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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42] 순례 주택: 삶의 문제는 디테일하게 다가온다
    행간의 접속/문학 2023. 9. 8. 16:43

    책이름: 순례 주택

    지은이: 유은실

    펴낸곳: 비룡소

    펴낸때: 2021.03.

     

    철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모르는 사람이라면 별 신경 쓰지 않으면 되겠지만, 그 철없는 사람들이 가족이라면? 그것도 자식이 아니라 부모와 언니라면?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상황에 있는 생활지능 갑인 오수림의 이야기이다.

     

    수림은 공부는 보통이지만 생활능력이 있어서 삶의 어려움이나 부족함을 자신의 힘으로 버티고 이겨낸다. 반면에 아버지는 전임교수를 꿈꾸는 대학 강사이지만 누나들한테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왔고, 어머니는 전업주부이지만 친정아버지에게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왔다. 자신의 힘으로 생계를 꾸리고 독립적으로 일어서는 사람들이 아니다. 거기다 언니인 오미림은 엄마와 아빠를 하인 취급하면서 자신만을 생각하면서 허영심만 가득찬 전교 1등이다. 이런 집안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지원이 끊기고 할아버지의 재산인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면서 이들은 순례주택으로 들어오게 된다.

     

    순례 주택은 건물주인 김순례의 운영 방침에 따라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고, 수림도 어린 시절을 할아버지와 함께 여기서 보냈다. 순례주택에 들어온 이들 가족은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지 못하다가 순례 주택 사람들의 전략으로 서서히 바뀐다는 이야기이다.

     

    소설 마지막에는 엄마가 바뀌는 장면만 나왔고, 아빠와 언니는 여전하다. 아빠와 언니까지 모두 바뀌면 현실성도 없고, 너무 억지로, 인위적으로 인물을 변화시키면 더 거부감이 들었을텐데, 엄마만 바뀌게 하고 끝낸 것은 탁월한 선택인 것 같다.

     

    읽으면서 이 허영심 많고 이기적이면서 빌라촌 사람들을 깔보던 인물들이 순례 주택 사람들에게 복수를 당하는 장면이 요새 말로 '참교육 당하는 빌런'들 같아서 일면 통쾌하기도 하면서 재미있었다. 이런 사람들은 가만 두면 안 되고 정신 차릴 수 있게 혼을 내주면 시원하겠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들도 많았다.

     

    이 작품은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몇 가지 가치들을 담고 있다. 순례 주택의 사람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자신의 일을 창피해 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서 노동의 가치를 알려주고 있고, 건물주인 순례씨가 일회용품 안 쓰고, 비닐 안 쓰고, 적게 쓰고, 낭비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환경에 대한 가치도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옥상에 공용 공간인 옥상 정원을 조성해서 누군가의 소유라고 선을 긋지 지 않고 모두 함께 이용하면서 어울리는 공동체의 가치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가치들을 거창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인물들의 일상적인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보여주어서 거부감이 없다.

     

    청소년들이 읽으면서 이사를 할 때의 여러 준비들, 집을 구할 때의 여러 조건들, 대출이나 마이너스 통장 등 가정 경제를 운영하는 여러 방법 등 어른이 되어서야 겪게 되는 여러 상황들을 수림의 처지에서 간접적으로 겪으면 삶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좀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삶의 문제들은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니까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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