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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3] 혜화, 동: 혜화의 화해
    느낌의 복원/영화 2011. 2. 28. 15:56

    혜화,동
    감독 민용근 (2010 / 한국)
    출연 유다인,유연석
    상세보기

    오랜만에 독립영화를 보았다. 2~3년 전에는 매 달 한 편 이상은 보러 다녔었는데, 요새는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앞으로는 좀더 자주 볼 수 있도록 시간을 만들어야겠다. 오늘 본 영화 『혜화,동』은 작년에 최고의 독립영화라고 찬사를 받았다고 홍보사에서 홍보하는 영화이다. 작년에 독립영화를 많이 못 봐서 정말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본 다음의 느낌은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제목이 종로구 대학로의 '혜화동'인 줄 알았다. 젊은 거리의 젊은이들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거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더라. '혜화'는 사람 이름이고, '동'은 감동, 혹은 같이 공감한다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지금부터 영화에 대한 얘기 속에는 스포일러가 들어있으니 참고하시기를 바란다.

    1. 혜화와 한수, 그 가족들
    혜화와 한수는 이 영화의 중심이 되는 두 인물이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 때 사귀다가 애기를 갖게 되었고, 한수 가족의 반대로 둘은 결혼하지 못한다. 이 때 부모들은 아이를 입양보내고, 두 사람에게는 아이가 죽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5년 후 한수가 찾아와 자신들의 아이가 살아있어서 대학교수의 집에 입양되었다고 말하고, 아이에 대한 마음을 서서히 키우다 결국 아이를 유괴까지 하게 된다. 이 때의 흐름이 굉장히 차분하게 잘 조절되어 있다. 배우들의 감정선이 서서히 고조되는데, 그 흐름이 거칠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유괴한 그 아이가 자신들이 입양시킨 아이가 아니라 한수의 조카임을 혜화는 알게 된다. 일을 꾸민 한수는 혜화의 삶을 망쳤다는 죄책감에서 혜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극의 중반에 한수는 자신들의 아이를 찾아 대학교수 집을 배회하다 대학교수에게 걸려서 봉변을 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자신이 왜 그 집을 염탐하고, 배회했는지를 말하면서 대학교수 부부와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이 때 대학교수 부부가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이러면 곤란하다. 다시는 찾아오지 말아라"라는 내용의 말을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유괴된 아이의 부모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대학교수의 아이들을 유괴한 줄 알았는데, 한수가 조카를 유괴한 것임이 밝혀지자 대학교수 부부가 했던 말은 "그 아이는 당신들의 아이가 아니고, 다른 곳에서 입양한 아이다." 혹은 "우리가 낳은 아이다."라는 내용의 대화였을 것이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감독의 뛰어난 편집으로 관객들의 상상을 완전히 뒤집어서 뒤통수를 때린 것이다. 기분 좋게....
    그건 그렇고, 아이를 유괴하여 한수, 혜화, 아이 이렇게 셋이서 마치 가족처럼 저녁밥을 먹는 장면은 주인공들이 꿈꾸었던 평범하지만, 행복한 가정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2. 혜화와 버려진 개들, 그리고 개장수
    혜화는 현재 동물병원에서 일하면서, 유기견들을 구호하는 활동도 한다. 유기견이 보이면 데려와서 치료해준다. 버려진 개들을 거둔다는 행동 속에는 자신이 거두지 못한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씻으려는 의식이 엿보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죄책감은 또한 깎은 손톱을 버리지 못하는 행위에서도 나타나는데, 깎은 손톱은 지나간 시간들이고, 그 시간들을 지울 수 없음을, 과거에 매여 있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문득 문득 나타나는 개장수는 혜화의 의식 속에 숨어 있는 두려움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개를 구하려고 하지만 개장수가 먼저 나타나 개들을 잡아가 버림으로써 혜화는 좌절하고, 공포를 느끼게 되니 말이다.

    3. 혜화와 수의사, 그리고 그 아들 현웅
    혜화의 두번째 현재 상황은 홀아비 수의사에 대한 마음이다. 수의사에게 마음이 있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대신 그의 아들 현웅에게 엄마 역할을 하면서 그의 곁에 있으려고 한다. 동시에 현웅을 통해 자신의 아이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수의사는 다른 여자와 재혼을 하여 혜화의 마음에 상처를 준다. 수의사에 대한 혜화의 마음은 정말 알 듯 말 듯한 그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표현되어 있다. 섣불리 마음을 보여줄 수 없는 여자의 마음을 정말 잘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수의사의 결혼 소식을 들었을 때 "왜 나는 아니에요?"라고 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만 이내 "장난으로 그래 본 거에요. 놀라게 해주려고."라고 하면서 마음을 숨기는 장면은 어쩔 수 없이 마음을 접어야 하는 안타까움을 잘 표현하였다.
    결국 마음을 둘 대상을 잃어버리고나서 아이를 유괴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4. 혜화와 엄마
    혜화의 엄마는 친엄마가 아니다. 아버지가 밖에서 혜화를 낳아가지고 데려왔고, 엄마는 친자식은 아니지만 혜화를 키웠다. 결국 세 모녀의 자녀들은 친모로부터 양육받지 못하는 운명을 가지게 된 것이다. 혜화의 아이는 입양 혹은 죽음으로 엄마의 손에게 키워지지 못하고, 혜화도 밖에서 낳아 데려왔기 때문에, 친모에게 양육되지 못하는 것이다. 친모에 대한 그리움과 정이 결핍되는 운명이 끊어지지 않고, 대를 이어나가는 고리를 보여준다.

    5. 혜화와 흰개,
    혜화가 살던 옛 집은 재개발로 철거되었지만, 그 때 키우던 개가 낳은 흰 개는 거기에서 자라나 그곳에서 떠돌며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흰 개는 다시 새끼를 낳으면서 힘들고 고단한 삶 속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 혜화는 흰 개와 새끼들을 거둔다. 자신과 같은, 그리고 자신의 아이와 같은 처지가 될 뻔한 흰개를 구함으로써 자신을 구하고, 자신의 아이를 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쓸쓸히 혼자 돌아가는 한수를 위해 차를 후진하는 장면에서는 한수도 끌어안음으로서 과거 상처에 대한 화해를 표현하고 있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혜화를 둘러싼 5개의 요소들이 서로 부딪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위치에서 혜화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이 영화가 뛰어난 점은 혜화가 화해하기까지 가는 과정이 그냥 "싸우지 말고 화해해"라고 가르치듯이 말하면서 상투적으로 하지 않고, 주변의 인물과 현재의 상황과 과거의 사건과 그 속에서의 심리들이 종합적으로 내밀하게 어울어진 결과, 필연적으로 도달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영화의 완성도가 나오는 것 같다. 이런 게 바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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