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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41]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각자의 목적을 향해 가는 하나의 여정행간의 접속/문학 2024. 10. 4. 00:16
책이름: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
지은이: 정유정
펴낸곳: 비룡소
펴낸때: 2007.07.
우연히 만난 친구들이 각자의 목적을 향해 가는 하나의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모두가 생판 남은 아니고, 같은 반 친구들인데, 여정이 계획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각각의 인물들은 각기 비밀을 안고 같은 길을 나서게 되는데, 처음에는 삐걱거리던 관계가 어느새 하나가 되는 변화의 과정도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표면적으로는 학생 운동을 하는, 규환이의 형에게 서류와 돈을 전달해 주는 것이 이 여정의 목적이었다. 소설을 읽으면서 험난한 과정을 거치면서도 이 목적을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 뭐 이런 것들을 독자들이 강하게 느끼지만 소설의 후반부로 가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서로가 변화해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준호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 꿈을 꾸면서 아버지의 부재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승주는 유명한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과 억압 속에서 부끄러운 자식으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래서 반항적으로 집을 나오게 된 것이다. 정아는 아버지의 폭력의 문제를 안고 있다. 죽지 못해 살고 있는 극한의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집을 나오게 된 것이다. 할아버지는 하나 밖에 없는 딸의 죽음, 80년 광주, 그리고 삼청교육대의 고통 등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들은 고래를 보면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이윽고 열 마리 가량의 고래들이 한꺼번에 수면 위로 부상했다. 그들은 흰 물줄기를 내뿜으며 파도 위를 증기 기관차처럼 내달렸다. 꼬리지느러미만 해면 위로 내밀고 회전해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는 놈도 있었다. 뒤집어져 흰 배만 내놓고 떠다니기도 했다. 모로 누운 채 가슴지느러미로 물결을 두들기기도 했다. 물줄기를 스프링쿨러처럼 토해 내기도 했다.
어느 순간, 그들은 바다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하나, 둘, 셋...... 차례차례 내 심장으로 들어왔다. 모두 들어왔다. 그사이 세상은 멈춰 있었다. 바람과 파도, 대기의 움직임과 시간, 모든 것이 멈췄다. 나 자신의 존재감마저 잊었다. 절벽의 한 부분인 양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 약속한 듯이 그랬다. 이쩌면 말을 하거나 움직여서 우리 안으로 막 들어온 그들을 놀라게 할까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바위 틈으로 돌아왔다. 다들 이상한 활기에 휩싸여 있었다. 각성제를 들이부은 것처럼 몸놀림이 가벼웠고 표정이 밝았다. 나로 만하면 다리의 통증마저 잊었다. 정신은 이상하리만치 맑았다.이 장면이 약간 비현실적이면서도 환상적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인물들의 문제를 논리적으로 풀면 그것이 더 비현실적일 것이다. 우리의 삶의 문제는 그렇게 풀리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풀릴 수 있었으면 그것은 애초에 문제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정유정 소설들은 한꺼번에 몰아치는 느낌을 준다. 독자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잠깐 놓아도 다시 잡게 만든다. 이 책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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