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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81]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공상 야구 인생 소설행간의 접속/문학 2012. 12. 7. 00:40
제목만 봐도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의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또한 야구를 좋아하기에 읽기도 전에 이 책에 대한 호감도는 굉장히 높았고, 그래서 기대가 컸다. 그리고 기대는 충분히 충족되었다. 재미와 주제 모두 다.
1. 줄거리
줄거리라고 할 만한게 별로 없다. 1부는 중학교 때 얘기다. 1982년 중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프로야구가 생겼고, 인천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삼미 슈퍼스타즈 어린이 회원에 가입했고, 열렬히 응원을 했으나 좌절했고, 우울했고, 1983년에 장명부의 등장으로 반짝 선전했으나 84년 다시 침체되고 삼미는 해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느끼는 부침을 아주 주관적이고, 허황되고, 수다스럽고, 과장되고, 그렇지만 감각적으로, 결과적으로 재미있게 그리고 있다. 2부는 대학교 때 얘기다. 야구에는 별 관심이 없어지고 공부만 해서 일류대에 들어간 주인공이 연애하고, 데모하고, 빌빌 대던 시기이다. 3부는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해서 쳇바퀴 같은 삶을 살다가 IMF로 실직한 후 중학교 때 친구 조성훈을 만나 주류의 경쟁적인 삶이 아닌 비주류의 자유로운 삶을 살면서 삼미 슈퍼스타즈의 이념을 완성시킨다는 얘기다.
2. 소설이 아닌 줄 알았네
1부를 읽으면서는 소설이 아닌 줄 알았다. 소설이라기보다는 그냥 과거의 자기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허구가 아니라 실제 자기 얘기 같았다. 소설이 어느 정도는 허구적이어야 하는데 내가 알고 있는 프로야구 얘기들이 나오니까 나의 현실을 대입하여 생각하게 되고 결국 이건 소설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 같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도 전형적인 소설의 흐름보다는 주인공의 삶을 그냥 순차적으로 쭉 보여주는 흐름상으로는 밋밋한 이야기를 재미있고, 독특한 문체로 보여주는 것 밖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3. 우주적 상상력의 기발한 문체
소설 전체는 우주적 상상력의 문체에 휩싸여 있다. 평범한 지구적인 상상력을 뛰어넘는 상상력의 문체이다. 한 문장도 평범하지 않고 모든 문장이 다 이런 식이다.
그러나 그 8:0의 패배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아니 '일각'이라는 표현조차 너무 거대하게 느껴질 정도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패배가 우리 앞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리그가 전개되면서 서서히 삼미는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 게임 한 게임 그것은 분명 평범한 패배가 아니었고, 뭔가 야구의 상식이 무너지는 느낌의 패배였고, 우주의 역행과 자연의 순리를 거스른다는, 그런 느낌의 패배였다. 우주를 바로잡고 자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늘 생각해온 우리의 응원은, 그래서 더욱 필사적이 되어갔다.
작가를 직접 만나면 참 수다스러운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다.
4.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나는 이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화려운 입담으로 재미만 추구하는 줄 알았고, 그 재미만으로도 만족할 준비는 되어 있었는데, 3부에 와서 주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주인공의 예전 친구 조성훈이 실직한 주인공과 함께 살면서 그에게 영향을 미친다.
실직한 그에게 이제 그만 쉬고 야구나 하자면서 캐치볼을 할 때 주인공은 공중을 향해 높이 던진 공을 잡으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말도 안되게 맑고 투명하고 눈이 부시게 푸르러 아름다운 하늘을 보고야 만다. 그리고 공에 머리를 맞았지만 그 순간 잊혀졌던 삼미 슈퍼스타즈가 그의 가슴에 들어온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뭔데? 삼미 슈퍼스타즈는 경쟁의 세계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재림한 예수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인가? 프로 야구가 출범하면서 세상은 프로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우리를 프로처럼 만들려고 한다. 우리를 프로처럼 만든다는 것은 경쟁의 구조 속에 우리를 쳐 놓고 약육강식의 논리로 우리를 닥달해서 생산성을 높이고 도태되는 자는 방출하는 시스템에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아마추어라고 하면서 핍박하고 박해하고... 우리는 프로가 아니면서 프로가 되기 위해 죽도록 일하지만 결국에는 방출되는, 혹은 은퇴하는 존재가 되는 것.
그런 경쟁의 상황에서, 모두가 프로가 되는 상황에서, 삼미는 지극히 평범한 팀이었다. 프로의 이름을 붙여놓았지만 프로가 되지 않았고, 묵묵히 자신만의 야구를 했고, 결국 완성한 것이다.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자기 수양의 야구를 완성한 것이다. 이게 무슨 자기 수양인가? 자기를 높은데로 이끌어야지 자기 수양이지... 그게 아니란다. 프로야구에서 가장 힘든 것은 우승을 하는 것,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라는 빛나는 자존심을 과감히 내려놓고 본래의 자신을 인정하면서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것이 가장 힘든 것이다. 그것을 삼미는 했고, 그것이 결국 자기 수양의 야구인 것이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야구에서 이런 생각을 하다니...
5. 그리고 주인공의 삶은
그리고 그 삼미의 가르침은 주인공과 조성훈의 삶에 그대로 각인되어, 생활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하고, 나머지는 노는 자유로운 삶의 가치를 추구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조성훈은 6시간만 우유 배달을 하고, 나머지 18시간은 자유롭게 지낸다. 주인공은 퇴직금이 바닥날 때까지 24시간 놀다가 돈이 다 떨어지면 그 때 일을 찾을 생각을 한다. 요새 같은 세상에 그러다 쪽박 찬다고? 걱정된다고? 걱정 마시라 무슨 수든 생기고 어떻게든 살 수 있다고 말한다.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필요 이상의 것들 속에 인생은 없다는 얘기가 진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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