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동안 스키 타다 넘어진 적은 있지만 의무실이나 병원에 가야 할 정도로 심하게 다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 드디어 병원에 갔다.
눈이 많이 와서 쌓인 눈이 모여서 불규칙한 모글이 좀 있었고, 그 모글을 타다가 리바운드를 잡으려고 몸을 너무 앞으로 숙이다가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왼쪽 스키날에 오른쪽 무릎이 찍혔다. 처음에는 몰랐다. 오른쪽 스키가 빠져서 약 6-7m를 올라가서 스키를 다시 신고 내려왔고, 리프트를 다시 탔다. 리프트를 타다 보니까 스키복 바지의 무릎 부분이 좀 찢어진 것을 보고 아까웠다. 비싼 스키복인데.... 그래도 무릎이 돌아가거나 크게 다치지 않았으니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위안으로 삼았다.
한 번 더 타려다 좀 쉬면서 바지가 얼마나 어떻게 되었나 보려고 시즌패스 라운지에 갔다. 거기서 바지 더 찢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테이프를 얻어서 바지에 땜빵하려고 무릎 부분을 보니 살짝 피가 묻어 있었다. 처음에는 날에 좀 베었나보다 생각해서, 바지를 열어보니 피가 철철 나서 타이즈를 꽤 많이 물들였고, 무릎은 6-7cm정도 찢어지고,깊이도 5cm정도로 깊게 패였다. 순간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일단 의무실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장비 챙기고 곤돌라를 타고 내려갔다.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더 빠르겠지만 그러면 무릎에 힘이 들어가니까 더 많이 찢어질테니까 그냥 곤돌라로 내려갔다. 그리고 간사하게도 그 다음부터 다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넘어지고 일어나서 리프트 타고 라운지에 올 때까지는 하나도 안 아프던 다리가 피를 보고 나서부터는 괜히 힘이 들어가고 웬지 절룩거려야 할 것 같고... 가만히 힘 빼고 있으면 아픈 곳은 없는데 말이다. 겨울이라서 통증에 둔감하기도 할텐데 말이다.
의무실에서는 꿰맬 수 없어서 거즈와 압박붕대로 지혈만 해주었다. 둔내로 나가면 의원이 있다는데, 내가 차가 없으니 갈 수는 없었고, 1시 버스로 올라가서 집 근처 병원에 가는 수밖에 없다. 집으로 가는 고속도로가 막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평소에는 1시간 40분 정도 걸리던 길이 눈이 많이 와서 오늘 스키장 들어올 때는 2시간 50분 정도 소요되었다. 오후에는 제설을 했을 테니까 그보다는 빨리 가겠지만 2시간은 잡아야 할 것 같다.
1시 버스를 기다리는 1시간 30분 동안 음악을 들으면서 있었는데, 음악이 들어오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무릎에 힘이 들어가고 무릎에 힘빼느라고 힘 다 뺐다. 그리고 1시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데, 1시간 정도 자고나서는잠도 잘 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무릎에 힘 들어가고 무릎이 척척히 젖는 느낌이 피가 멈추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면서 모든 신경이 무릎에 몰렸다. 생각해 보니 나도 참 엄살이 많은 것 같다. 나름대로 고통을 잘 참는다고 생각했는데, 무릎 조금 찢어진 것 같고 확대 상상해서 큰일 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상상이나 하고.... 영화에서 전쟁 나서 내장 다 튀어나오는 장면 보고 실제로 그런 상황이라면 저런 것을 어떻게 견딜까 생각도 났다.지금 무릎 조금 찢어진 것에도 이만큼 불안한데, 생사가 걸려 있다거나 사지가 걸린 문제에 맞닥뜨리면 인간이 얼마나 절망에 빠질까 아주 조금 실감했다. 아주 조금.... 절망이라기보다는그 불안감... 그렇게 본다면 그런 절망에서 일어나서 그것을 극복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사람들 같다. 무릎 조금 찢어진 것하나가 나에게 주는 가르침은 꽤 크게 다가왔다.
결국 2시간 정도 걸려서 서울에 도착했고, 집 앞의 병원에서 꿰맸다. 몇 바늘 꿰맸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의사 말로는 깊이 찢어져서 안쪽도 꿰매고, 바깥쪽도 꿰매야 할 정도라고 했다. 인대 손상 여부를 물었더니 인대는건드린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인대가 나갔으면 일이 정말 커질 뻔 했는데, 천만 다행이었다. 대략 10일 후면 실밥을 풀을 수 있다고 하면서. 운동은 그 후에 상황을 봐야 한다고 하고, 그동안은 운동은 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그럼 스키도 못 타고, 테니스 레슨도 못 받고, 내일 개학이라서 출근해야 하는데, 자전거 출퇴근도 못하고, 상처에 물들어가지 말라니까 수영도 못하고... 할 수 있는 운동이 없는 것 같다. 운동하지 않으면 우울해지는데, 2월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암담하다.
책 읽고, 대학원 입시 준비하거나, 수행평가 방안을 포함한 교재연구를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이런 방식으로 학구적인 국면에 맞닥뜨리게 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