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10] 소설가의 일: 소설쓰는 사람이 소설가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18. 5. 11. 12:56
책이름: 소설가의 일
지은이: 김연수
펴낸곳: 문학동네
펴낸때: 2014.11
소설가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소설을 쓰는지 보여주는 산문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친절하게 체계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고, 현란한 비유와 개성적인 문체로 보여주고 있다.
인상적인 부분을 뽑아보았다.
비평가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비유한 말이 재미있다. "비평가들이란 하렘의 환관과 같다. 매일 밤 그곳에 있으면서 매일 밤 그 짓을 지켜본다. 매일 밤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그 자신은 그걸 할 수가 없다." 잘 알지만 하지는 못하는 존재란다.
그리고 기본적인 이야기의 공식을 말한다.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그에게 없는 것) / 세상의 갖은 방해 = 생고생(하는 이야기)
정말 그런 것 같다. 이중에서 결정적인 것은 "그에게 없는 것"이다. 즉, '결핍'이고, 이를 채우려고 하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발생하는 것이다. 욕망과 결핍이 없다면 이야기는 없을 것 같다.
이러한 틀에서 인물을 만들면 그 다음에 할 일은 두 개의 상자를 마련한다. 하나의 상자에는 "왜?", 다른 하나의 상자에는 "어떻게?"게 들어있다. 이 두개의 상자에서 이 질문들을 번갈아 꺼내면서 이에 대한 대답을 하면서 살을 붙여나가면 소설의 초고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고친다. 여러번 고친다. 고칠 수 있는 만큼 고친다. 그래서 소설가에게 필요한 동사는 "쓴다. 생각한다. 다시 쓴다"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설명을 조금 더 소설가답게 하면 이렇게 된다.
빈도수 염력사전 같은 게 있다고 치자. 이 상상의 사전에는 표제어가 빈도순으로 배치된다. 말하자면 신문과 잡지와 책, 그리고 우리의 대화 속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와 표현은 앞쪽에 있고,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단어와 표현은 뒤쪽에 있다. 이 사전의 페이지는 손이 아니라 생각의 힘으로만 넘길 수 있다. 그러니까 갈피를 넘겨서 뒤쪽의 단어와 표현을 보려면 더 많은 생각의 힘, 그러니까 염력이 필요하다. 초인적인 염력을 발휘해 남들보다 훨씬 뒤쪽의 단어와 표현을 쓸 수 있다면, 그의 문장은 훨씬 좋을 것이다.
한마디로 남들이 쓰지 않는 단어들을 궁리궁리해서 소설을 쓰라는 얘기인데, 이렇게 상상력을 가미해서 표현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임종 직전의 노인에게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한 시절을 말해보라면 그는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정도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어떤 시절을 얘기할 것이다. 소설의 미문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흔한 일인 줄 알아쓴ㄴ데, 알고 보니 그건 너무나 특별한 일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래서 일상의 시간이 감사의 시간으로 느껴진다면, 그래서 그 일들을 문장으로 적기 시작한다면 그게 바로 소설의 미문이자, 사랑에 빠진 사람의 문장이 된다.
<중략>
소설 속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다. 추잡한 문장은 주인공을,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자기 인생을 뻔한 것으로 묘사할 때 나온다. 사랑하지 않으면 뻔해지면 추잡해진다.
더 세부적으로 소설의 문장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도 있다.
자기가 쓰는 문장이 소설에 합당한 문장인지 확인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눈으로 보고 코로 냄새맡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단어들로 이뤄졌다면, 소설 문장을 쓰고 있다. <중략> 예를 들어 '사랑은 나눠줄 때 아름다워진다'는 문장을 썼다고 치자. 누구도 '사랑'을 보거나 만지거나 냄새맡을 수는 없다. 그러니 이 문장은 소설의 문장에 적합하지 않다. 대신에 '다른 사람을 안으면 둘 모두 따뜻해진다'라고 하면 소설의 문장에 가까워진다. '다른 사람을 안는 일'은 '사랑'보다는 더 잘 보이니까. 그래서 소설을 읽는 일은 소설 속 캐릭터의 감각을 대신 맛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감각은 다른 유사한 감각으로 치환될 때 문학적 문장은 완성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30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방법을 말한다.
삼십 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세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들 뿐이에요. 이 사실이 이해된다면, 앞으로 봄이 되면 무조건 시간을 내어 좋아하는 사람과 특정한 꽃을 보러 다니고, 잊지 못할 음식을 먹고, 그날의 날씨와 눈에 띈 일들을 일기장에 적어놓으세요. 우리 인생은 그런 것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이상 강의 끝.
우리 인생이 이런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말이 신선하다. 참 단순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 단순함이 신선하다.
마지막으로 그가 자신을 소개할 때, '소설가 김연수'라고 말하지 않고, '소설쓰는 김연수'라고 말한다고 한다. 이는 소설가를 고정되고, 특별한 존재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소설 쓰는 사람은 누구나 소설가라는 그의 생각을 반영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문장이 길고, 상념이 많아서 약간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있지만 내용은 소설을 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
'행간의 접속 > 에세이/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 15] 정희진처럼 읽기: 책을 통과한 후의 나 (0) 2018.05.31 [책 12] 검사내전: 검사 눈에 비친 세상과 법 (0) 2018.05.17 [책 4] 될 일은 된다: 온전히 내맡기기 (0) 2018.04.11 [책 24] 대통령의 말하기: 생각이 있어야 말을 잘 한다. (0) 2017.11.30 [책 4]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무한감사 (0) 2017.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