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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3] 글쓰기의 최전선: 실존적 글쓰기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22. 7. 31. 15:47
책이름: 글쓰기의 최전선
곁이름: '왜'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지은이: 은유
펴낸곳: 메멘토
펴낸때: 2015.04.
직장 생활을 하다 그만 두고 글쓰기로 자신을 세운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글이다.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우지는 않았지만 삶에 대한 실존적인 성찰이 그의 글에 바탕이 되었고, 그를 작가로 세웠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작가들과는 다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와 더 가까울 수 있는 그의 이야기들 중에서 몇 가지들을 뽑아보았다.
키워드 글쓰기에 대한을 얘기를 하면서 핵심은 삶에 기반한 관점을 얘기한다. 글감은 예기치 못하게 떠오르기도 하고, 다양한 경험들이 글감이 되기도 하지만, 그 글감들이 다 떨어지고나면 비슷한 글들을 돌려막는 한계에 달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글감이 고갈되는 이유를 지은이는 '나에 대한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글감의 빈곤은 존재의 빈곤이고, 존재의 빈곤은 존재의 외면일지 모른다고 말하는데 결국 자신을 자신 내부로만 보지 말고 관계를 확장시켜서 삶의 경계를 돌파하면 글감이 고갈될 일은 없다고 한다.
고통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고통을 겪고 그것을 글로 쓰는 것은 힘들다. 그래서 그 부분을 자기검열하고, 빙빙 돌리거나 추상적으로 쓰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서 지은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억눌린 욕망, 피폐한 일상 같은 고통의 서사를 길어 올리는 학인들에게 세 가지를 당부한다. 삶에 관대해질 것, 상황에 솔직해질 것, 묘사에 구체적일 것. 결국 같은 이야기다.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게 삶이다. 뭐라도 있는 양 살지만 삶의 실체는 보잘것없고 시시하다. 그것을 인정하고 상세히 쓰다보면 소질할 수 있다. 상처는 덮어두기가 아니라 드러내기를 통해 회복된다.
고통의 글쓰기는 투쟁의 글쓰기다. 타인의 시선이 만들어 놓은 자아라는 환영과의 투쟁이고, 쓸 수 있는 가능성과 쓸 수 없는 가능성 사이의 투쟁이고, 매 순간 혼란과 초과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말들을 취사선택하는 투쟁이다. 이 치열한 싸움을 치르고 나면, 비록 구차스러운 자기주장 혹은 생에 대한 소심한 복수가 될지언정, 의미 있다.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쓸모 없음을 얘기하면서 문학평론가 김현의 말을 인용한다. 나도 재인용한다.
"확실히 문학은 이제 권력에 의 지름길이 아니며, 그런 의미에서 문학은 써먹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문학은 그 서먹지 못한다는 것을 써먹고 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그러나 문학은 유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문학이 억압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너무 당연한데말이다.
당연한 것들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대해서 얘기한다.
사람은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 제도 교육이나 미디어를 통해 축적된 정보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만드는 토대가 된다. 슬프게도 한 인간의 우주가 미디어를 통해 완성된다. 그래서 우리가 도덕, 상식, 통념이라 부르는 가치 체계는 워낙 당대의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글을 쓸 때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그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신 어떻게 어느 만큼까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할지 알려고 해야 한다. 언론매체에서 떠드는 상식에 도전적인 질문을 던지는 자, TV에서 커트된 무수한 삶을 '감히 알려고 하'는 자가 작가다.
마지막에 감히 알려고 하는 자가 작가라는 말이 인상적이다.
가사 노동에 대한 글을 설명하면서 누군가의 노동으로 빚지고 자신이 살아왔음을 얘기하고, 그래서 살림이 자신을 철들게 한다고 쓰고, 그래서 행복하게 가사일을 하자고 마무리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이유는?
손에 물 마를 새 없는 날들 속에서는 싱크대에서 자신을 떨어뜨려 사고할 수 없다. 그래서 계몽, 곧 도덕적 마무리는 위험하다. 상황을 단순화시켜버린다. 감정을 평준화한다.
도덕적 마무리의 폐해를 지적한 이 말,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다. 대부분의 글이 마무리에서는 자신이 이 사회와 유별나게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서 무난하게 끝낸다. 이런 마무리를 통해 사회와의 동질감을 얻을 수 있지만 그 글의 수준은 평균에 수렴한다. 한마디로 식상해진다. 그러니 약간은 유별나도 된다.
읽으면서 글쓰기를 하고 싶게 만들었고,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정말 제목 그대로 글쓰기의 최전선에서 실존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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