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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40] 다섯 번째 감각: 근본적인 상상력
    행간의 접속/문학 2023. 9. 4. 14:07

    책이름: 다섯 번째 감각

    지은이: 김보영

    펴낸곳: 아작

    펴낸때: 2022.02.

     

    김보영의 소설집이다. 이전의 소설들을 수정을 거쳐 출간한 것이다. SF 소설이 구체적인 실제 현실을 담고 있지 않으니 2002년 작품이나 2022년 작품이나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땅 밑에」 의 뒷 부분에 땅 밑 세계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스페이스 콜로니'가 나오고 원기둥 모양이고, 하늘에는 반대편 사람들이 붙어 있는 등의 장면 묘사는 배명훈의 『우주섬 사비의 기묘한 탄도학』에 나오는 스페이스 콜로니인 사비와 동일하다. 이 작품이 2010년에 발표되었으니 영향 관계를 따지자면 이 작품의 영향으로 배명훈의 사비 섬이 나오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배명훈의 작품에서 이 작품의 영향을 받았다는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촉각의 경험」은 자신의 배아줄기세포로 만든 클론과 연결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제약회사 사장이 자기 회사 연구소에서 자신의 클론과 연결하여 클론의 꿈을 보고 싶다는 제안을 하는데 연결된 후에 처음에는 아무 꿈이 안 보이다가 클론이 서서히 사장의 기억과 꿈을 가져가서 꿈을 꾸고 느끼고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클론과 사장이 동기화된다. 연결이 끊어진 후에 클론은 서서히 쇠퇴하고, 자신의 클론이 약해지는 모습을 본 사장은 다시 연결하여 함께 꿈을 꾸고, 기억하는데 그 때만큼은 클론도 생기가 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사장은 클론이 느낀 감각과 감정, 그리고 마지막을 묘사한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뻐했어요. 생애에 이런 강렬한 감각을 접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격했어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해하며....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의식을 잃어갔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클론은 소모품으로, 대체품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아무것도 입력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주인과 이렇게 연결되어 정보와 감각을 입력함으로써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각을 느꼈을 때의 희열을 이야기한다. 인간도 처음에 느낀 느낌들에서 이런 것들을 느끼지 않았을까?

     

    감각에 대한 작품이 하나 더 있다. 표제작인  「다섯 번째 감각」이다. 이 작품은 미래의 어느 때에는 청각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수이고, 청각을 느끼는 사람이 소수인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청각을 느끼는 사람들은 정부 기관으로부터 탄압을 받고 쫓기면서 그들처럼 청각을 느끼는 사람들을 규합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자신의 언니의 죽음을 겪고서 언니의 죽음의 원인을 찾아가면서 언니가 청각을 느낄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자신도 서서히 청각을 느끼게 되어 새로운 감각에 눈뜨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사람들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회의 공포도 이야기한다.

     

    이 도시의 평화라는 것이 얼마나 거짓된 것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유도 없이 잡혀가고, 또 이유도 없이 사라지는지 알았을텐데요.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살려달라고 애원하며 문을 두드리는 소리, 군홧발 소리, 통금이 지난 밤, 어둠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럴 것이다.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탄압의 소리, 구원을 요청하는 소리들이 다 소용이 없다.  그리고 청각을 느끼는 사람들이 밴드를 조직해서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것을 주인공이 들었을 때의 느낌을 묘사한 장면이다.

     

    그 순간 심장이 뭔가에 얻어맞은 것처럼 펄쩍 뛰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지진이라도 난 듯 공기가 진동하고 방이 진동했다. 파도가 해일처럼 나를 뒤엎어 빠뜨려놓고 한 번 물러가더니 다시 폭풍처럼 몰아쳐대었다. 머릿속이 망치로 두들기듯이 진동했다. 내 귀로 뭔지 알 수 없는 것이 정신없이 몰아쳐 들어왔다. 나는 공포에 질려 귀를 막고 쓰러졌다.

     

    강력하게 몰아치는 느낌이었고, 공포까지도 느꼈다고 되어 있다. 처음 느낀 청각은 그만큼 스스로 무엇인가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위력으로 다가 온 것 같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함께 노래를 부른 장면에서는 서로 통하는 벅찬 느낌을 묘사한다.

     

    누군가 먼저 입을 움직였고 사람들이 따라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감고 있다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감정이 손에 잡힐 듯이 전해져 왔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데도 나는 그들과 공명하고 있었다. 내 심장이 그들의 심장 박동과 함께 뛰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노래했을 때 이런 감정을 느낀다. 그런데 이런 감정을 처음으로 느꼈을 때에는 그 감정, 감각이 얼마나 벅차게 느껴졌을까. 이 작품 속 인물들이 청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데도 감각하지 못해서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도 이런 감각이 있지 않을까? 육감, 직감, 촉.... 이런 것처럼.....

     

    「거울애」는 자신의 감정을 소거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그대로 흡수하여 그대로 행동하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감정을 흡수하면 열렬히 사랑하지만 분노의 감정을 흡수하면 사람을 죽이기까지 한다. 결국 그 소녀는 주변 사람들의 거울과 같은 존재이다. 자신의 마음을 비춰주는....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는 소녀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생생하게 확인하는 장면도 나온다. 결국 이 작품은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자는 작품과 같다. 

     

    「우수한 유전자」는 유전자 판별기의 도입으로 차별이 공고히 진행된 사회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고, 「마지막 늑대」는 인간이 용의 애완동물로 여겨지는 미래 사회에서 용과 맞서는 존재(늑대)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키우는 반려견들의 역할을 인간이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스크립터」는 게임 속 캐릭터들과 나누는 이야기이다. 게임을 하지 않아서 게임 속 인물들과 상황들이 무엇을 나타내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한테는 제법 흥미가 있을 것 같은 작품이다. 

     

    김보영의 작품은 명확하게 잡히지 않아서 쉽지 않다. 대충 무슨 얘기인지는 알겠는데 치밀하게 무엇인가를 맞추려고 하면 잘 쌓아지지 않는 느낌이다. 그래서 선뜻 손에 잡히지는 않는데, 그래도 매력적인 작품들이 있어서 보게 만든다. 특히 존재의 근본, 감각의 근본에 대한 생각들이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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