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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2] 검사내전: 검사 눈에 비친 세상과 법행간의 접속/에세이/인물 2018. 5. 17. 13:52
책이름: 검사내전
곁이름: 생활형 검사의 사람 공부, 세상 공부
지은이: 김웅
펴낸곳: 부키
펴낸때: 2018.01
검사라고 하면 권력욕을 갖고, 정치적으로 행동하는 검사를 생각하지만 그런 검사는 사실 일부이고, 대다수의 검사들은 서류 더미에 파묻혀서 사건 처리하기에 바쁘다. 이 책은 그런 생활형 검사의 눈에 비친 세상, 사람, 그리고 검사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검사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호기심이 발동하여 읽게 되었다.
앞 부분에 사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대한민국은 사기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사기가 많고, 검사로서 사건 수사들을 하다보니 사기와 관련된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사기의 첫 번째 공식은 피해자의 욕심을 자극하는 것이다. 보이스 피싱처럼 불안감으로 이성을 마비시키는 사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기는 피해자의 욕심을 이용한다. 사기꾼들의 속임수란 것은 실상 제비가 물어온 박씨에서 고대광실 기와집이 나온다는 것만큼 허무맹랑하다. 맨 정신으로 들으면 누구나 말도 안 되는 사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맨정신으로는 알 수 있는데, 욕심이 들어차게 되면 합리, 논리, 이성 등이 마비되어 사기를 당한다는 것이다.
강 씨는 조사를 받으면서 할머니가 설마 자기처럼 어렵고 힘든 사람을 들칠 줄 몰랐다며 흐느꼈다. 그러나 만만한 데 말뚝 박고, 생가지보다 마른 가지 꺾는 법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니까 사기 치는 것이다. <중략> 선의는 자신이 베풀어야 하는 것이지 타인에게 바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기도 마찬가지다. 사기꾼은 없는 사람, 약한 사람, 힘든 사람, 타인의 선의를 근거 없이 믿는 사람들을 노린다. 이것이 사기의 서글푼 두 번째 공식이다. 그러니 설마 자기같이 어려운 사람을 등쳐먹겠느냐고 안심하지 마시라.
이건 좀 진짜 서글픈 얘기다. 사기는 강한 사람, 힘있는 사람, 돈 많은 사람, 여유 있는 사람들이 당하는 것이 아니란다. 그런 사람들이 당하면 좀 정의로운 것 같은데, 그런 것은 영화에서나 있는 것이다.
어설프게 아는 것은 사기당하는 지름길이다. 사기의 세 번째 공식이다. 나름대로 알아보는 것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주변의 지인이나 인터넷 검색으로 얻은 정보는 없느니만 못하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대신해주는 것은 없다. 대신해주겠다는 사람은 대개 브로커다. 뭐든 새로운 일을 하려면 그곳에서 직접 6개월 이상 일해보고나서 결정해야 한다. 그게 싫다면 차라리 안 하는 것이 낫다. 그냥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은 모조리 거짓말이다. 좋은 것을 굳이 광고까지 해서 당신에게 알려주는 선의란 없으며, 만약 그런 게 있다해도 절대 당신의 순번까지 돌아오지는 않는다.
자영업 창업할 때 부동산이나 프랜차이즈 본점에 속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런 경우에 대한 얘기다. 정말 사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불안해서 살겠나.
인상적인 부분 중의 하나는 위기가 기회다라는 말에 대한 다른 의견을 말하는 부분이다. 좀 길지만 인용해본다.
범죄 피해자가 되는 것은 큰 위기이다. 재산을 비롯한 물리적인 피해를 당할 뿐만 아니라 커다란 정신적 상처를 입는다. 더욱이 사람과 우리 사회에 대한 신뢰도 잃는다.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흔히 사람들은 위기가 기회라고 설교한다. 정말 그럴까? 주변에서 그런 사례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듯 위기는 위기다. 그것이 기회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기를 겪어보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위기가 진짜 기회라면 위기를 만들어주는 컨설팅 회사가 있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해서 성공했다는 이야기들을 잘 들어보면 사실 위기가 아니었던 경우가 더 많다. 단순한 순환 과정에서의 일시적인 부침에 불과한 것을 크나큰 위기였던 것처럼 호들갑 떠는 이유는 자신이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고 포장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심각한 타격을 주지 않는 것은 위기가 아니다. 위기란 대개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게다가 막 걸음을 떼는 영민 씨 같은 청년들에게 닥치는 위기는 재기 불능의 타격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위기라고 부르는 것이다. 위기는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예방하고 피해야 하는 것이다.
거침이 없고, 시원시원하게 말한다. 위기를 포장하고 있던 겉치레를 싹 벗겨내는 느낌이다.
그 다음으로 법조계와 법에 대한 지은이의 생각한 것들이 몇 가지가 있다.
인상적인 것은 인공지능을 법조계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담은 부분이다. 지은이는 반대론자들을 비판한다. 반대론자들이 말하는 인간의 운명을 기계에 맡길 수 없고, 인간이 결정해야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주의가 침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인공지능도 인류의 산물이고, 인간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해야 할 것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뿐이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비유로 내비게이션을 따라 운전한다고 해서 티맵이 나를 조종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정하고, 예측가능하다는 것을 찬성의 이유로 들었다. 사례들의 특수성에 기대어 들쑥날쑥한 판결이 나왔지만 이런 것들을 방지할 수 있다.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회복적 사법 이론에 대한 것도 있다.
회복적 사법 이론은 전통적인 형사 사법과 달리 범죄를 피해자와 공동체에 대한 침해라고 본다. 사실 내란죄, 외환죄 등 예외적인 범죄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범죄는 국가에 대한 도발이 아니라 피해자와 지역공동체에 대한 해악이다. 술 마시고 소란을 피우는 것이 국가에 대한 공격이겠는가. 잠을 설치고 불안한 것은 국가가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다. 따라서 수사상의 적법절차나 처벌보다는 피해자의 회복과 가해자의 반성 및 보상을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와 지역공동체에 끼친 해악을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복적 사법 이론에서는 국가가 수사를 해서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보다 피해자, 가해자, 지역공동체가 모여 범죄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어떻게 원상회복시킬 것인지를 고심하는 것이 형사 사법 절차의 핵심이 된다.
학교에서도 처벌 위주의 생활지도가 아닌 회복적 생활지도라고 하는 새로운 생활지도 기법이 나오고 있는데, 그것도 이런 이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이런 방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형사 사법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데, 회복적 사법 제도로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 다음으로 법원의 개혁에 대해서도 얘기하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판사 선출에 대한 것이다. 입법부와 행정부에는 국민이 주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는데, 사법부에 대해서는 인사청문회 같은 견제하는 방식으로만 주권을 행사하게 된다. 나는 원래 그런 것인 줄 알았는데, 미국 같은 나라는 주민들이 판사를 선거로 뽑힌다고 한다. 그래서 판사가 잘못된 판결을 내리면 주민들이 판사도 소환할 수 있다고 한다. 판사들에 대한 강력한 견제 장치가 있는 것이다. 그럼 판사들도 선거운동을 하나? 뭐 그런 생각도 드는데, 민주주의 원리를 충실하게 지키려고 그러한 제도를 취한다고 한다.
맨 마지막 에필로그에 지은이는 말한다. 검사도 직장인이라고.... 특별할 것 없다고.... 단지 누군가를 강제하는 일을 하는 것이 다를 뿐이지 다른 직장인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야유회가 가서 막내가 재롱 부리고, 일 잘 못하면 상사한테 깨지고, 야근하고 회식하고.....
읽으면서 검사에 대한 이해를 조금 더 할 수 있었고.... 정치검사가 아닌 평검사들의 생각들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은이의 기가 막힌 비유와 글재주가 있어서 책을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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