기
용왕을 속이고 육지로 와서 풀려난 뒤에 2가지 이야기가 있다. 사냥꾼의 그물에 걸렸는데, 쉬파리의 도움으로 쉬를 슬게 하여, 썩은 것처럼 위장하여 풀려나고, 독수리에게 잡혔는데, 꾀주머니를 주겠다고 속여 동굴 속으로 도망가는 2개의 이야기가 있다. 둘 다 위기 상황에서 꾀를 생각하여 벗어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부분은 처음 보는 것으로 새롭게 알게 되었다.
4. 근대적 인물로서의 토끼
개인에 대한 각성이 이루어지지 않은 봉건사회에서 왕에 대하여 저항하고, 자신(개인)의 안전을 확보하려는 의지의 표현은 다분히 근대적인 인물로 받아들여진다. 단순히 꾀를 써서 위기를 극복했다는 측면이 아니라 모든 것이 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대에, 개인의 목숨을 오직 왕의 마음대로 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에 자신을 지키겠다는 생각은, 왕의 명령을 거부하겠다는 생각은 분명 파격적이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이 그 때에는 당연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조선 후기에 근대적인 각성이 많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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