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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35] 안녕, 인공존재!: 짜임새가 조금 더 촘촘했으면.....행간의 접속/문학 2023. 7. 29. 21:42
책이름: 안녕, 인공존재!
지은이: 배명훈
펴낸곳: 북하우스
펴낸때: 2020.07.
배명훈의 단편소설집이다.
표제작인 「안녕, 인공존재!」는 동료 연구원이 마지막으로 남긴 생산품의 사용 방법을 찾는 이야기인데, 그냥 돌멩이 같이 생긴 것인데, 메모에는 '존재를 추출하는 기계'라고 되어 있다. 결국 구체적인 사용방법은 찾지 못한 채 우주에 날려 보내면서 그 의미를 찾는 것 같다.
존재는 빠른 속도로 지구 반대편, 우주를 향해 날아갔다.
"그 돌이 우주로 날아가서 조그만 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장이 말했다. 멍한 얼굴로 우주를 바라보았다. 존재를 우주로 떠나보낸 줄 알았는데, 존재의 남은 부분이 내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왔다. 예상한 대로 존재가 머물다 사라진 자리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 구멍이 너무 커서 나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이러면 증명된 거 아닌가. 이렇게 큰 구멍이 났는데."
"바보. 그 구멍은 또 어떻게 다른 사람한테 보여줄래? 니 존재 안에 난 구멍인데."
"그래? 내 존재가 이 구멍보다 더 크단 말이야?"
내 안에 들어온 신우정에게 말했다.존재의 의미는 함께 있을 때 몰랐지만 떠난 후에 알 수 있게 된다는 역설을 상황적으로 보여주고, 그러면서 동시에 존재를 느끼는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면서 존재를 증명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우주로 나간 존재는 대폭발을 하게 되고, 그렇게 사라짐으로써 실제적으로 존재를 증명한다.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사라져야만 한다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크레인크레인」은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둔 남자가 그 여자를 찾기 위해 중국의 오지 마을에 간 이야기이다. 그 여자는 거기서 어머니와 언니의 뒤를 이어 무당이 되었다고 하는데, 거대한 크레인 기사를 무당으로 여기고 있다. 너무 오지 마을이라서 버스나 자동차를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마을에 들어오게 하는 역할인데, 사람들이 봤을 때에는 높은 곳에서 전지전능하게 사람들을 이롭게 하니 그렇게 여기는 것이다. 남자는 여자에게 마음을 들키고 여자는 자신의 뒤를 이을 무당을 낳기 위해 남자의 아이를 가진다. 그리고 남자는 같이 있을 수 없음을 깨닫고 마을을 떠나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여기까지는 작가의 상상력이 나름의 현실성을 갖고 흥미롭게 진행되는데, 그 다음부터는 여자의 크레인이 남자를 붙잡다가 절벽에서 떨어지고, 그 크레인을 잡기 위해 갑자기 더 큰 크레인이 나타나서 여자의 크레인을 붙잡고, 여자의 크레인을 잡은 크레인이 떨어지자 더더 큰 크레인이 나타나서 더 큰 크레인을 붙잡고....... 이런 식으로 더 큰 크레인들이 반복해서 나타나서 태초의 기중신을 만나게 된다. 이 부분에서 하나의 궁금증이 해소된다. 이런 오지에 이렇게 큰 크레인을 어떻게 설치했을까 하는 것. 대답은 기중신이 설치한 것이다. 그렇게 구해진 두 사람은 서로의 매듭을 확인하고 자신들의 삶을 원래대로 돌이키지 않고, 묶여 있는 대로 살기를 원한다고 하고 지상으로 내려온다. 대신 지상의 모든 고난을 온전히 다 감내하면서.... 이들이 지상으로 내려오자 사람들은 신이 강림했다고 머리를 조아리고 남자의 아내와 세상 사람들의 저주를 다 받으면서 둘은 영원히 살았다고 한다.
마지막의 결말로 가는 과정이 너무 비약적이고 앞 부분과의 세계관과 차이가 있어서 좀 아쉬웠다. 기중신을 만나지 않고 기중신 설화를 좀더 현실적으로 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신합체 리바이어던」은 변신합체 로봇의 조종사의 사건 녹취록의 형태를 띠고 있는 작품이다. 50만대의 개별 로봇이 합체된 로봇이 우주에서 외계인과 벌인 최후의 전투에서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는 내용이다. 합체로봇은 거대한 힘을 갖게 되고, 그것을 나치오 시너지라고 하는데,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충만한 감정을 조종사들도 느끼게 되어 그것을 사랑과 동일시한다. 그런데 그 사랑의 나치오 시너지로 아무 저항도 하지 않는 외계 종족을 잔인하게 파멸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에서 통제할 수 없는 사랑의 부작용을 표현하고 있다.
나치오 시너지의 본질은 분명 사랑이었는데, 어저다가 그 사랑이 저렇게까지 변했을까요. 처음부터 이상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건 그냥 우리도 다 아는 그런 평범한 사라이었거든요. 특별하지도 않았어요. 사람도 아니면서, 두근거리고 불완전하고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따로 떨어져 있는 것보다는 같이 있는 게 훨씬 좋은, 그런 아주 인간적이고 흔해 빠진 사랑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그렇게 돼버리다니.
네? 하긴. 맞아요.그게 사랑의 본질이었는지도 모르죠. 사랑이란 건 늘 엇나가게 돼 있으니까요.「얼굴이 커졌다」는 한 분야의 전문가급 고수는 얼굴이 커진다는 내용이다. 청부 살인업자인 나는 얼굴이 커진 자신을 발견하고, 청부 살인 작업의 지장을 받지만, 다른 사람들도 얼굴이 커진 모습을 보면서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면서 웃는다. 여기 저기에 얼굴이 커진 사람들이 다니는 장면이 있는데, 이렇게 묘사한다.
세상은 온통 거대한 얼굴로 가득했다. 커다란 얼굴 때문에 사람들이 어디를 보고 있는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하이힐을 신은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가벼운 걸음으로 통통거리며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기에는 모두가 머리에 비해 목이 너무 가늘었으니까. 사람들은 저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온 도시가 거대한 얼굴로 가득했다. 모두가 프로였다. 예외는 없었다. 인종이나 성별, 나이를 떠나 모두가 서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커다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온 도시가 행복해 보였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프로인 세상. 그래서 행복한 세상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배명훈 작가의 상상력은 여전히 기발하고 유쾌했지만 짜임새가 조금 더 촘촘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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