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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 누운 배: 문제를 보지 못하는 조직의 민낯행간의 접속/문학 2026. 1. 25. 00:27
책이름: 누운 배
지은이: 이혁진
펴낸곳: 한겨레출판
펴낸때: 2016.7.
21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작이다. 기업 소설이라는 장르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업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중국에 있는 한국 조선소가 배경이다. 물론 대형 조선소는 아니고 중소형 조선소라서 여러 가지 시스템이나 운영이 합리적으로 운영되지는 않는다. 거기다 인물들의 갈등관계까지 더 하면 현실의 중소기업의 모습을 갖다 놓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조선업에서만 쓰이는 전문적인 용어들이 나오는 것으로 봐서 지은이가 직접 경험한 것을 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소설 후반부에 회사를 퇴직하면서 무엇을 할거냐는 동료의 질문에 글을 쓰고 싶다는 얘기를 한 것도 있어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1부는 진수 직전의 배가 사고로 쓰러져 버리고, 이를 팀장과 내가 보험단과 협상하고 처리하는 과정이 나와 있다. 보험단은 한국 보험사와 중국 보험사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들 내부 의견 조율이 쉽지 않다는 것을 파고들어서 전손처리하여 보험금을 받아내는 전략을 쓰고 이를 관철한다. 2부는 회사의 혁신을 위해서 회장이 황사장을 영입해서 회사가 변화하는 과정이 나와 있다. 황사장은 회사의 문제를 빠르게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임원들을 압박하고, 때로는 팀장도 압박하여 성과를 올린다. 그의 합리적이고 패기있는 모습은 독자들에게 쾌감을 주지만 소설 속 임원들은 이를 불편해 하고, 때로는 맞받아치기도 한다. 결국 자기 세력을 구축하지 못한 황사장은 누운 배를 일으키는 일을 마무리하고 회사를 나간다. 그리고 나도 나간다.
읽으면서 인상적인 부분들을 발췌해 보았다.오 기사와 근속 기간은 비슷했지만 정 기사는 실속이 없었다. 말하자면 뺀질거렸다. 이것저것 많이 해서 가져오기는 했지만 건초 더미처럼 양만 많았고 팀장이 꼬치꼬치 캐물어가며 문제를 지적하면 열중 쉬어 자세로 서서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고 핑계만 댔다. 팀장이 상세한 방법을 가르치고 시켜도 마찬가지였다. 반성도, 개선도, 안간힘을 쓴 흔적도 없는 결과를 들고 와서 여전히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된다고. 그리고 그것들 때문에 안되는 것이지 자신 때문은 아니라는 듯 말했다.
뺀질이 정 기사에 대한 이야기인데, 정말 짜증나는 스타일이다. 밑에 이런 사람이 있으면 정말 답답할 것 같다. 가르쳐도 개선이 안 되고, 하려고 하지 않고 핑계 대고, 그러면서 자기 때문이 아니라고 하고.....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인간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회장은 경영계획 회의보다 배를 일으키자고 사람을 선동하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 관리 체계를 세우는 것보다 당장 돈이 굴러들어올 거리에 마음이 가 있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귀가 있고 생각이 있으면 임원들의 횡설수설을 모를 리 없지 않은가? 상관없었다. 회장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틀릴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회장의 힘이고 지위고 회장을 둘러싼 찬란한 광배였다. 회장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강력하게 군림했다. 임원들이 가짜를 말해도 회장이 진짜라면 진짜가 되고 진짜를 말해도 회장이 가짜라면 가짜였다. 사고 원인을 결정한 사람도 회장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그런 것이었다. 그렇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회사 안에서 회장의 힘을 느낀 '내'가 생각한 것이다. 결정하는 자의 힘을 얘기한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을 회사를 확대하여 사회 전체에 적용한다면 우리 사회가 굴러가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는 합리의 영역도 있지만 비합리적인 힘의 영역도 있다는 것.
황 사장은 쇳내 풍기는 목소리로 포화를 퍼부었다. 그 포화 속에서 무능한 임원들의 해명은 변명이 됐고 변명은 핑계가 됐으며 핑계는 무관심과 무책임으로, 무관심과 무책임은 이해력과 관찰력 부족, 관리 태만, 책임 회피, 분별력과 판단력 결여로 낱낱이 까발려 졌다. 황 사장은 거침없었다. 알아야 하지만 모르는 것, 잘못됐지만 바로잡지 않은 것, 간과하고 누락해온 것, 관습대로 해온 것들을 걸려드는 대로 일일이 끄집어내고 누더기가 될 때까지, 모든 것이 명확해질 때까지 질문과 문책으로 두들겼다.
관성 속에서, 자신의 안위 속에서, 주먹구구식 일처리 속에서 안주하고 문제를 방관했던 임원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이를 추궁하는 황사장의 모습이 묘사된다. 합리적이면서 추진력 있는 사람의 패기를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황 사장이 입을 열었다. "오늘 회의를 기준으로 삼기 바랍니다. 이전에도, 또 다른 회사에서도 똑같이 해왔다는 말 같잖은 소리는 집어치우십시오. 모른다, 확인하겠다., 말만 하지 말고 미리 준비해서 들어들 오세요. 이 회의는 주간 공정 회의입니다. 회의 이름에 걸맞게 지난주 생산 실적을 확인, 정리하고 다가올 한 주의 생산을 제고할 방안을 미리 세운다는 관점에서 준비들 해오세요. 이 회의에 합석한 여러분은 모두 관리자고 책임잡니다. 1분 1초가 귀한 사람들입니다. 설명 같은 변명, 변명 같은 핑계, 핑계 같은 거짓말, 불순하고 무책임한 잡설로 자신의 시간을 허비하고 남의 시간을 뺏는 일이 없도록 하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황 사장은 수첩을 덮었다.
첫번째 공정 회의에서 세 시간 동안 임원진들을 추궁하고나서 던진 황사장의 일갈이다. 그리고 책임에 대한 이야기도 한다.
책임을 진다고 하지만 사실 책임이라는 걸 누가 온전히 질 수 있습니까? 흘러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 책임은 지겠다고 하는 순간 이미 지나가 버립니다. 책임은 나중 일이고 실은 허울이나 다름없습니다. 감독이 그만둔다고 망해버린 시즌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실행과 역할을 찾고 그 역할에 걸맞은 사람을 뽑고 그 사람들 발목을 잡은 불필요한 사람을 솎아내는 게 감독. 즉 관리자와 책임자의 일이고 최선이라는 말입니다.
내 생각과 똑같다. 책임진다는 것은 잘못되기 이전으로 되돌린다는 것인데, 이게 가능한가? 책임을 진다는 말처럼 무책임한 말은 없다고 본다.
나는 사장님의 지시 사항 때문에 연락했다고 바로 묻지 않았다 바쁘실 테지만 조간 회의에서 나온 지시 사항을 사장님께 보고해아 하는데 실제 상황이 어떠한지 확인하려고 전화드렸습니다, 하고 물었다. 어떻게 할 건지 묻는 대신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하고 물었고 언제까지 할 건지 묻는 대신 예상 기한은 어느 정도 걸릴 거라고 보십니까, 하고 물었다. 또 황 사장이 지시한 내용만 묻지 않고 담당자, 실무자로서 생각하는 문제점과 어려움, 다른 부서의 협조는 필요 없는지, 그 사람이 회의 시간에 말하지 못한 것은 없는지도 물어 봤고 그것을 오해가 없게, 현장 사람들이 흔히 하는 거친 말을 다듬고 정리해 전체 맥락과 진의에 맞게 덧붙였다. 황사장의 지시를 이행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명종처럼 일깨워주고 그 이행을 확인하는 것이 내 일이라는 점을 대화 속에서 분명히 했다. 그것이 사실이기도 했다.
'나'는 조선소에 오기 전에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었고, 이를 계기로 조선소 경영기획팀에서 사장의 지시사항을 현장에 이행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특정 분야와 직접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도 언젠가는 쓸모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 사장이 물러나고 사장이 공석인 상태에서 권 부사장이 회의를 주관했다.권 부사장은 조간 회의를 비롯해 주요 회의를 주관했다. 각 부서에서 올라온 의제를 신중히 분석하고 적절하게 판단했지만 올바르게 결정할 수는 없었다. 권 부사장은 황 사장처럼 사람들을 몰아붙이지 않았고 궁지로 내몰리지 않은 사람들은 문제 속의 문제, 문제의 뿌리까지 꺼내 보이지 않았다. 문제의 뿌리를 캐내지 못했으므로 대안과 대책은 합의에 그쳤고 합의였기 때문에 책임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책임이 모든 사람에게 있었으므로 어느 한 사람도 책임질 필요가 없었고 책임질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것이 아니었다. 문제는 다른 문제로 모습을 바꾸며 다시 예전처럼 묻히고 덮였으며 그 위로 다른 문제들이 또 쌓였다.
문제를 뿌리뽑지 못하는 조직의 모습을 보여준다. 문제를 안고도 어떻게든 굴러가니까.... 굴러가다가 망할 것 같으면 나가면 되니까....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할 수는 없어도 인식하고 개선하려는 방향을 잡고 나아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모습의 전형을 보여준다.
정 이사도, 다른 임원들도, 또 회장조차도 퇴행을 퇴행이라고 여기지 않고 있는 듯했다. 누워서 썩어가던 배를 멀쩡한 배라고, 구조해서 재건조할 수 있는 배라고 여겼듯 그 사람들은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은 채 보이는 것만 보고 보고 싶은 대로만 봤다. 그럴 수 있는 힘이 아직도, 나중에도 자신들에게 있을 것 이라는 듯. 채권단도, 어쩌면 돈을 댄다는 그 홍콩계 투자회사도 다를것 없을 터였다
'누운 배'라는 제목이 상징하는 바가 나온다.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는, 그리고 책임지지 않는 조직과 자신들을 드러낸 것이다. 이런 조직에 '나'는 더이상 남아 있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퇴사를 결심한다.
다 그렇게 산다고들 말하지만 다 그렇게 죽는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죽기는 싫었다. 적어도 나는, 정말 그렇게 죽기 싫었다. 말도 안 되는 인간들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그런 것이 회사 생활이라고 스스로 강박하고 세뇌하면서 일생을 보내다 늙고 병든 닭이 돼 죽기는 싫었다. 그렇게 살기에 나는 아직 젊었고 내게 남은 인생은 너무 길었다.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젊음이라는 것을 회사 안에서만 놓고 보자면, 내다 팔 수밖에 없는 것으로만 보자면 결국 아무 답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허무했다. 하지만 젊음은 내 위에 앉아 있는 임원들의 것도, 회사의 것도, 월급이나 연금에 저당 잡힌 것도 아니었다. 내 젊음이었고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내게 있는, 또 모든 사람에게 있는 유일한 대지였다
결국 퇴사 결심의 중요한 근거는 젊음이었다. 내가 가진 유일한 것. 그것이 이대로 사라지는 것이 너무 안타깝고, 아깝고, 견딜 수 없기 때문에 퇴사하는 것이다.
중소 기업의 현실을 잘 드러냈고, 그 안에서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럼 대기업의 현실은 어떨까? 거기는 또 거기대로 나름의 문제가 있겠지....내가 몰랐던 분야, 추상적으로만 인식하던 분야의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잘 접근한 작품이다.'행간의 접속 >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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