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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28] 노가다 칸타빌레: 건설노동 현장 길라잡이
    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21. 6. 6. 13:27

    책이름: 노가다 칸타빌레

    곁이름: '가다' 없는 청년의 '간지' 폭발 노가다 판 이야기

    지은이: 송주홍

    펴낸곳: 시대의 창

    펴낸때: 2021.03.

     

    지은이의 이력이 독특하다. 기자로 일하다가 출판과 홍보 일을 하다가 이혼을 한 후에 노가다 판에 뛰어들어서 일하면서 글을 쓴다고 한다. 그냥 잠깐 지나가는 곳으로 노가다 판을 여기는 것이 아니라 몸이 허락할 때까지 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서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이 책에는 노가다 판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그 세계를 경험한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들어가 있다. 우리가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힘들다, 거칠다'는 삶의 실체를 누군가가 대신 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직접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몰랐던 것도 많았고, 그래서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았다. 그런 것들 몇 가지만 뽑아보았다.

     

    직영에 대해서 얘기한다. 직영은 하청 건설사 소속 잡부이다. 각 공정이 잘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 물품 반입 반출, 공동으로 해야 하는 일 등을 하는 역할이다. 총무팀 같은 것이다. 직영을 하면 일을 넓게, 공정 전체를 파악할 수 있어서 먼저 직영으로 경험을 쌓고, 철근공이든, 목수든 적성 찾아가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지은이가 선택한 기술은 형틀목수이다. 일종의 거푸집을 만드는 일인데, 그걸 선택했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은 다들 미쳤다고 난리다. 철근이 돈도 많이 받고,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서 많이들 하는데, 그걸 마다하고 어렵고, 단계도 여러 개인 목수를 하겠다고 하니 말이다. 그런데 지은이는 그래서 선택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문제 상황들을 다양한 연장을 갖고 어떻게든 풀어나가는 그 역동성이 매력이라고 하면서.... 

     

    공정간 간섭. 간섭이란 말은 남의 일에 참견하거나 끼어들어서 방해하는 것을 말하는데, 노가다 판에서는 공정이 겹치는 것을 말한다. 일정이 빡빡하기 때문에 하나의 공정이 끝나기도 전에 그 다음 공정이 들어와서 동시 작업이 이루어질 때 간섭이 일어난다. 슬라브 공사에서는 형틀-철근-전기와 설비-타설 순인데, 이 때 간섭이 일어나는 풍경은 다음과 같다.

    101동 4층 슬라브 공사를 한다고 치자. 가정 먼저 목수가 바닥을 깔아야 한다. 근데 보통은 바닥 다 깔기도 전에 철근공이 우르르 몰려온다. 반쯤은 뻥 뚫린 4층에서, 목수들을 따라가며 철근을 깔기 시작하는 거다. 철근공이 402호까지 작업하고 403호로 넘어갈까 싶으면 벌써 전기공과 설비공이 4층에 연장 푼다. 거기에 직영 잡부까지 섞여 있으면 한 개 층에 다섯 공정 팀, 50~60명이 뒤엉켜 작업하게 된다. 도로에만 꼬리 물기가 있는 게 아니다. 이렇듯 노가다 판에도 꼬리 물기가 빈번하다. 이럴 때면 진짜 정신도 없거니와, 서로가 서로를 '간섭'하는 상황이라 사소한 일로 왕왕 싸움이 나곤 한다.

    간섭의 풍경이다. 절대 기다려주지 않고, 절대 양보하지 않으면서 그렇지만 공동의 목적을 향해 어떻게든 나아간다. 

     

    노가다의 매력도 얘기한다.

    내가 생각하는 노가다 판의 가장 큰 매력은 담백하다는 점이다. 회사 다닐 땐 내 노력보다 결과가 안 나와 속상할 때도 있었고, 내 노력보다 결과가 잘 나와 머쓱할 때도 있었다. 노가다 판은 일한 만큼, 딱 그만큼 결과가 나온다. 인풋 대비 아웃풋이 명확하다. 노가다는 열심히 하면 그만큼 담백한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지은이는 몸을 써서 일을 하면 잡념이 사라지면서 진공상태처럼 무념무상에 들고, 온전히 자신에게만 집중하게 되는 상태가 되는데, 그렇게 일을 하고나면 가볍고 상쾌해진다고 한다. 게다가 우울증이나 불면증도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곰방꾼과 미장공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곰방꾼은 중력과 싸우는 사람이고, 미장공은 시간과 싸우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곰방꾼은 지게를 지고 자재를 위로 올리는 사람이라서 중력과 싸우고, 미장공은 시멘트가 굳기 전에 작업을 맞춰서 끝내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싸운다고 한다. 이 표현이 이 사람들의 작업을 잘 설명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철근공은 자연과 싸우는 사람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첫번째 공정이기 때문에 지붕이 없는 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한여름에는 뙤약볕에서 뜨겁게 달궈진 철근을 다루고, 한겨울에는 칼바람 맞으면서 차갑게 얼어붙은 철근을 다루니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밖에 현장 사람들 간의 알력과 다툼도 있다. 워낙 거친 현장이니 그런 것들이 없을 수는 없다. 그리고 비리도 있는데, 그런 것들에 대한 개선을 위해 노조도 있고,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하청에, 하청에, 하청을 주는 현장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본말 '도가따'에서 유래한 '노가다'라는 말을 쓰는지에 대해서 지은이가 얘기했는데,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노가다'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막일, 막일꾼'인데, 이 말은 결국 중요하지 않은 허드렛일을 뜻한다. 결국 언어가 의식을 지배한다고 말하면서 대상에 대한 멸시가 담겨 있기 때문에 이 말을 도저히 쓸 수가 없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해가 된다. 노가다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말이 필요할 것 같다.

     

    나중에 건설 노동 현장을 안내하는 매뉴얼 같은 책도 필요할 것 같다고 얘기하는 것으로 봐서 조만간 이런 책이 나올 것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을 통해서 건설 노동 현장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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