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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8] 한국에서 아티스트로 산다는 것: 작가, 작품, 삶행간의 접속/문화/예술/스포츠 2022. 4. 25. 15:41
책이름: 한국에서 아티스트로 산다는 것
곁이름: 청춘의 작가, 그들의 그림 같은 삶
지은이: YAP
펴낸곳: 다반
펴낸때: 2021.03.
만일 내 아이가 미술작가가 되겠다고 하면 나는 선뜻 찬성하지는 못 할 것 같다. 작품 활동의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막연하게 생각하는 작가로서의 삶과 작품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이 책에서 만날 수 있었다. 젊은 작가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어떻게 작품 활동하고, 어떻게 돈을 벌고, 무엇을 생각하고, 미래를 어떻게 계획하는지 구체적인 모습들을 엿볼 수 있었다. 예상대로 작품 활동은 어려웠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물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런 것들을 늘 고민하면서도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다. 미술을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으니까.....
1. 자신에 대해서
젊은 작가들이다 보니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는 부분들도 많이 있다.
졸업할 즈음에도 그림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하지 않았다. 작가는 무조건 하고 싶었으니까. 삶에서 그림을 배제한 적은 없었다. 그림을 포기해야 된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안 해봤는데, 그림이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걸까? 내가 소질이 있는 걸까? 잘될 수 있을까? 그런 건 고민해 봤다. 앞으로도 계속 그림을 그리고 싶고, 작가로 살고 싶은데, 또 미술과 상관없는 직장에 다니고 있으니, 혹여나 멀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가끔 한다.
미술에 대한 마음은 변함이 없다. 단지 상황들이 도와주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멀어지게 되는 경우에 대한 고민이 있는 것 같다. 대학 때에는 뛰어난 작품 활동을 하던 동료들이 졸업 후에 여러 사정으로 작품과 멀어지고, 취미로 작업하는 것을 보면 자신도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닌가 고민을 한다고 한다.
2. 작품에 대해서
미술 작가들이 작품에 대해서 설명을 요구받으면 설명을 해줄 것이다. 말을 잘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말이 어눌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설명할 것이 많은 작품도 있을 것이고, 딱히 설명할 말이 필요없는 작품도 있을 것이다. 설명하기가 어려운 작품은 어떤 경우일까?
전시를 할 때, 그림을 설명하는 일이 버거웠다. 이 그림을 왜 그렸는가에 대해 물어 올 때, 그냥 좋아서, 잘 그리고 싶어서, 이 대답 말고는 철학적으로 미학적으로 말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프랑스는 철학을 중시하는 풍토이다. (프랑스에서) 처음 미대에 입학했을 때, 한국에서 작업했던 것들의 포트폴리오로 들고 갔는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좋아서요'라고만 대답했다. 프랑스에서는 그런 대답이 안 통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대답도 안 될 이유는 없지만.....
그 후 프랑스 유학에서 교수와 철학적으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종이에 갇힌 수업이 아니라, 튼튼한 철학 위에서 작품을 구축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도록 하면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미술이 대중들과 만나려면 어느정도의 친절함을 보여주면서 독자가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데까지는 언어로 인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밑도 끝도 없이 알아서 해석하라고 하는 것은 웬만큼 영감을 주는 작품이 아니면 힘들테니까....
추상을 하는 작가들 중에서 우연성의 기법으로 작품 활동하는 경우도 있다. 그냥 물감 과감하게 뿌려놓고, 무엇을 표현했다고 하는 것들이 생각나는데, 일반인들이 봤을 때 예술 참 쉽게 한다는 생각,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기법으로 작품 활동하는 작가는 어떤 생각으로 그런 활동을 하는지 얘기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항상 우연한 상황과 맞닥뜨린다. 세상사가 내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건 아니고, 만남이란 것도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일이다. 예상치 못하게 다가온 상황들이 빚어내는 의외의 결과. 그것을 그냥 우연으로 가져와 보고자 하는 그런 과정, 우연성의 작법 또한 삶의 어느 순간에 겪은 우연한 상황에서 기인한다.
예상하지 못한, 계획하지 않은 우연의 상황은 우리의 삶에서 비일비재하다. 그런 삶의 모습을 표현하려면 기법도 우연적이어야 한다. 대신 우연을 필연으로 만드는 기획이 작가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우연의 과정이 한 번 해서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여러번 반복하는 과정을 거쳐야 작가의 마음에 드는, 작가의 의도(?)를 충족시키는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그냥 쉽게 작품 활동하는 것이 아니다.
작품을 창작하는 작업 과정에서의 태도도 이야기를 한다. 등산을 하면서 깨우친 것이 있다고 한다. 산에 올라 정상에 오르면 성취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내려오더라도 그 선택권은 자신에 있다는 위안을 얻는다고 한다. 그림도 마찬가지이다.
컨디션 안 좋은 날에는 정상까지 못 올라가는데, 그때마저도 내가 저기 도달하려고 악다구니를 쓰는 것 보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여기까지!' 이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중간에 내려온다. 그러면서 내려놓는 훈련이 된 것 같다. 이젠 다소 힘을 빼고 그리자는 마음이다. 더 잘하고 싶어서 계속 그리다가 그림을 망칠 때가 있다. 초기 스케치가 훨씬 좋았을 때가 있고, 알면 거기서 그만두고 붓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끝을 모르고 질척거리다가.... 완성이 어딘지를 모르겠는 거다.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끝났는데, 계속 그리고 있었다. 산다는 것도 비슷하지 않던가. 사람 만날 때도 그만 만났어야 됐는데, 끝까지 가서 끝내 그 끝을 보고야말고......
내려놓는다는 것, 열정이 있는 사람은 쉽지 않다. 마지막 말도 인상적이다. 사람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말.....
3. 생계에 대해서
생계를 유지하려면 1년에 2000만원은 벌어야 하는데, 그럴려면 1년에 4000만원치의 작품을 팔아야 한다. 갤러리와의 분배도 있으니까.... 이게 가능하면 전업작가 하고, 안 되면 못하고.... 이런 상황이니 홍보나 마케팅도 적극적이어야 한다.
작가들이 개인전 할 때 보면 홍보비를 되게 안 쓴다. 어찌 됐든 대중들이 와야지 불특정 다수한테 팔릴 수 있는 건데, 그런 마케팅을 잘 안 한다. 전시회 열어 놓고 관객들이 와주길 바라기만 한다면, 시장 논리랑 안 맞다.
작가들도 작품만 잘 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대중의 요구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자신의 작품성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의 약간의 타협을 하면서 홍보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생계가 유지되고,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테니까....
전업으로는 힘들기 때문에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일단은 회사를 다니면서 돈을 벌면서 고민을 해보자는 사람도 있다.
한 5년 정도 회사를 다녔다. 당시에는 큐레이터 직업이 엄청 유행하던 땔, 그림을 계속 그릴지, 이론으로 갈지. 그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일단은 회사를 다니면서 고민해 보자는 생각으로 승무원 직업을 택했다. 해외에 가서 전 세계의 미술관을 다 관람하자, 그런데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쉽지가 않으니까 이걸 가장 제일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그런 고민 중에 심지어 돈도 벌 수 있는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작가를 할지, 큐레이터를 할지, 내 그림을 그리는 게 좋을지, 남의 그림을 설명하는게 좋을지, 전 세계에 있는 미술관을 다니면서 좀 가늠을 해보고 싶었다. 그 '여정'의 끝에서, 그림을 설명하는 것보다는 그림을 직접 그리는 게 더 나의 성향에 적합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승무원을 하면서 전세계 미술관을 다 섭렵하고, 그만두고 자기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좀 낭만적으로, 낙천적으로 생각하는 작가들도 있다.
작품이 많이 팔리든 안 팔리든, 시간이 많든 적든, 전시를 많이 하든 안 하든, 그런 문제를 떠나서 내가 그림을 그릴 때 행복한가의 문제가 보다 중요한 것 같다. 이 시간이 소중하고, 자부심이 계속 남아 있는 한 그림을 계속 그릴 것 같다. 실상 잘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 같아선 끝까지 그릴 것 같다. 롱런하는 사람이 나중에 살아남는다고 하더라, 끝까지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거라고 하더라, 전성기를 한 번만 누려 보고 죽고 싶다, 내가 늘 그런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이 직업의 좋은 점이 뭐냐 하면, 장점만 보자면, 화가는 나이가 들수록 가치가 있어지니까. 다른 직업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치가 떨어지지 않던가. 정년퇴임을 해야 한다거나 뭔가 끝이 있는 직업들인데, 이 일은 계속할수록, 나이가 들수록 성장하는 직업이니까.정말 그런 것 같다. 나이가 많은데도 그것이 가치를 잃지 않는다는 측면은 장점인 것 같다. 단 꼰대스럽지만 않으면...
졸업 후의 생계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학 시절부터 가난해서 힘들게 다닌 작가도 있다. 돈이 없어서 집을 구하지 못해 작업실이나 작품 쌓아두는 창고에서 지내는 경우도 있고, 등록금이 없어서 휴학하고 돈 벌고, 복학하고, 다시 휴학는 경우도 있다.
4. 가정과 작품 활동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도 있다. 직업을 갖고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만큼이나 힘겹게 버텨 나가는 작가들이다.
화가에 대한, 저 여자 여유 있게, 여유 있는 집에서 자라서 그렇구나, 하는 인식들이 없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어디 가서도 그냥 프리랜서라고 말을 하지. 화가라고 말하진 않는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가 보다. 내가 좋은 남편을 두고, 좋은 환경에서 시간이 나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실상 나는 아등바등 열심히 노를 젓고 있는데.....
글을 쓰던, 그림을 그리던, 뭘 만드시던, 모든 엄마 작가들이 그런 마음이실 거다. 워킹맘이랑은 또 다른 개념이니, 워킹맘은 떳떳한 경제력이기달도 하지, 작가 엄마들은 다 불안덩어리이다. 불안을 더 크게 하는 요인은, 작가로서의 행위들이 취미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이다. 그런 거 안 해도 되잖아,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나머지 집안일이라던가 육아에 있어서 전업주부와 똑같이 완벽해야 한다. 뭔가 하나 어그러지면 취미생활 때문에 그런 거라는 시선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불안감이 점점 커진다. 나는 이것도 잘해야 되고, 저것도 잘해야 되고... 모든 엄마 작가들이 그러실 거다. 물론 워킹맘들도 당연히 그러실 테고.....워킹맘들도 힘들지만, 엄마 작가들은 더 힘든 것 같다. 집안 일 하고, 육아하고, 작업하고..... 그런데 돈은 잘 벌어오지는 못하고.....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지만, 시선이 더 힘들 것 같다. 취미 생활이라고 하는 시선도 힘들고, 괜찮다는 시선도 힘들고.....
5. 공통점들
이 책의 작가들은 몇 가지 공통점들이 있다. 정말로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고, 미술이 없으면 못 사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중고등학교 때부터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고, 그래서 큰 고민 없이 미대를 준비해서 들어왔다는 것이다.
졸업하고 전업 작가가 아닌 경우에는 직장 생활을 해야 하는데, 배운 게 미술이다 보니까 직장도 미술과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다. 제품 디자인, 무대 디자인, 건축 디자인, 큐레이터, 게임 배경 작화, 웹디자인 등.... 자신의 작품 활동과 거리가 가까울 수도 있고, 멀수도 있는데,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멀면 먼 대로 직장에서의 작업과 자신의 작업을 보완적으로 놓고 상호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 책을 지은 YAP가 이들 작가들에게 큰 버팀목이 되는 것 같다. 힘든 가운데에서도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독려하고, 힘이 되주는 것 같다. 작가들이 스스로를 지키는 모습이 아름답다.
미술을 전공으로 하고, 작가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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