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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2] 축구란 무엇인가: 축구를 다시 보다행간의 접속/문화/예술/스포츠 2020. 5. 31. 22:26
책이름: 축구란 무엇인가
지은이: 크리스토프 바우젠바인
옮긴이: 김태희
펴낸곳: 민음인
펴낸때: 2010.05유튜브에서 우연찮게 축구 전술 관련 동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축구가 완전 새롭게 느껴졌다. 그 전까지는 공차고 뛰고 패스하고 막고 그런 것이 축구의 전부인 줄 알고 굉장히 단순한 운동이라 생각했는데, 수비 전술이나 공격 전술 등 팀으로서 목표를 향해 나가는 모습이 축구의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게 축구에 약간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에 도서관에서 이 책을 보니 축구에 대해서 좀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뽑아보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관심을 가진 전술과 관련한 내용은 별로 없어서 아쉬웠지만 축구의 역사와 인문학적인 이해 등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1. 축구의 매력
지은이는 축구가 다른 운동과 다른 점으로 불안정성을 들고 있다. 손을 사용하지 않고 발을 사용하기 때문에 완벽하게 공을 장악할 수가 없다. 축구에서 공을 잡았다고 표현하지만 실제로 발은 공을 잡을 수 없다. 다른 선수에 비해서 공을 잘 다룰 수 있는 환경에 있다 뿐이지 완벽하게 잡은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 공은 순식간에 다른 팀에게 갈 수도 있다. 이러한 원초적 불안정성과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긴장이 지속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규칙이 복잡할 필요도 없게 되고, 물 흐르듯이 움직임이 특징이 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축구의 성공은 상당 정도 실패에 기인한다. 즉 발로 공을 '잡으려는' 시도의 실패에 기인하는 것이다.
쓰면서 생각한 것인데 비슷한 운동으로 아이스하키나 하키를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에서는 발이 아니라 스틱으로 불안정성을 유지한다.
2. 근대 축구의 탄생
발로 무엇인가를 차는 운동은 고대에도 있었고, 동양에도 있었고, 어디에나 있었다. 근대적인 축구는 민중놀이로서 마을 간 경기를 했는데, 규칙도 없었기 때문에 폭력과 부상이 난무했었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그 폭력성이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금지시키기도 했는데, 그래도 민중들 사이에서는 꾸준히 이루어졌다.
산업혁명 시기에는 축구를 해야 할 민중들이 모두 공장의 노동자로 일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축구를 할 수가 없었는데, 같은 시기에 학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축구를 가르치면서 학교에서 축구가 번성하였다. 그 가운데에서 규칙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학교 간 협의로 규칙을 만들게 되었고, 이 규칙을 관장하는 FA가 설립되고 이 조직을 중심으로 하여 클럽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선수들은 대부분 상류층 출신이 대부분이었는데, 점차적으로 노동자 팀도 창설되어 함께 경기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두 계급의 대항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았고, 사람들이 몰리자 기업가와 명망가들이 클럽을 경영하겠다고 나서면서 많은 클럽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면서 노동자 중에서 기업에 속해 있지만 실제로 노동은 하지 않고 축구만 하는 프로 선수가 등장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요즘처럼 많은 돈을 받은 것은 아니고 노동자들과 비슷한 임금을 받으면서 단지 힘든 노동을 하지 않고 재미있는 축구를 하면서 유명해지는 것이 좋아서 하는 선수들이었다.
그리고 이 반대편에 상류층의 젠틀맨들은 노동자들의 참여로 축구가 과격해지는 것에 대해서 협회가 벌칙 규정을 제정하려고 하자 반대한다. 경기는 페어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 페어 플레이를 하지 않는 경우를 가정하는 것 자체가 맞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선수들을 페어 플레이를 하지 않는 양심없고 더티한 사람들로 가정하는 것은 스포츠인을 모독한다는 것이다. 특히 페널티킥에 대해서 그런 반응이었다. 그러나 프로페셔널한 노동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이러한 젠틀맨 선수들은 점점 기반을 잃어갔다.
프로페셔널리즘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별화하려고 하면서 아마추어 이상이 등장했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젠틀맨들이 스포츠 규범을 지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데올로기적으로 은폐하려는 시도에 불과했다. 이제 명확한 규칙과 엄격한 처벌 방식을 마련한 축구는 노동자 프로선수에게 맡겨졌고, 지도층은 하층 계급의 시선을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여 '사회적 통제'를 행사하는 기회로 여기고 이를 환영했다. 그리고 젠틀맨들은 요트나 등반과 같이 특권층의 개인 스포츠를 선호하거나, FA 창설자들이 '지나치게 폭력적'이라고 거부했던 럭비로 옮겨갔다.
그리고 노동자들에게 축구는 여가 활동으로서도 기능하게 된다. 자신이 직접 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클럽의 경기를 보면서 응원을 할 수도 있다. 철도의 발달로 원정 응원도 가능해졌다. 또한 미디어는 축구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기 위해 경쟁적으로 기사를 쏟아내었다. 결국 축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3. 드리블러와 콤비플레이어
초기의 축구에서 전술은 없었다. 공을 잡으면 차고 달리고 골을 넣는다. 상대팀도 마찬가지다. 팀은 수비수 2명과 8명의 스트라이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다가 오프사이드 규칙이 개정되면서 자기보다 뒤에 있는 같은 편 선수에게 패스할 수 있게 되었고 플레이는 세련되고 흥미롭게 변했다. 그러면서 2-2-6 시스템이 가동된다.
4. 페어 플레이
페어 플레이라는 말은 공정하고 깨끗하게 경기한다는 의미이지만 사실 이 말이 나오게 된 것에는 배경이 있다.
잉글랜드에서 신사들이 축구 규칙을 만들었을 때, 페어플레이라는 윤리는 특권층에게만 해당된다고 여겨졌다. 잉글랜드 스포츠맨들에게 정정당당하다는 것은 예의 바르고 정직하고 공명정대하고 공정하며 흠잡을 데 없이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중략)
19세기 후반기 축구를 새로 창안한 귀족주의적 신사들은 순수하게 즐기기 위해, 경기 그 자체를 목적으로 경기를 했던 순수한 스포츠맨들이었다. 엘리트 계층인 그들에게는 오로지 고상한 자기 이해를 과시하기 위해서 스포츠를 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들은 스포츠를 넘어서 더 얻어야 할 것이 없었고 그러한 명예 규정은 높은 구속력을 가질 수 있었다. (중략)
그들은 이미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고, 진작 사회에서 정상의 위치에 있거나 최소한 그렇게 될 예정이었다. "참가에 의의가 있다."라는 유명한 이상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신사들은 오로지 경기에 참가하는 것을 즐질 여유가 있었다. 현실의 삶에서 그들의 위치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엘리트로 이해하는 그 계층은 페어플레이라는 이상을 통해 사회적으로 열등한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차별화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열등한 사람들은 그 자체가 목적인 경기를 하거나 스포츠 윤리를 지킬 역량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축구를 접수하면 경기가 야만적이 될 것이라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하층계급과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해서 이 말을 사용한 것이다. "참가에 의의가 있다."는 말도 마찬가지이다. 승리하지 않아도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참가 자체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계층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노동자 계층은 페어 플레이를 하지 않고 비양심적이면서 더티한 플레이만 했을까? 그렇지 않다.
축구가 '프롤레타리아 경기'가 된 것은 노동자들이 페어플레이라는 신사의 원칙에서 주요 요소들을 변형된 형태로 받아들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노동자 특유의 경기 방식("격렬하되 정정당당하게 플레이하라.")은 이른바 프롤레타리아화된 페어플레이의 특성을 보여준다. 노동자 계층 출신 프로선수에게도 고결함과 상호 존중의 문화가 발전했다.
5. 마무리
읽으면서 축구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이 많았고, 그냥 어느 순간에 축구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도 새삼 느꼈다. 독일 사람이 지어서 독일 축구 얘기가 많이 나왔는데, 러시아 월드컵에서 우리가 독일을 꺾기 전에 쓴 책이라 그 얘기는 없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얘기는 간간히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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