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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15] 영화를 꿈꾸다: 나의 꿈, 오직 영화...
    행간의 접속/문화/예술/스포츠 2024. 3. 18. 21:16

    책이름: 영화를 꿈꾸다

    곁이름: 저예산으로 장편영화를 완성하다

    지은이: 한국영화아카데미

    펴낸곳: 씨네21북스

    펴낸때: 2014.11.

     

    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연구과정 7기 제작팀의 장편 영화 제작기이다. 3개 팀이 운영되었는데, 3팀의 감독과 촬영감독이 제작기를 썼다. 우리는 영화관에서 멀끔하게 만들어진 영화를 보지만, 그 영화를 만드는 과정은 그렇게 멀끔하지 않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단순히 힘들다라고 생각할 수 없고, 이건 정말 영화에 미치지 않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대로 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고, 마음대로 되는 것도 하나도 없고, 거기다 돈도 없고, 다 하고 나서도 돈이 되지도 않고, 모두가 한 마음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1. 선지자의 밤: 김성무 감독, 김재우 촬영감독

     

    김성무 감독은 장편연구과정 7기에 합격하고나서 뽑아준 교수의 이야기를 한다. 교수는 "앞으로 지옥이 펼쳐지겠지만 어쨋든 선발된 것을 축하한다."는 뉘앙스로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날부터 지옥이 펼쳐졌는데, 김감독이 '대체 왜 뽑으신 건가요?' 싶을 정도의 강도 높은 비판을 받았고, 선발된 것이 아니라 교수님에게 욕먹으러 불려온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비판을 받은 끝에 시나리오를 다시 쓰겠다고 해서 다시 썼는데 시간만 낭비하고 더 나아지지 않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시작부터 험난하다.

     

    감독과 촬영감독만 정해지고, 이제 스태프를 정해야 한다. 먼저 프로듀서를 구해야 하는데, 구하다 구하다 못구해서 필름메이커스라는 영화제작 커뮤니티에 공고도 올렸지만 얼토당토한 조건을 앞세운 사람들에 절망하다 교수의 추천으로 프로듀서를 만났다. 그리고 한 명의 유능한 프로듀서가 영화 전체의 프로덕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스태프 선정할 때의 유의점을 이야기한다.

    이 지면을 빌어 프리프로덕션 단계에서 스태프 구성을 시작한 이들이 있다면 한 가지 조언을 하고 싶다. 절대 마음을 급하게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 나는 사실 최종 연출부를 꾸리기 전에 전부 한 번씩 인원을 교체해야 했는데, 급한 마음에 성급하게 스태프를 결정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 번 하기로 한 스태프와 끝까지 가면 좋겠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함께 하기 힘들어서 교체되는 경우도 많았나 보다. 이런 일들이 있다는 것을 몰랐는데 새롭게 알았다.

     

    그리고 캐스팅과 연기 디렉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래서 맘에 안 든다, 저래서 안 된다. 거절하는 건 쉬운 일이다. 어려운 점은 정해진 예산과 기한으로 영화를 완성시키려면 절충과 조율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거기까지가 딱 내 능력이었다. 어디까지 절충했고 어떤 선택을 했느냐. 그 선택들의 곱이 곧 영화라는 결과물이다. 어떠한 난관과 사정이 있었는지는 영화를 보는 관객이 고려할 문제가 아니다. 아쉬움은 분명 있지만, 당시를 돌이켜 봐도 여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한계가 보이는 상황에서 기약 없이 배우들을 더 물색할 것인가, 아니면 확정을 짓고 함께 캐릭터를 만들어 갈 것인가. 양자택일의 문제에서 나는 후자를 택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처참한 실패라고 말한다. 배우와 감독이 함께 캐릭터를 어렵게 어렵게 잡고 연기를 하고 촬영을 하는데, 연기의 톤이 맞지 않아 영화 전체에서 발란스가 깨진다. 서로 말로는 이해하고, 합의했지만 실제 연기가 생각처럼 합의한 대로 나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그런데 촬영할 때에는 심각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편집 과정에서 붙여놓고 보니 의도한 대로 느낌이 살지 않는다.

    물론 그건 배우의 잘못이 아니다. 같이 캐릭터를 만들자고 해놓고, 그에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를 강요한 내 잘못이다. 결국 그 잘못을 최소화하기 위해, 편집 단계에서 이야기의 흐름에 방해되지 않는 한 그의 분량을 상당 부분 삭제하고 말았다. 그는 내 요구대로 충실히 연기했을 뿐인데 결과적으로 헛수고를 한 셈이 되어버렸다. 주연을 약속해 놓고 조연급으로 만들어 버렸으니 사기죄로 수갑을 차도 할 말이 없는 일이다. 내 죄가 너무 크다.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고 연기하고 영화 속에서 멀끔하게 나오는 것이 엄청 많은 고뇌와 선택과 노력의 결과라는 사실도 새삼 알았다. 단순히 힘들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반면에 캐스팅이 잘된 경우도 있었다. 주인공의 아역으로 캐스팅된 아역 배우는 상상으로 그렸던 그 이미지를 그대로 담아놓은 배우였다. 이를 통해서 좋은 캐스팅과 나쁜 캐스팅이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한다.

    나는 여태껏 내가 의도한 캐릭터와 좀 다른 느낌의 배우라 하더라도 함께 만들어 가면, 열심히 훈련하면 잘 표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 배우가 본래 가지고 있는 캐릭터보다 이미지나 연기력, 자질에 더 중점을 두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번 영화를 통해, 그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자만심이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우리가 대배우라고 하는 배우들은 자신의 캐릭터 이외 것들도 연출자의 디렉팅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끌어낼 수 있지만 모두가 그런 대배우가 될 수는 없다. 여기서 나쁜 캐스팅의 예도 나온다.

    한편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해 공감을 덜 하는 배우들이 있는데 이는 십중팔구 잘못된 캐스팅이다. 이를테면 분노를 억누르고 꾹 참아야하는 신이 있다고 치자. 그 역할을 맡은 배우가 자신 같으면 욕을 하거나 확 소리를 지르지 이렇게 하는 게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설명을 해도 이해를 못한다. 그러면 이 캐스팅은 잘못된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감독은 배우에게 어떠한 성격을 가진 사람의 예를 구구절절하게 들어야 하고, 레퍼런스로 삼을 만한 다른 배우의 연기를 보여주거나, 심지어 자기가 손짓발짓 다해가며 연기를 선보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고개를 끄덕거렸던 배우는 아마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댄서마냥 부자연스러운 연기를 하고 만다. 아침 여덟시반 드라마에서나 보던 클리셰 연기를 선보이던 배우는 어색함 때문에 급기야 경련을 일으키기 시작하고, 모니터 앞의 감독은 더 나아질 수 없다는 좌절감 속에 스물세 번째 테이크 즈음 힘없이 오케이를 외칠 것이다. 이 모든 상황들이 캐스팅 하나로 결정된다. 연기에 대한 디렉션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적역을 캐스팅하는 것'이다. 나는 영화에서 캐스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비씬 대가를 치르고서야 확실하게 체득한 셈이다.

     

    이런 오류를 하지 않기 위해서 캐스팅은 신중하게 시간을 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들인 시간은 결국 촬영 시간을 절약해주니까.....

     

    장소 헌팅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이 영화는 비닐하우스와 폐가가 필요한데,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폐가를 수리해서 귀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어 다음의 귀농 카페에 독립영화를 찍고 있는데, 이런 폐가가 얼마동안 필요하다고 구구절절하게 적어서 카페에 올렸더니 연락이 많이 왔고, 조건에 맞는 장소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도저히 그 이상의 장소를 찾을 수 없어서 결정했다고 한다. 700만원의 미술팀 예산으로 커버할 수 있는 기적같은 장소였다. 간절함이 길을 만든 케이스라고나 할까.

     

    촬영에 들어가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은 낮 12시에 모여서 다음날 8시까지 촬영했는데, 20명이 넘는 배우들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문제는 그날 밤부터 한파가 몰아쳐서 정말 지옥 같은 환경에서 아침을 맞이했고, 배우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지고 영화 속 장면처럼 인물들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고 한다. 마지막 컷은 분노한 인물들이 기도원을 부수는 장면이었는데, 이때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는 감독과 무식한 현장에 대한 감정으로 연기한 것이라고 감독은 추측한다고 한다.

     

    촬영 현장의 문제는 정말 다양하다. 날씨도 문제이지만, 장비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소품이 문제일 수 있고, 주변 민원이 문제일 수도 있다. 스태프들의 스트레스로 갈등은 당연한 것이고, 이 모든 문제를 조정하고 해결해야 하는 최종적인 책임자는 감독이다. 작은 문제들은 조감독과 프로듀서가 조용히 도와주기도 하지만, 감독의 무게가 가장 무겁다. 그래서 감독은 늘 죄를 짓는 기분이고 늘 미안하다.

     

    그러면서 박찬욱 감독의 말을 인용한다.

    '감독은 현장에서 무수한 좌절과 실망을 겪는다. 머릿속에 있던 이상적인 그림은 현장에서 무참히 파괴되고, 감독은 그 거대한 실망감과 소리 없이 홀로 싸워야만 한다.' 듣기만 해도 위안이 되는 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촬영을 이끌어나가서 결국 계획대로 18회차에 촬영을 마쳤고, 추가 찰영 1회분만 남겨놓았는데, 이렇게 계획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전에 모든 콘티를 짜고 현장에 들어갔기 때문이고, 크랭크인 전에 모든 촬영지를 확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콘티를 짰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다.

     

    촬영이 끝나면 편집을 해야 한다. 콘티대로 붙인 순서 편집본이 2시간 20분 분량으로 나왔고, 좀더 편집하려고 했지만 교수님들이 모든 소스를 붙여서 편집하라는 지시대로 했는데 좋은 선택이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편집심사에서 어떤 소스를 어디에 어떻게 쓰면 좋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셨기 때문이다. 결국은 수많은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중심 줄기를 지키는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이런 얘기는 상황 좋을 때의 몇 안 되는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편집 심사는 한숨과 탄식으로 가득 찼으며 편집의 과정을 지옥 속에서 발버둥치는 것 같다고 말한다. 어떤 날은 편집실로 출근하고 단 한 컷도 만지지 못하고 퇴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럴 때에는 좋은 영화는 둘째고, 영화를 완성할 수 있을까 싶는 마음도 들었다고 한다. 그만큼 힘든 작업인 것 같다.

     

    우리는 콘티 대로, 시나리오 대로 붙이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감독은 여러 촬영 본들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고, 그 선택을 위해서는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확신을 갖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편집할 때 더 좋은 선택을 위해서 더 좋은 장면을 더 많이 찍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감독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편집실에서 좌절한 순간은 많지만, 사실 현장에 대한 후회는 많지 않다. 만일 그 순간들로 돌아간다면 나는 그때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 최면을 걸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수십 번을 다시 가더라도 더 잘 나올 가능성은 별로 없다는 생각에 일정한 결과물이 나오면 오케이를 외치고 넘어간 적도 있었다. 예산과 현실의 압박 속에서 마냥 고집을 부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소스는 많을수록 좋다. 실제로 같은 컷을 다양하게 찍으면 편집의 여지가 많아진다. 그러나 우리는 계획된 컷들만 다 찍는 것으로도 충분히 벅찼다. 그만큼 여유가 없었다. 멈추면 절대 완주하지 못할 걸 알고 있는 마라톤 선수처럼 찍었다.

     

    다음은 사운드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음악이 중요하다. 문제는 제작비가 거의 바닥이 난 상태라서 음악감독에게 줄 수 있는 돈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성심성의껏 음악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곡들을 몇 번의 수정을 거쳐 믹싱을 했는데, 마지막 문제는 메인테마곡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의 곡이라고 하면서 가이드로 붙인 곡이 있는데 이 가이드곡이 영화와 너무 잘 어울려서 음악감독이 힘들었다고 한다. 이 곡과 느낌은 비슷하면서도 베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인데, 음악감독과 통화할 때마다 스트레스가 그대로 느껴졌다고 한다. 결국 외국 작곡가의 기존 곡을 돈을 주고 사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메인 테마곡을 음악감독이 양보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영화를 위해서 대승적으로 결정한 것 같다.

     

    그리고 색보정도 있다. 촬영감독이 이 부분을 맡았는데, 감독의 생각과 너무 다른 그림이 나와서 충돌했고 절충을 하기에는 간격이 너무 컸기 때문에 어설픈 양보는 의미 없었다. 결국 감독의 뜻대로 가기로 했다. 일은 일대로 시키고 생각이 다르다며 작업을 뒤엎은 꼴이 되어 마음이 불편했지만 영화를 위해서 감독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이런 문제는 색보정 뿐만 아니라 영화의 모든 과정에서 모든 스태프들과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촬영감독뿐 아니라 모든 스태프와 배우들은 각자의 목표를 가지고-그것이 감독의 최종 목표와 종종 다른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하나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작업을 진행한다. 만일 이견잉 발생하면 결국 최종결정권을 갖는 것은 감독이지만, 그 전에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를 유연하게 정리하고, 참조하고, 또 갈무리해야 한다. 그 조율을 잘 해내는 것이 감독의 덕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촬영감독의 글에서도 어려운 점을 이야기하는데 액션 장면을 언급한다.

    거의 대부분의 촬영감독이 액션을 많이 찍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도 이 영화 촬영 전에는 제대로 된 액션을 촬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액션 시퀀스를 보면서 어떤 식으로 연결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지금 편집본을 보면 리듬감이 좀 떨어지는 것들이 있는데 이런 컷들은 찍을 때와 달리 편집할 때의 리듬을 생각하지 못해서 그런 것 같다. 액션 시쿼스의 경우에는 컷도 중요하지만 리듬감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촬영감독은 다 액션도 다 잘 찍는 줄 알았는데, 촬영이 다 같은 촬영이 아닌 것 같다. 그리고 그 액션을 편집할 때, 그리고 편집 후의 리듬감까지 고려해서 찍어야 한다는 것도 새롭게 알았다. 그리고 장소에서의 고려사항도 이야기한다. 낮에는 자연광으로 촬영하면 되지만 밤에는 조명이 있어야 하고, 조명은 전기가 필요하다. 전기가 없으면 촛불로 가야 하는데 그럼 촬영이 힘들다. 결국 미술팀과 상의해서 2줄로 전구를 달았는데, 이 전구의 색과 밝기가 영화의 분위기에 어울려야 하는 것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그냥 있는 모습을 찍으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자연스러움과 균형잡힌 영화를 찍기 위해서 촬영감독이 구체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장편영화에 대한 총평을 한다.

    장편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시간 분배를 어떻게 하느냐의 싸움이 것 같다. 전체적인 스케줄 관리부터 신 관리, 컷 관리까지, 결국은 시간과의 싸움이 계속 됐다. 내가 갖고 있는 걸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쓸 것인가. 이것이 조금 더 영화를 효율적으로 찍을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2.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안국진 감독, 이석준 촬영감독

     

    안국진 감독의 이야기도 영화 준비, 촬영, 후반기 작업 등의 과정에서 힘들고 어려운 것은 기본적으로 김성무 감독의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중에서 다른 이야기, 새로운 이야기를 중심으로 모아봤다.

     

    캐스팅 심사에서 무명 배우에 밖에 없냐고 욕을 먹어서 돈도 없는데 어떻게 유명 배우를 캐스팅하느냐고 말할 수도 없고 해서 시나리오 쓸 때부터 생각했던 이정현 배우에게 섭외하려고 기획사에 연락해봤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 스케줄이 많아서 안 된다고 했단다. 그러다 우연히 박찬욱 감독에게 시나리오가 들어갔고 만나자는 연락을 받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캐스팅에 대해서도 얘기했는데, 박찬욱 감독이 이정현 배우를 언급한 것이다. 그래서 섭외하려고 했는데 거절당했다고 했더니 핸드폰 꺼내며 연락을 해줘서 다시 시나리오가 이정현에게 전해지고, 이틀 만에 출연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 때의 느낌을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말해서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무서웠다. 이정현의 연기를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연기력을 타고 난 사람이다. 이제부터 오롯이 내 책이라는 부담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무명 배우를 썼으면 핑계라도 될 수 있고, 작품의 결과물이 형편 없으면 아카데미에서 알아서 매장시켜준다는데 이제는 물러설 수도 없게 된 것이다. 뒤에 이정현 배우도 참여하게 된 과정을 글로 썼지만 출연하게 된 계기는 순전히 박찬욱 감독이 추천했기 때문이고, 순전히 박찬욱 감독만 믿고 간 것이라고 말했다.

     

    여배우에 대한 공포증이 있나보다. 특히나 유명 여배우들에 대해서는 더더군다나. 촬영 첫 날 이정현의 의상이 생각한 것과 다른 느낌으로 나와서 바꾸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말을 꺼내지를 못하고 전전긍긍하는데 이정현이 먼저 조용히 다가와서 의상 바꾸자고 한다. 감독과 같은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고마운 마음에 동의했고, 의상팀이 고생 좀 했지만 신속하게 준비해서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을 두고 스태프들은 여배우와의 기싸움에서 밀렸다고 걱정했다고 한다. 앞으로도 감독이 여배우한테 질질 끌려갈까봐. 그 후로도 여배우 공포증은 15회차까지 계속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의외인 것이 감독은 현장에서 행복했다고 말한다. 물론 기본적인 힘듦은 있었지만 그 힘듦은 견딜만 한 힘듦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저예산 영화이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했고, 선택할 것이 다양하지 못했으니 어쩔 수 없이 피동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것을 인정하고나니 그걸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치열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고 할 수 있는 선택 안에서 나름 치열한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이 영화에 대한 글은 감독과 촬영감독만 쓰지 않고 다른 스태프들도 썼다. 스크립터는 턱에 금이 가는 부상을 당하고 수술이 필요하다는 얘기도 무시한 채 하루만 쉬고 다시 현장에 나와 자신이 얼마나 영화를 사랑하는지, 영화에 미쳤는지를 실감했다고 한다. 라인프로듀서는 추가 촬영을 위한 장소를 찾던 중 올 때는 못 봤던 장면을 돌아갈 때 각도를 달리 하니 딱 맞는 장면을 찾을 수 있었다면서 이게 영화에 몸을 바치는 이유이고 매력이라고 말한다. 조감독은 이정현이 세탁기에 들어가는 장면을 위해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공업용 세탁기를 빌리러 돌아다녔고, 여기에 사람이 들어가서 돌려야 한다는 말을 들은 업체 사장이 안 된다고 하자 빌고 빌고 빌어서 다른 직원과 함께 아이디어를 짜서 결국 빌렸고, 촬영을 할 수 있었다고한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누가 들으면 미친 생각이라고 하는 일들을 아이디어로 해결하는 것이다. 녹음 담당자의 고민은 다른 사람들이 오케이라고 하는 컷에서 자신도 오케이를 외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썼다. 영화는 비주얼이 우선시하는 갈래이다 보니 사운드는 다른 파트보다 후순위인데 자신이 NG 를 외치는 것에 대한 것이다. 녹음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자신의 몫이므로 착하지 않은 녹음 기사가 되었다고 한다. 배우 이정현도 촬영 과정의 소회를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예술 한다고 자존심만 내세우며 겉멋만 부리면서 동화를 패러디한 영화라고 생각했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촬영 현장이 너무 열악해서 스태프들이 도망가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라고 생각하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간식도 실어나르고, 서로 다독이면서 웃는 얼굴로 촬영 했다고 한다. 유명 여배우가 이렇게 독립영화에 참여해서 애쓰는 모습이 스태프들에게도 조금이나마 힘이 되었을 것 같다.

     

    촬영감독이 옆에서 바라본 감독의 모습은 영화감독의 인간적인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국진은 시나리오를 완성하기까지 수많은 감정변화를 보이며 몇 년 동안 발전 과정을 거쳤는데 때로는 대단한 천재마냥 기고만장하다가 얼마 안가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고 냉정하게 자기 시나리오를 보고 분석하기도 했으며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서 모든 것을 멈추고 잠수를 타기도 하고 마음의 병이 몸으로 번졌는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몸과 마음이 번갈아가며 아프기도 하는 등 보통 우리가 시나리오를 쓰는 것을 상상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거의 모든 장면을 보여주고도 모자라 상상하지 못했던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촬영감독이 이렇게 묘사한 안국진 감독은 최근 '댓글부대'를 개봉하였다.

     

    3. 소셜 포비아: 홍석재 감독, 이성중 촬영감독

     

    홍석재 감독은 이 영화에 대한 자신의 사랑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 사랑의 관점에서 볼 때 <소셜포비아>에 대한 나의 사랑은 매순간 의심과 계산, 불안과 회의에 절어있었다. 아주 찰나의 순간 <소셜포비아>가 예뻐 보였고 우리는 불장난을 벌였다. 이를테면 난 덜컥 임신을 해버린 거다. 근데 이 아이가 정말 내 사랑의 결실인지 모르겠더라. 내내 불안에 절어 어찌할 줄 몰랐다. 농담이 아니라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심각하게 영화를 엎어야 하나 고민했다. 이대로 이 영화를 찍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보다 더 늦어지면 영화를 옆을 수도 없을 거란 공포에 사로잡혔다. 모르겠다. 어떻게 그 순간들을 넘기고 결국 영화를 완성했는지. 그냥 버텼던 것 같다. 의심과 불안을 여전히 껴안은 채.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자꾸 유예되었다. 내내 지옥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한정된 예산과 기타 저예산 독립영화가 가지는 여러 악조건들보다 나를 더 힘들게 했던 건 내가 내 영화를 의심 없이 사랑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감독이 자신의 영화를 의심없이 사랑할 수 있으면 그것이 힘들 때 버티는 동력이 될 수 있는데, 홍감독은 의심하면서 사랑했던 것 같다. 어쨌든 버텼으니까..... 

     

    홍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막히면 주변 사람들과 돌아가며 자신이 부족한 부분들을 조금씩 채웠다. 대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느라 가지가 많고 버전이 여러 가지다. 주인공이 여러 명인 경우도 있고, 주인공이 군인인 것도 있고, 하나의 소재를 갖고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나왔다. 감독은 이 중에서 고르든가 또 고치든가 해야 한다. 그리고 멘토인 교수가 인물을 피해가지 말고 결론을 위해 인물을 탐구하라는 얘기를 듣고 자신의 경험 속 인물을 투영해서 인물을 그렸고, 시나리오를 조금씩 완성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연기 디렉팅에 대해서도 단편과 비교해서 이야기한다.

    단편을 찍을 때는 배우들을 많이 통제했다. 마치 장기말처럼 다루는 면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장편을 찍을 대는 그럴 수 없었다. 도리어 내가 배우들에게 물어보는 상황이 잦아졌다. 지금 장면에서 이렇게 되면 이 대사를 칠 수 있게냐고. 감독인 나보다 그 인물로 한 달 가량 살고 있으니 몸으로 반응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런 부분들은 정말 처음 겪는 경험이었고 이후 촬영하면서 적극적으로 배우들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배우들에게 의존한 장면의 예시도 나오는데, 아파트 장면에서 조명을 써야 하는데, 민원이 들어와서 조명을 쓸 수 없었고, 결국 등장인물들이 아이패드로 찍는 것으로 시나리오를 수정했는데, 배우들이 바뀐 상황에 당황했지만 자기들끼리 작전을 짜고 대사와 동선, 촬영 등을 정해서 찍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두 테이크만에 나온 결과물은 애초 계획보다 더 좋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감독은 '진짜 이 새끼들은 뭐지?'하면서 감탄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가장 괴로웠던 순간을 이야기하면서 영화에 대한 확신을 이야기한다. 편집심사에서 많은 교수님들이 특정 장면을 보고 너무 우연적이라고 덜어내라고 조언했을 때, 그리고 함께 작업한 편집자도 덜어내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주었을 때 가장 괴로웠다고 말한다.

    이 장면들이 그대로 남아있으면 영화의 질을 심각하게 떨어뜨릴 거라고 했는데, 이때가 심사를 받으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이었다. 설혹 그 장면에서 연출에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구조적으로 필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대로 한 번 덜어낸 후 편집자랑 얘길 나눴는데 편집자도 덜어낸 쪽이 더 낫다고 이야기했다. 서로를 설득하기 위해 새벽까지 얘기를 나눠봤지만 결국 답이 나지 않았다. 결국 내 생각대로 했다. 나는 내가 맞다고 확신했다.
    내 확신과 별개로 이런 경우 주위를 어떻게 설득할지의 문제가 어려웠다. 설득이 되면 제일 좋고 만약 설득이 안 되면 내가 맞으니까 걱정 말고 나를 따르라고 말할 수 있는 호기가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고 내 뜻대로 하면서도 게속 괴로워했다. 확신에 찬 어조로 나를 따르라고 호기를 부리기엔 내 확신의 크기가 부족했던 탓이다.

     

    자신의 영화에 대한 확신, 그리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에 지치고, 회피하고 싶고, 포기하고 싶은 모습은 실패로 가는 모습인데도 홍감독은 버티고 버텨서 결국 끝까지 끌고 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또 무엇인가 궁금하다.

     

    홍감독은 촬영을 하면서도 시나리오를 계속 수정하면서 작업을 했다. 프로듀서와 촬영감독은 시나리오가 나오지 않아서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준비할 수 없었으니 힘들었을 것 같다. 감독도 이 점을 미안해했는데, 그 때의 괴로움과 생각들을 이렇게 말한다.

    촬영을 하던 무렵 매일 새벽마다 다음날 찍을 장면의 시나리오를 고치면서 나는  이 영화가 말할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결코 잘 나오지 않을 거란 생각으로 영화를 꾸역꾸역 찍고 있는 감독의 마음은 정말 지옥이었다. 영화를 찍는 내내 눈곱만큼이라도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시나리오 쓸 때나 촬영할 때나, 편집할 때 항상 이런 생각이었다. 그게 뭐든 간에 눈곱만큼이라도 영화가 더 좋아질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 서면 시도했다. 어찌됐건 그 눈곱들이 모여 지금의 결과물이 나왔다.

     

    하루종일 촬영하고 새벽에는 시나리오 수정하는 감독의 마음이 어찌 편할 수 있겠는가. 어찌 미안하지 않겠는가. 지옥이라고 얘기했지만 지옥도 이거보다는 편하지 않을까 싶다. 감독 힘들다. 

     

    이런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고 함께 한 촬영감독도 힘들었던 상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이야기한다.

    거듭된 시나리오 수정으로 프리프로덕션에 참여하는 스태프들이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사전에 준비해야 하는 일정이 예상과 다르게 돌아갔다. 배구 캐스팅, 장소 찾기, 회차 정리 등을 구체적으로 준비할 수 없었다. 프리프로덕션 초반에는 최종 시나리오를 만들기 위해 연출자와 많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소재와 사건의 틀만 정해졌을 뿐, 이야기의 가지는 여러 갈래로 나아가고, 다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 크랭크인이 다가오면서 진행 부분에 더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연출자는 아마 이때가 가장 두렵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나서 감독이 시나리오를 붙잡고 있는 동안 스태프들이 기다리고 희생하면서 묵묵히 본인들의 일을 담당했기 때문에 영화가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촬영감독으로서 해야 할 것들, 예를 들면 공간을 찾아다니거나 프로듀서, 미술감독, 조명감독과 소통하면서 할 수 있는 것들 했다. 

     

    디지털 시대의 촬영감독의 역할도 바뀐 것도 이야기한다. 필름 시대에는 필름의 특성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디지털 시대에는 디지털 카메라의 특성과 후반작업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원하는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만든느 일이 이렇게  힘든지 몰랐고, 이렇게 힘든 일들을 이들은 왜 이렇게 매달려서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 우리 주변에서 영화 감독이 되겠다고, 영화 만드는 스태프가 되겠다고 하면 현실을 알고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그리고 이 책을 이야기하면서 이렇게나 힘들다는 것을 알고, 각오하고 한다면 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넘어서서 안 하면 미치는 일이니까. 정말 성공이 보장되지도 않은 일에 오직 꿈 하나만을 좇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짝사랑 같은 것이 영화를 만드는 일인 것 같다. 영화는 그를 사랑하지도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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