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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39] 산 자들: 디테일이 살아있다
    행간의 접속/문학 2023. 8. 20. 01:11

    책이름:  산 자들

    지은이: 장강명

    펴낸곳: 민음사

    펴낸때: 2019.06.

     

    장강명의 연작소설이다. 내용들이 생업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아주 구체적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어느 누구도 악의를 갖고 있거나 나쁜 사람은 아니지만 서로가 서 있는 위치가 다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적대하고, 갈등하는 모습이 우리 사회의 모순을 잘 보여주고 있다.

     

    1부 자르기

     

    「알바생 자르기」는 이전에 읽은 땀흘리는 소설』에도 수록되었던 작품이다. 회사의 알바생이 근태도 좋지 않고, 업무를 능숙하게 하지도 못하고, 비용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서 사장의 명령으로 과장이 알바생을 자르는데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해고를 하려면 서면으로 일정 시간을 두고 통보를 해야 하고, 일정 기간 이상을 일한 경우에는 퇴직금도 주어야 한다. 이런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해고를 하려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금전적, 상황적 곤란을 겪기도 한다. 이 소설에서 마음에 드는 점은 과장과 알바생의 입장을 충분히 독자들이 납득하게 만들어서 둘 중 하나를 일방적으로 편들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과장의 입장에서는 비효율성과 근태의 이유를 들 수 있고, 알바생의 입장은 학자금을 갚아야 하고, 생계를 유지하고, 병원 치료비를 대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버티려고 하는 생존 본능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누구도 인간적으로 부족한 점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악의적인 아니고, 이 사회의 그런 상황에 놓여 있으면 모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대기발령」은 구조조정으로 팀이 해체되어 업무를 박탈당한 사보 편집팀원들의 얘기를 한다. 팀원들은 복도 한쪽에 책상만 있는 곳에서 아무 일도 받지 않은 상태로 근무를 한다. 물론 그전에 관련 업무를 하는 자회사에 지원할 경우 받아줄 수 있지만 모두 지원하지 않았고, 사직을 하면 퇴직금을을 받을 수 있지만 이 역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설은 팀원들이 처음에는 의리로 버티고 있지만 각자의 입장들이 다르다보니 그들의 결의 아닌 결의는 오래 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윤수는 대기발령 일주일 뒤 스트레스로 공황장애로 건강이 아나 좋아져서 사직을 했고, 지연도 자신이 더 초라해지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사직을 했다. 연아는 어떻게든 일을 해야 했기에 자회사로 갔다. 그런데 조건은 달라졌다. 받아준다고 했을 때 온 것이 아니라 나중에 왔기 때문에 계약도 다시 해야 하고, 조건도 다시 얘기해야 하고..... 희정도 연아가 나온 후에 사직했고, 중훈은 석달을 더 버티다 친구 출판사에 들어갔고..... 사실 희정은 네 사람이 자회사로 가면 홍보팀으로 갈 수 있었지만 자회사로 가지 않은 바람에 홍보팀에 가지도 못한 상황도 있었다. 결국 같은 처분을 받았지만 세부적인 입장은 다른 사람들이 겪는 아주 현실적인 고민들과 상황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도 선과 악, 그런 것은 없다.

     

    「공장 밖에서」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를 다루고 있다. 중국 상하이 자동차에 넘어간 이후 해고가 이루어졌고, 노조는 파업을 하고 공장을 점거했다. 노사의 대립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면서 노동자들의 가족들, 하청업체 사장들, 판매대리점 사람들의 목소리도 담고 있다. 이 싸움이 노사만의 싸움이 아니라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후의 담판이 결렬되고, 노사는 계획되지 않은 우연적인 사건으로 물리적인 충돌을 하게 되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나는데, 이들의 싸움이 쉽게 끝나지 않으면서 골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주고 있다.

     

    2부 싸우기

     

    「현수동 빵집 삼국지」는 현수동이라는 가상의 동네에 프랜차이즈 빵집 2개, 개인 빵집 1개가 생기면서 서로 경쟁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P 프랜차이즈 빵집은 아버지 없이 지낸 하은과 어머니가 전부터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고 있었고, 좀 지나서 있는 B 프랜차이즈 빵집은 대기업 임원 출신의 퇴직자 부부가 새로 창업을 했고, 그 딸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주영이 수시로 도와주고 있다. 그리고 건너편에 개인 빵집은 제빵 경력 50년의 제빵사인 남편과 순임이 새로 개업을 했다. 각각의 빵집을 운영하는 인물들의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이들의 삶과 고뇌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세 빵집이 경쟁하면서 모두 힘들어지고, 프랜차이즈 빵집은 본사의 지원을 받아 이벤트와 할인으로 무장하고, 결국 개인 빵집의 노부부는 체력적으로 기술적으로 맞서지 못하고, 부부 간의 정까지 금이 가는 위기를 맞으면서 가장 먼저 그만 둔다. 그리고 B 빵집의 주영은 P 빵집의 하은을 찾아가 마감 시간이라도 맞추자고 하면서 협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둘의 경쟁은 그치지 않는다. 소설의 마지막은 개인 빵집의 남편이 P 빵집에 찾아와 빵굽는 기사로 써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하고 나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들의 모습을 보는 하은은 불편함을 느끼는데, 그 불편함은 독자들의 불편함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B 빵집에서 주영이 경험한 프랜차이즈의 사업 운영에 대한 부분이다. 먼저 할인이 너무 많다. 손님 절반 이상이 할인을 받는다. 할인을 받지 않으면 손해보는 느낌... 자체 멤버십과 마일리지, 카드 할인, 이통사 할인, 스탬프 쿠폰, 모바일 쿠폰, 모바일 쿠폰도 소셜 커머스 쿠폰, 선물 쿠폰, 그리고 쿠폰도 특정 상품만 가능하거나 특정 시간만 가능하거나 특정 지역만 가능하거나, 이런 쿠폰이나 할인을 중복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중복할 수 없는 것이 있다. 거기다 할인 쿠폰의 대상이 되는 상품이 없는 경우에는 왜 사기를 치느냐는 욕까지 얻어먹는다. 이런 모든 경우들이 계산대 앞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하게 들어올 때 이제 갓 퇴직한 주영의 부모는 감당할 수 없다. 이 부분 읽으면서 정말 장사하기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 사는 집」은 철거민들의 이야기이다. 재개발로 철거를 앞두고 있지만 이주 보상금은 집 주인에게만 나오고, 세입자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 마음 좋은 집주인은 보상금의 일부를 주기도 하지만 그것 같고 같은 조건의 집을 구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철거민들은 자신의 권익을 위해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게 하나가 아니다. 철거민권익연대 소속 가옥주 철대위, 철거민권익연대 소속 세입자 철대위, 도시철거민연합 소속 가옥자 철대위, 도시철거민연합 소속 세입자 철대위다. 주인공 선녀는 도시철거민연합 소속 세입자 철대위에 가입했다. 철거를 막기 위해 규찰을 돌고, 다른 철거지에 연대 투쟁도 하고,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사람들은 지쳐가고 용역과의 싸움에서 버티지 못하고, 결국 그들은 빌라에 올라가 목을 맨다.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는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카메라 테스트」는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를 준비하는 지망생의 이야기이다. 아나운서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처음으로 아나운서 시험에 지원을 하여, 카메라테스트와 면접을 위해 새벽 같이 압구정동의 뷰티숍에서 머리와 화장을 하고, KTX로 창원까지 가면서 비슷한 지망생을 만나 공개할 수 있는 정보만 적당히 공유하고, 역에서 의상을 가라입고, 다른 지망생과 함께 택시를 타고, 방송국에서 대기하고, 시험 보는 과정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정말 방송국 아나운서 시험을 치기 위해서 해야 할 것들이, 신경써야 할 것들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그 가운데에서 지망생들끼리 서로를 관찰하면서 경쟁심을 느끼고, 때로는 경계하고, 때로는 위안을 삼는 심리도 잘 드러나있다. 결말은 카메라 테스트에서 대본을 떨어뜨려 허둥지둥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이 뼈아프다. 면접관은 괜찮다고 하지만, 주인공의 마음에서는 그것을 거짓말로 듣고, 실제로는 하나도 괜찮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만큼 이 시험이, 이 고비가 취준생에게는 절박하고, 모든 것을 다 걸었고, 그만큼 간절하다는 얘기인데, 취준생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느낀다는 것은 이 사회가 기회가 없고, 공정하지도 않고, 실패에 대한 안정망도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대외 활동의 신」은 지방대 출신이지만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자 학과 공부보다는 각종 공모전이나 대학생 프로그램에 더 적극성을 보여 나름의 성취를 보인 학생을 인터뷰하는 내용이다. 지방대생이 학과보다 이런 대외 활동에 전력투구를 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고, 처음 아무것도 모르고 참가했다가 다음에는 이를 갈고 준비해서 성취를 이루고, 나름의 요령을 터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게 대외활동을 했지만 졸업하던 해에 100군데 넘게 입사지원서를 보냈고, 7곳에서 서류 전형 통과, 4곳에서 임원 면접까지 보았지만 모두 떨어졌다. 그래서 다시 대외활동을 했고, 제약회사 국토대장정에 스태프로 참여했고, 그 후에 그 회사에 최종합격했다. 지방대 출신이 그 회사에 합격하자 대학에서는 후배들을 위한 특강을 해달라고 하기도 했고, 마지막에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기회 자체가 없는데 후회고 자시고 할 게 무엇이 있느냐면서 얘기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니고, 그거라도 할 수밖에 없어서 한 것이다. 후회는 사치다. 지방대 출신들이 느끼는 삶에 대한 비애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제3부 버티기

     

    「모두, 친절하다」는 회사원이 겪은 아주 안 풀리는 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회사에 출근했는데 사무실은 층별 재배치를 하는 이사를 하는 와중에 이사업체 직원들에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아서 일을 반복하게 하고, 형이 보내준다는 책을 배송하는 택배기사는 비슷한 이름의 다른 건물에 가서 혼란스러워 하고, 회사 엘리베이터는 만원이라서 늘 탈 수가 없고, 아내의 컨버터블PC AS는 판매점에서는 못하고 AS 센터에 가야 하는데, 센터에서는 고장이 아니라 펌웨어업그레이드를 해야 하는 것이라 하고, 힘들게 지쳐서 피자를 시켰는데 배달 소년은 할인이 현장 할인인지, 청구 할인인지 몰라서 헤매고... 그렇게 어이없어 하는데, 배달된 책의 제목이 "화내지 않는 연습"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그 반대편에 있는 짜증을 받는 사람들은 제목처럼 모두 친절하다. 이사업체 직원들에게 이랬다 저랬다 가구를 몇 번씩 옮기게 해도 화내지 않고, 전화 연결 안 했다고 불만을 얘기해도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친절히 응대하고, AS 센터에서도 몇 번이나 죄송하다고 하면서 같은 얘기를 들어주며 응대하고, 택배기사는 당일 도착 상품이라며 밤이 늦어도 꼭 오늘 배송해드리겠다고 하고, 배달 소년도 죄송하다고 하고..... 왜 이렇게 친절할까? 이들은 모두 을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 그 일을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친절을 강요하는 구조를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악인인가? 그는 평범한 회사원이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다. 이런 일들은 우리 주위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우리의 일상이 사실은 짜증을 어느 정도는 기본적으로 쌓아두고 있다. 즉, 우리는 언제나 짜증과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에 놓여 있고, 그것이 어느 정도 쌓이면 폭발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진상을 위한 변명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진상도 사실은 따져 보면 합리적이지 않을지라도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 같다.

     

    「음악의 가격」은 인디밴드의 기타리스트와 나눈 이야기이다. 음악 산업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즉, 음악가에게 필요한 것은 작사, 작곡, 연주, 노래 실력이 아니라 기획력이라고 말한다.

     

    수없이 쏟아지는 밴드들 사이에서 시장의 눈길을 끄는 능력. 우리는 어떤 놈들이라고 한 줄로 설명하고 개성을 대중에 각인시키는 능력. 그게 자신들이 갖지 못한 유능한 프로듀서들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푸라기 개는 음악 시장이라는 것 자체가 사라지고 있음을, 유능한 프로듀서는 음악이 아닌 다른 것을 프로듀싱하고 있음을 몰랐다. 이제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은 이미지, 캐릭터, 스토리였다. 지푸라기 개가 포장지라고 여겼던 것이 진짜 상품이었고 음악이 포장지였다. 왜냐하면 음악은 너무 쌌기 때문이다. 상품 가치는 희소성에서 나온다. 

     

    이후 기타리스트는 방과후 학교에 기타 강사로 나가고, 레슨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그러면서 음악의 가치를, 상품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이 작품은 소설가가 등장해서 기타리스트를 만나고 나눈 이야기를 소설로 구성했는데 설명식이라서 소설다움은 많이 떨어진다.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는 사립학교의 급식비리를 폭로한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급식 비리를 적발했다는 교육청 보도자료를 출력해서 교문에서 배포하였고, 학교는 고3인 이들에게 추천서 안 써준다면서 경고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세 학생들도 각자의 처지가 달라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한다. 기준은 시민단체 사회운동가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소신을 갖고 행동하고, 제문이는 싱글맘이자 워킹맘인 어머니의 만류로 지속하기 힘들어 하고, 다른 학생들도 명분과 실리에서 의견이 갈리는 모습이다. 특히 호웅이는 학교 수학 선생님인 아버지가 있기 때문에 이 일에서 자신을 제외했다는 것에 마음 상해하고 있다. 이 작품도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들 안에서의 다른 생각이 잘 드러나 있고, 그게 현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말 취재 많이 했다. 디테일이 살아있다. 등장인물들 한 명, 한 명이 실제로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고, 그들이 실제로 겪었을 것 같고, 이렇게 세부적인 내용까지 어떻게 다 캐치해서 작품 속에 녹여냈을까 싶은 부분들이 너무 많다. 거기다가 사람들 사이에서 같은 처지이지만 약간씩 미묘하게 다른 생각과 입장으로 서로 불편하고, 변해가는 모습이 너무 현실적이다. 그러면서 어느 누구도 악인으로 몰아가지 않고, 모두가 그럴 만한 이유들을, 상황들을 이야기하면서 결국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임을 드러내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연작소설은 인물들이 겹치면서 다양한 시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그런 것인데, 이 소설집의 작품들은 인물들이 겹치지는 않고, 생업 현장을 다루고 있다는 공통점으로 아주 아주 아주 아주 느슨하게 연결인 듯, 아닌 듯 짜여져 있어서 내 기준으로는 연작소설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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