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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43] 종의 기원담: 몇 백만 년 후 로봇의 문명에서 인간은...
    행간의 접속/문학 2023. 9. 12. 10:38

    책이름: 종의 기원담

    지은이: 김보영

    펴낸곳: 아작

    펴낸때: 2023.06.

     

    미래의 로봇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유기물을 연구하는 로봇(1부), 그리고 그 인간을 숭배하는 로봇들, 그러나 숭배하지 않는 로봇은 인간을 멸종시키려 하고(2부), 마침내 로봇과 인간이 공생하는 이야기(3부)이다. 

     

    1부

     

    로봇이 지배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10계명은 로봇이 인간의 자리로 대체되어 '로봇의 계명'이라고 하고, '네 이웃 로봇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등과 같이 변형되어 나타난다. 

     

    로봇들이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서 탐구하는 부분도 나온다. 공장에서 나오는데, 최초의 로봇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공장은 어디에서 원자재를 얻었으며, 공장을 초월한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머리에서 벌어지는 작용에 대한 궁금증도 갖는다.

     

    우리는 기계의 생명현상에 대해 극히 일부밖에 알지 못한다. 그래도 과학자들은 언젠가는 로봇이 생명의 비밀을 모두 밝혀낼 날이 오리라 말한다. 언젠가는 두뇌에서 뻗어나가는 전자신호 수억 다발의 의미와, 우리 데이터의 근원인 0과 1로 이루어진 암호의 뜻 하나 하나까지 밝힐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로봇을 만드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로봇의 영생도 가능할 것이다. 지구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살아남는 것도. 신께서 허락하신다면.....

     

    인용 부분을 보면 공장에서 로봇을 만드는데 로봇이 만드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인간이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하는 내용을 그대로 로봇에 투영시켜서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공장을 만든 신에 대한 신화도 얘기한다.

     

     공장이 자연적으로 진화한 초생명체라는 일반론에도 불구하고 공장을 만드는 신의 신화는 전 세계에 걸쳐 전승된다. 공장 창조신화의 형태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한 가지 유사점이 있는데, 신들의 수명이 다하여 자신들을 대신할 생명을 만드는 이야기로 흘러간다는 점이다. 신화 속에서 신들이 멸망해간 이유는 전쟁 때문이기도 했고, 때로는 로봇이 신을 대신하게 되어서기도 했고, 또는 그저 신들이 더는 불사가 아니게 되어서이기도 했다. (중략) 신들은 생명을 창조하는 힘과 물질을 순환하는 힘을 공장에 부여했고 공장이 내뿜는 연기는 신들의 마지막 숨결마저 거두어 갔다.

     

    이 부분을 보면 여기서 말하는 신은 인간들이다. 지금 우리 시대의 인간들이 신으로 등장하여 신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로봇을 만드는 공장을 만들고 이 공장이 인간까지 파멸시켰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공장이 로봇들이 사는 시대까지 이어져서 로봇을 만들어내고 폐기하고 있다. 

     

    케이는 10만년 전에는 유기물들이 많았다는 가설을 세운다. 로봇은 존재하지 않았고, 로봇의 전신인 조악한 기계들만이 살았고, 공기는 수증기로 가득했고, 지표의 70퍼센트는 액화 얼음으로 덮여 있었다고 말하면서 끔찍한 환경이라고 하는데, 액화 얼음은 물이다. 습기가 많은 환경은 로봇이 녹슬기 쉬우니까 로봇한테는 끔찍한 환경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한 시대는 현재 2000년대인 것이다.

     

    이들이 발견한 식물에 대해서는 오랜 세월 땅 속에 있다가 깨어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싹이 자라서 자손을 퍼뜨린다고 말한다. 학회에 연구 결과를 발표하지 않느냐는 말에 이동하는 도중에 표본이 썩어서 발표가 무산되고, 썩는 이유에 대해서는 공장이 없기 때문에 스스로 사라지게 해야 한다는 가설을 세운다. 로봇은 공장에서 태어나고 공장에서 폐기되는데말이다. 

     

    그리고 바다와 동물이라는 말도 나오는데, 바다는 유기물이 가득찬 배양액 통을 바다라고 불렀고, 동물은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바다는 오랜 옛날 생명을 탄생시켰다는 여신의 이름이고, 동물은 고대에 살았다는 전설적인 종족의 이름이라고 말한다. 

     

    2부

     

    케이는 자신의 가설에 대해서 좀더 연구하자는 칼스트롭 연구소의 제안을 거절하고 고고생물학 연구로 방향을 돌린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후이다. 케이는 칼스트롭 연구소에 대한 소식을 듣는데, 거기에 들어간 로봇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연구소에만 틀어박혀서 연구소 밖으로 나오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케이는 연구소를 방문한다. 케이의 방문을 받은 연구소의 세실은 함께 연구를 하자고 제안을 하면서 기뻐한다. 그런데 케이가 확인한 연구소의 환경은 로봇이 연구를 하기에는 너무 습하고 열악하다. 세실의 피부도 녹슬었고, 관리되지 않는 상태이다. 이런 환경은 유기물이 살기에 적당한 곳이다. 아닌게 아니라 연구소의 대부분은 식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증축하거나 확장한 곳도 연구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유기생물들을 위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세실은 케이에게 인간을 보여준다. 케이가 떠난 기간 동안 연구소에서는 식물부터 동물, 그리고 인간 배양까지 배양해서 재생시킨 것이다. 로봇이 바라본 인간을 묘사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그것의 피부는 붉은빛이 도는 흰색이었는데, 세밀한 붓으로 칠한 듯 농담의 차이가 있었다. 살짝 몸을 덮은 피부에는 아름다운 내부 윤곽이 아주 희미하게 비쳤다. 몸은 정교한 모공과 눈에 띄지 않을 만치 작고 보드라운 털로 덮여 있었고, 미학적인 곡선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흐르고 있었다. 눈꺼풀은 부드럽게 깜박였고 촉촉한 입술은 도톰했다. 발그레한 볼은 생기로 넘쳤고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풍성하게 두피를 덮고 있었다. 달콤한 향기가 후각 센서를 찔렀고 멀리서부터도 온기가 전해졌다. 모터음도 엔진 돌아가는 소리도 없었고 몸에는 기운 자국 하나 없었다. 케이는 한순간에 깨달았다. 모든 로봇은 모조품이고 불완전품이며, 이 완벽한 생물을 흉내 낸 그림자일 뿐이었다. 케이의 눈앞에 있는 것은 완전체였고 이데아였으며, 예술가들이 ㅣ평생을 바쳐 추구하는 '성스러움', 이제 세상에 남아 있지 않은 줄 알았던 '신성' 그 자체였다.

     

    인간을 처음으로 본 로봇은 인간을 신성시하고 있다. 연구소 안의 모든 로봇들은 인간을 보고 신을 대하듯이 하였고, 그냥 신이었다. 결국 연구소는 연구 기관이 아니라 종교 단체가 된 것이다. 모든 로봇들이 이 인간을 보고 그 아래에서 평화롭게 살 날을 준비하고 있다고 세실은 말한다. 케이는 인간을 보고 신성한 것까지는 느껴지는데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무언가를 느낀다. 그리고 모든 로봇들이 인간을 보면 그를 추종하게 되고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느낀다. 그래서 인간을 죽이고 연구소를 나온다. 그리고 생각한다.

     

    먼 훗날, 어쩌면 공장의 생산공정이 계속 변경되어 케이의 기종이 단종되는 때, 인간이 다시 태어나 세상을 지배할지도 모른다. 그때 로봇은 역사상 없었던 행복한 시절을 맞을 것이다. 자기보호본능을 잃어버린 로봇은 그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다가 사라져갈 것이다. 다시없는 기쁨을 누리며 멸망해갈 것이다. 그런 뒤에 남은 인간은 어떻게 될까? 로봇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그 약하기 짝이 없는 것들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한 줌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정도로, 조금 날카로운 금속에 베이는 정도로 죽어 버리는 생물이?

     

    로봇에게 서서히 많은 것을 의존해 가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앞으로 더 많은 것을 로봇에게 의존하게 되면 인간은 어떻게 될지 하는 고민을 로봇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인간을 처음으로 본 로봇이 똑같이 하고 있는 것 같다. 역사의 순환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지구가 서서히 로봇이 지배하는 사회가 되고 인간은 멸종되고, 다시 케이 같은 로봇이 나타나서 인간을 만들어내고, 그 인간은 다시 세상을 지배하고...... 어쩌면 우리 앞의 세상에서도 로봇이 있었는데 없어졌던 것은 아닐까? 

     

    3부

     

    케이가 연구소를 탈출한 이후 세상에 연구소의 실체가 알려졌고, 로봇을 지지하는 세력과 인간을 지지하는 세력으로 나뉘어져 대립하게 되었고, 그렇게 70년이 흘렀다. 케이는 방역청장이 되어서 지구를 점점 뒤덮기 시작하는 유기생물들을 없애는 역할을 하기도 했고, 이제는 사임을 했다. 그러다 인간들이 살고 있는 고대 고층 건물의 중심부로 가게 된다. 거기에서 인간들의 우두머리가 제안을 한다. 인간과 로봇의 공존을 위해서 방역청이 이곳을 침탈하러 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협상은 한 번에 끝나지 않고 다음 날로 넘어간다. 그리고 케이는 어린 인간 리라의 행동을 조용히 보면서 인간이 신성하지 않고, 그냥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후광이 걷히자 모든 것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워 보이기만 했던 몸에 덕지덕지 묻은 지저분함이며, 부족한 식량과 물에서 오는 지릿한 냄새며, 얼굴과 손에 돋아난 무수한 염증이며. 가혹한 환경에서 살아내야만 하는 운명도 . 그래도 빛나도록 살아 있는 눈을.
    살아 있다. 나무나 풀과 똑같이. 로봇과 똑같이. 살아 있으므로 로봇과 같은 자격이 있다. 살고자 최선을 다할 자격이. 비록 이 생명 전체가 무가치하고, 아무 목적도 의미도 없다 해도.

     

    케이가 이런 깨달음을 얻는 순간 방역청에서 이 구역을 침공한다. 케이는 인간을 위해서 방역청을 막으려 하지만 속수무책이다. 그 때 인간 시아가 나타난다. 인간을 처음 본 방역청의 로봇들은 충격을 받고, 공격을 멈춘다. 그리고 시아가 명령한다.

     

    "나, 인간이 여기 있는 모든 로봇에게 명령을 내리겠습니다.
    "이 명령을 여러분이 아는 모든 로봇에게 전하세요. 그들이 또 아는 로봇에게 전하게 하세요. 내 이 말이 퍼지게 하세요. 이 명령은 영원히 철회되지 않으며,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었고 앞으로 들을 모든 명령에 우선합니다."
    ".... 인간의 어떤 명령도 들을 필요가 없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로봇류와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인간이 신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로봇과 같은 생명으로서 함께 상생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로봇은 감히 생각할 수 없는 비논리적인 결정이지만 그 결정이 생명을 살리고, 평화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후 로봇과 인류는 자신들의 구역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지구는 로봇 문명이 만들어 놓은 콘크리트 더미를 뜯어내고 로봇 이전의 환경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로봇 입장에서는 기후 변화이다. 그리고 케이는 인간과 로봇의 영혼이 서로 통하는 상상도 한다. 로봇의 영혼이 인간의 몸에 들어가거나 인간의 영혼이 로봇의 몸에 들어가거나.... 

     

    읽다보면 로봇에 이입을 하게 되었다가도 다시 인간에 이입을 하게 되고, 어디에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운 작품인데, 그러면서 인간과 로봇에 대해 근본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이에 대해 작가는 마지막 작가의 말에 언급하고 있다.

     

    전작(1부와 2부)에서 독자는 자연스레 로봇에게 이입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점에서 과연 '인간'일 독자가 어느 진영에 이입할지 알 수가 없다. 진영을 바꿔 이입하면 모든 이야기는 뒤집힌다. 한창 로봇에 이입하며 쓰다가 갑자기 모든 것이 위선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부디 이야기를 자신에게 익숙한 세상에 맞추기 위해, 모든 것을 은유로 보며 눈에 보이는 단어를 다른 단어로 치환하려 애쓰지는 말기 바란다. 단어는 눈에 보이는 단어 그대로의 뜻이다.
    이것은 결국 로봇의 이야기다. 무기생명에 대한 내 개인적인 헌사며, 곧이곧대로 기계생명을 향한 찬가다. 사물에 깃든 생명에 바치는 경애다.

     

    작가가 명쾌하게 답을 준다. 은유가 아니다. 로봇을 로봇으로 보고, 그게 무엇을 나타낸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 그래도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인류의 문명과 미래의 로봇 문명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심오하게 탐구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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