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2 시즌 첫 스키를 앨리시안 강촌에서 시작했다. 11/12 시즌은 애기도 봐야 하고, 방학 때 보충 수업도 해야 하고, 각종 연수도 받아야 해서 1월 16일 이후에나 시즌을 시작하고, 2월에 좀 다닐 수 있으려나 생각했다. 그래서 나만 가는 스키 일정은 거의 생각도 못하고 애기도 함께 갈 수 있는 날들을 예약한 것만 생각했다. 아내는 집에서 애기 보는데, 나만 스키 타면 너무 미안하니까....
일단 마음을 그렇게 먹고 있는 차에 아내가 스키를 그렇게 좋아하는 남편이 스키장 가겠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기특해 보였는지, 아니면 불쌍해 보였는지 혼자 가는 스키에 대해서 살짝 운을 띄우길래 바로 설거지와 집안 정리, 빨래 걷고 개기, 애기 기저귀 갈아주기 등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12월 안에 갈 수 있는 날을 간신히 확보했다. 그 날이 바로 12월 30일 오늘인 것이다.
처음부터 앨리시안 강촌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작년 시즌에는 비발디파크를 주로 다녔는데, 비발디의 셔틀과 할인 제도가 편했기 때문에 그랬었다. 그러나 올 시즌에는 내가 오전에 8시부터 9시 30분까지 보충을 하는 바람에 새벽에 셔틀을 탈 수 없고, 그렇다고 오전을 보내고 가자니 탈 만한 시간대의 리프트권을 생각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알아본 스키장이 앨리시안 강촌이다. 앨리시안 강촌은 비발디파크의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9시 30분에 보충이 끝나면 집에 와서 11시 25분에 잠실역에 있는 셔틀을 탈 수 있었고, 물론 무료이고, 리프트권도 주간권, 야간권, 이런 식이 아니라 2시간권, 4시간권, 6시간권, 8시간권으로 되어 있어서 언제 가도 내가 타고 싶은 만큼 탈 수 있었다. 따라서 11시 25분 셔틀을 타고, 1시 정도에 도착해서 점심 먹고, 2시에 6시간권을 끊으면 5시까지 타고, 정설 끝나는 6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탄 후에 쉬다가 11시 셔틀 타고 서울 와서 12시에 시내버스 타고 집에 들어오면 1시에 잘 수 있다. 거기다 카드 할인도 있어서 요일별로 50% 할인이 되는데, 요일 선택의 폭도 넓었다.
그래서 예정대로 셔틀을 타고, 앨리시안 강촌에 1시 정도에 도착했다. 슬로프를 보니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점심시간이라서 사람이 별로 없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 점이 앨리시안 강촌의 첫번째 장점이다. 사람이 목욕탕처럼 붐비는 스키장이 아니었다. 자연히 오후 3~4시 경 생기는 범프도 별로 없었다. 또 당연히 설질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다. 이것은 두번째 장점이다.
슬로프맵을 통해서 가능한 슬로프들을 다 돌아보려고 했다. 그리고, 거의 다 돌아보았다. 재규어와 제브라만 빼고... 다 돌아본 느낌은 두 가지였다. 슬로프 규모가 그렇게 크지 않다보니 단조롭다는 느낌이 들었고, 또 하나는 중급자에게는 좋은데, 초급자와 상급자한테는 재미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중급자는 드래곤, 호스, 페가수스, 디어, 퓨마 등 다양한 슬로프를 탈 수 있지만 초급자는 래빗 하나, 상급자는 레퍼드와 재규어만 있어서 선택의 폭이 너무 좁다. 특히 정상에서 내려오는 중급자 코스들의 초반 경사는 정상이 아무나 올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기도 하였다.

위에 사진은 레퍼드 정상에서 찍은 사진이다.
타다 보니까 슬로프들이 용평의 골드 코스와 비교가 되었다. 디어 슬로프는 용평의 골드 밸리, 퓨마 슬로프는 골드 파라다이스에서 골드밸리로 빠지는 길, 호스 슬로프와 페가수는 골드 환타스틱, 레퍼드는 뉴골드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길이는 용평보다는 짧은 느낌이었다.
시즌 첫 스킹이라서 드래곤에서 플르그 보겐으로 날에 대한 감을 익히고, 디어에서 패러렐 턴으로 감을 익혔다. 4시 정도까지는 감이 오지 않다가 2시간 정도 타니까 몸이 많이 풀려서 어느 정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다가 저녁 먹고, 정설 마친 6시 30분에 정상에 오르니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내 세상이다 싶은 마음에 숏턴도 해보고, 카빙도 해보니까 다 되는 것이었다. 마치 꿈처럼... 진짜 뉴질랜드 스키장이 따로 없었다. 대박... 여기는 6시 30분에 정설 마친 슬로프를 먼저 타려고 경쟁하는 사람들마저도 없다. 이런 착한 스키장이 있나...
그건 그렇고 안경이 불편해서 렌즈를 끼고 탔는데, 저녁 먹다가 눈에 뭐가 들어간 것 같아서 자꾸 비볐더니 렌즈가 말렸다. 결국 야간에는 안경을 꺼내서 탔다. 아침에 렌즈 끼느라고 20분이나 걸렸는데, 아까웠다.
그렇게 10시까지 타고, 집에 오니 12시 30분이었고, 몸은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듯 성한 곳이 없었다. 다리는 앉았다 일어나기도 힘들고, 팔은 애기 안고 있기도 쉽지 않았으며, 허리와 어깨도 움직일 때마다 통증이었다. 그래도 신나게 탔으니 후회는 없고, 다음 주 중에도 아내의 허락을 얻어서 하루 정도 갈 수 있는 날을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