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책 17]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슬픔이 스며든다
    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21. 3. 23. 14:58

    책이름: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곁이름: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

    지은이: 강창래

    펴낸곳: 루페

    펴낸때: 2018.04.

     

    암 투명을 하는 아내를 대신에 요리를 하게 된 남편이 쓴 레시피 기록이다. 그런데 레시피가 아내가 먹을 수 있는 요리라서 레시피를 작성하고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아내를 생각하는 마음이 전달이 되고, 슬픈 마음이 전달이 되서 잔잔하게 마음을 울리는 글이다.

     

    단식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그리움을 얘기한다.

    단식은 단식할 때보다 먹기 시작할 때가 더 힘들다. 몸이 받아내지 못할 먹을거리를 머리는 끝없이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래도 길어야 한 달만 참으면 된다. 암과 싸우는 사람들은 일년이나. 몸은 그리움과 싸워야 한다.
    엄격한 식이요법은 간절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누가 그리움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일 년 동안이나. 그리움만으로도 사람은 죽을 수 있다. 그리던 얼굴을 만나면 얼마나 행복할까.

    단식과 그리움을 연결시킬 수가 있었던가. 단식은 그저 고통을 연상시키지만 그 고통이 결국은 그리움의 고통일 수 있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아내가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 지은이는 슬픔과 두려움을 말한다.

    슬픔이 이렇게나 두려웠던 적이 없다. 아닌가. 두려움이 그렇게 슬펐던 적이 없다.

    아내를 잃을 수도 있는 큰 수술 앞에서 슬픔과 두려움이 함께 드는 복잡한 심경이 잘 표혀되어 있다. 슬픔과 두려움이 이렇게 가까운 관계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내에게 과일을 걸러서 주스를 만들어주는 모습이 있는데, 주스 기계로 걸르면 건더기가 있어서 안 된다. 아주 작은 건더기도 없이 거르려면 사람이 해야 한다. 그렇게 힘들게 걸러서 아내에게 갔다 주면 아내가 마신다. 그 때의 느낌을 이렇게 말한다.

    망고 주스를 마실 때 눈가를 스쳐지나가던 순간적인 희열과 반짝임...... 얼마 만인가. 고개를 들고 애기처럼 웃었다. 바로 이 맛이야. 살 것 같아. 이 기억도 세월과 함께 바래지겠지. 지금 이 아픔과 함께.

    순간적인 희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함께 할 수밖에 없는 아픔을 얘기하고 있다.

     

    결국 아내를 떠나보내고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 혼자서. 항상 아내와 함께 다녔는데, 이제는 혼자이다. 마치 아내를 만나기 전의 젊을 때처럼. 큰 눈이 와서 공항까지 힘들게 도착하고 간신히 체크인하는 모습에서 삶의 태도가 보인다.

    시간을 보니 열한시 십오분이다. 체크인 마감은 이십오분, 십분 만에 이게 가능할까? 안 될 일이면 안 될 것이고 될 일이면 될 것이다. 걱정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다른 방법도 없다. 이 순간을 즐기자. 투병하는 아내를 돌보면서 수없이 되뇌던 말이다. 조바심이 났지만 느긋하게 기다렸다. 이십삼분에 체크인을 했다. 내가 마지막이었다.

    그래 우리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 있고, 우리의 힘으로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있다.

     

    슬프다는 말, 힘들다는 말 한 마디 없이 슬픔과 고통을 독자들도 온전히 느낄 수 있도록 썼다. 그래서 더 아프다. 지은이가 슬픔에 집중하지 않을 때 우리도 함께 슬픔에 집중하지 않는데 그 사이에 슬픔은 우리에게 스며든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