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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4]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 저자의 강연도 재미있을 것 같은 책
    행간의 접속/인문 2016. 2. 3. 17:32

    책이름: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2

    지은이: 채사장

    펴낸곳: 한빛비즈

    펴낸때: 2015.02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2는 철학, 과학, 예술, 종교, 신비를 다루고 있다. 1권이 다루는 역사, 경제, 정치, 사회, 윤리가 현실의 얘기라면 2권은 현실 너머의 얘기이다. 1권에 비해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들이 좀 있어서 정리해본다.


    1. 진리


    현실 너머 세계의 화두는 진리이다. 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탐구하는 여러 후보들이 바로 철학, 과학, 예술, 종교이다. 그래서 이런 후보들이 어떻게 진리를 향해 가는지 보여주고 있다. 그 전에 진리에 대한 4가지 태도가 있는데, 단일한 진리는 있다(절대주의), 단일한 진리는 없다(상대주의), 모르겠다(불가지론), 상관없다(실용주의) 정도로 나눠볼 수 있다. 이 중 이 책에서는 주로 절대주의, 상대주의, 회의주의를 바탕으로 얘기를 한다.


    2. 철학


    철학에서는 많이 들은 얘기들이 나왔지만, 뜻을 알지 못했던 것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가 '교부철학'에 대한 것이었다. 이 때의 '교부'는 그리스도교를 변호하기 위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노력을 했던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를 변호하기 위해 플라톤의 이데아 사상을 차용하여 연구한 철학이 교부철학이다. 절대주의와 관련이 있다.


    데카르트 사상의 의의에 대해서도 얘기하는데, 듣고 보니 의미가 깊다는 생각이 들었다.


    데카르트 이전까지의 시대는 신 중심의 중세였다. 당시에는 신이 중요할 뿐, 인간은 가치나 중요성을 갖지 않았다. 인간과 현실 세계는 신의 피조물로서, 인간의 존재 의미는 신으로부터 도출되었다. 신이 제1원인자이고, 그로부터 파생되는 존재가 인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데카르트의 사유는 신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모든 세계의 증명을 시작한다. 진리에 도달하는 길은 나의 의심과 회의를 통해서이고, 나의 존재 증명이 신과 세계의 존재 증명보다 앞선다. 즉 인간의 이성이 우선이고, 신과 세계는 이로부터 파생되어 증명되는 것이다. 데카르트가 아직도 '신'을 언급함에도 불구하고 근대 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이 있고,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고 있다는 것이다. 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나, 이성이 있는 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의 시대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의미가 있다.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지만.....


    그 다음 칸트의 관념론. 칸트는 경험론과 합리론을 종합했다는 말을 듣는데, 구체적으로 뭘 어떻게 했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이에 대한 얘기이다.


    칸트는 세상을 둘로 분리했다. 내 눈앞에 드러난 세계를 '현상'이라고 부르고, 현상 너머의 진짜 세계를 '물자체'라고 불렀다. 칸트에 따르면 결국 우리가 알 있는 것은 현상뿐이고, 사물의 실체 자체를 인식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각자의 현상 세계에 매몰되어 있는 주관적인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칸트는 모두의 사고 구조가 보편적인 형식을 가지고 있음을 밝힘으로써 세계가 개인의 주관에 함몰되는 문제를 극복해냈다. 즉 우리가 각자가 자신의 머릿속 세상인 현상 세계만을 보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현상 세계를 드러내는 사고의 구조 혹은 뇌의 형식이 보편적이기 때문에 사실은 유사한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진리는 세계 밖의 '경험'에서 혹은 내 안의 주관적 '이성'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주체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한다. 합리론자들이 말하는 이성은 주관적인 독단에 빠지기 쉬워서 위험하고, 경험론자들이 말하는 경험은 물자체를 인식할 수 없으니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모두의 사고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사고의 형식을 분석함으로써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


    풀어서 쓴 말이라고 하는데 맞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해서.... 가깝게 와닿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전에 알고 있던 것보다는 한 걸음 더 나간 느낌이다. 경험론과 합리론이 극복되면서 종합이 된 것이 그래도 보이니까.... 


    실존주의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실존주의 많이 얘기하는데, 그 기본 생각을 들을 찾을 수 있었다. 실존이라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존재자에 대한 이름이다. 의자의 본질은 앉는 것이다. 의자 다리가 부러져서 앉을 수 없으면 본질이 훼손된 것이고, 폐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인간의 본질은? 훼손되면 인간이 아니라고 할 만한 것이 인간에게는 없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 존재한다. 이것이 실존이다.


    문제는 규정되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인 인간을 억압적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집단들이 있다는 것이다. 국가, 사회, 가족, 관습, 도덕, 종교, 철학, 과학은 우리를 본질로 규정하려고 한다. 우리는 '국민'으로, '아들과 딸'로, '피조물'로, '이성적 존재'로, '회사원'으로, '군인'으로 규정되어 왔고, 스스로 그것이 자신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나의 본질이 아니며, 나는 본질을 가질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그렇다면 본질로 존재하지 않는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가? 나에게 뒤집어씌워진 본질을 하나씩 벗어내고 어떠한 규정과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나에게는 단지 세 가지만이 남게 된다. 그것은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규정되지 않고 절대적으로 자유로우며 실존하는 존재다.


    억압에 대한 거부, 절대적 자유.... 매력적인 말들이 많이 나오는데, 억압이 상시적으로 가동하는 현대사회에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일깨워주는 철학이라고 생각한다.


    3. 과학


    과학에서도 데카르트가 나온다. 해석기하학을 탄생시켰다. 그게 뭔데? 기하학과 대수학을 연결시키는 것이란다. 기하학은 점, 선, 면, 입체 등을 다루는 것이고, 대수학은 방정식인데.... 이걸 연결시켰다? 어떻게? 데카르트가 고안한 것은 좌표평면이다. x축과 y축을 갖는 평면 위에 도형을 놓고, 이를 문자로 표기하는 것이다. 데카르트 이전에는 기하학과 대수학이 따로였는데, 이걸 연결했단다. 그럼으로써 인류는 복잡하고 다양한 자연 세계를 수학의 언어로 서술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다음 뉴턴.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유명한데, 우리는 이것을 중력을 발견했다는 것으로만 알고 있는데, 그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몰랐다. 그런데 이게 의미가 있더라.


    뉴턴이 관심을 가진 만유인력이나 힘에 대한 역학은 기존의 과학이 가지고 있던 관심사를 확장했다는 의미를 갖는다. 갈릴레이나 케플러가 기하학을 통해서 자연적 '사물'들을 수학화했다면, 뉴턴은 그 사물들 간의 보이지 않는 '힘'을 수학적으로 정리해낸 것이다. 철학적으로 표현해보자면 기존의 물리학이 존재자에 관심을 갖고 그 존재자를 수학으로 표현하려 했다면, 뉴턴은 특정 존재자와 다른 존재자가 맺고 있는 관계를 파악하고 이를 수학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뉴턴으로 인해 물리학은 존재로부터 관계까지 모든 것을 수학으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이 이름들 뿐. 역시 그 의미는 잘 모른다. 여기서는 그것들을 간략하게나마 얘기해준다. 특히 물체 주변으로 시공간이 휘어진다는 설명을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데, 적절한 예시로 설명한다.


    매우 얇고 탄성이 좋은 사각형의 고무막이 있다고 해보자. 이 고무막의 네 꼭지를 팽팽하게 당겨서 고정한 후 볼링공을 가운데 올려놓는다면, 볼링공을 중심으로 주변의 고무막이 아래로 움푹 늘어날 것이다. 이때 볼링공의 주변에 탁구공을 놓아보자. 그러면 탁구공은 볼링공이 만들어내는 휘어진 고무막의 곡률을 따라 빙글 돌면서 볼링공에 와서 닿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볼링공이 탁구공을 잡아당긴 것처럼 보인다. 볼링공을 지구, 탁구공을 사람이라고 한다면 지구가 사람을 잡아당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지구의 질량이 만든 시공간의 곡률로 사람이 굴러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볼링공을 태양, 탁구공을 지루가로 한다면 태양이 지구에 가하는 중력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우리는 중력이 떨어지는 힘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시공간의 휘어짐 속에 닿은 것이라고 한다. 설명이 이해가 잘 된다. 그럼 블랙홀은? 질량이 아주 큰 물체가 있어서 그 물체가 만든 시공간의 휘어짐도 아주 커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 빛조자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이렇게 생각하니 약간 이해가 된다.


    그 다음 양자역학은 미시세계에 대한 물리학인데, 거시세계의 물리학과 미시세계의 물리학은 다른 법칙을 갖는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거리는 속도와 시간의 곱이라는 거시세계 물리학의 법칙이 미시세계에서는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시세계의 속도를 측정하려고 하면 측정자의 영향으로 속도가 변하고, 측정자의 영향을 줄이면 측정할 수 없고.... 그래서 코펜하겐 선언(물리량의 동시측정 불가능. 물리량은 관측의 영향을 받음). 그럼 양자역학은 과학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얘긴가? 불가지론인건가? 그건 아니고, 양자역학에서는 수학적 확률 안에서 비교적 정확하게 기술된다고 한다. 어떻게? 그건 어려운 건지 설명이 안 나와 있다. 거기까지만 이해하자.


    4. 예술


    예술 중에서도 주로 미술을 중심으로 얘기한다. 미술의 여러 사조들이 있는데 그동안 정리가 잘 되지 않았었다. 이 부분을 보면서 많이 정리한 것 같다.


    먼저 고대에서는 그리스와 로마의 미술이 있고, 중세에는 중세 교회 미술이 있는데 신 중심이고, 르네상스에 와서 인간적인 르네상스 미술이 나오고, 이에 대한 반발로 감상적인 바로크와 로코코가 나오고, 이에 대한 반발로 다시 이성으로 돌아가자는 신고전주의가 나오고, 이에 대한 반발로 인상을 중시하는 낭만주의가 나오고, 낭만주의에서 인상주의와 후기인상주의가 나온 후 여기서 현대미술로 넘어간다.


    세부적으로 해당하는 작가와 작품이 누군지는 간략하게만 나왔는데, 알만한 사람들이 나왔더라.


    5. 종교


    종교에 대해서는 최종정리에 잘 나타나 있어서 발췌해 본다.


    종교는 크게 절대적 유일신교와 상대적 다신교로 구분되었다. 우선 절대적 유일신교는 말 그대로 절대적 창조주를 신으로 상정한 종교였다. 특히 구양성서를 그 근간으로 하는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종교에 등장하는 야훼, 하느님, 알라는 모두 특정한 이름을 갖지 않는 절대적 '신' 그자체이며, 아담으로 시작해서 노아, 아브라함, 모세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민족의 유일신을 의미한다. 다만 이 세 종교는 구약 이후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에서 차이를 보였다. 유대교는 구약 이후에 메시아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그리스도교는 신약의 근간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아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슬람은 예수는 한 명의 선지자일 뿐이고, 마지막 예언자로서 무함마드가 왔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상대적 다신교는 베다의 철학에서 힌두교, 불교, 티베트 불교가 나왔고, 이들은 모두 개인의 깨달음을 통해초월적 존재로 나아가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래서 수행하고 정진하고 삶을 성찰하는 것을 강조한다. 


    읽으면서 기독교의 성경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성경의 여러 이야기들, 말씀들이 알게 모르게 우리 삶에 있는데, 그것들을 정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쉽게 쓴 성격책을 찾아봐야겠다.


    6. 신비


    신비는 죽음과 죽음 이후, 삶 등에 대한 이야기인데,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없어서 진리의 영역에 포함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삶 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넣었다고 한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니체의 영원 회귀이다. 이게 어디서 나왔느냐 하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네가지 태도에서 나왔다. 첫번째는 무. 없어진다. 끝. 단절이고, 두번째는 영생의 삶과 시간이 계속된다는 것. 영혼이나 정신이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 천국을 가거나 지옥을 가거나 하는 것을 말한다. 세번째는 반복, 즉 윤회이다.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 죽어서 소로 태어난다거나 하는 것. 네번째는 무한반복, 영원반복이다. 내가 살았던 삶을 그대로, 다시 사는 것이다. 20세기에 태어나서 자라고 죽은 X가 죽어서 다시 20세기의 X로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니체가 이 네번째 사후관을 제시했다고 한다.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시간이 있다. 하나는 인생이라는 긴 시간과 지금이라는 순간. 그런데 우리는 지금이라는 순간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희생하면서 참으면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럴 필요가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니체는 영원회귀 개념을 통해 정말 중요한 것은 인생의 목표나 인생 전체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임을 밝힌다. 영원회귀에 따르면 이 순간은 무한히 반복되는 삶 속에서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그래서 이 순간의 길이는 삶의 반복만큼 무한대로 길어진다. 반면 인생은 100년이라는 유한한 시간일 뿐이다. 순간과 인생의 길이는 역전된다. 순간은 무한한 길이를 갖지만 인생은 유한한 길이로 한정된다.

    만약 지금 이 순간이 힘겹고 고통스럽다면, 그 고통은 영원할 것이다. 반대로 지금 이 순간이 즐겁고 행복하다면 이 행복은 영원할 것이다. 니체는 우리에게 현명해질 것을 요구한다. 내가 지금 소모해버리고 있는 이 순간은 내가 영원히 반복해야 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을 낭비할 수는 없다. 영원히 반복될 이 순간을 위해 우리는 나의 삶을 창조해야만 한다. 지금 당장 행복해지도록 삶을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은 존재, 지금 이 순간을 소모하지 않고 최고로 행복한 순간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삶을 창조하는 존재, 이 존재가 니체가 말한 '초인'이다.


    영원회귀에서는 순간은 영원하고, 인생은 유한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순간을 소모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7. 정리


    역시 고등학생들에게 딱 맞는 인문교양서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해하기 딱 좋고, 내용도 알차다. 교과서로 써도 좋을 것 같다. 이 사람 강연을 들으면 어떨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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