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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 서울은 깊다: 서울에 대한 좀 더 깊은 이해행간의 접속/인문 2015. 1. 30. 22:55
서울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이 많아서 서울에 대한 책들은 어느 정도 읽어서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내가 많이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울의 삶, 풍습, 역사, 어원, 건축물, 근대 유물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얘기들을 꽤 깊이 있고 전문적으로 알려주는 책이다.
그 중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발췌해 본다.
이든 동이든 골목 안의 택지 구성은 기본적으로 똑같았다. 고관대작이 사는 큰 집이 막다른 집이 되고 그 앞으로 난 골목길의 좌우에 작은 집들이 닥지닥지 붙어 있는 꼴을 하고 있었다. 이들 사이에는 결코 가로지를 수 없는 신분과 경제력의 차이가 있었지만 그래도 이들은 이웃이었다. 불이 나도, 염병이 돌아도, 도둑이 들어도 같이 대처해야 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공동체'를 구성해야 했고, 그 안에서 일상적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런 구조에서는 골목 끝 고루거각에 사는 부자 나리가 같은 골목 안에서 굶주리는 이웃에 자선을 베풀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 의무감이라기보다는 일상적 관계가 만들어내는 연대의식이었다.
골목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보여주면서 그 골목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알려준다. 결론적으로 같은 지역에 임대 아파트가 있으면 분리하려고 하는 현대의 이기주의와 비교하면 계급간의 격차는 있지만 공동체를 만들 수 있도록 구성된 골목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정자에 대해서 우리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는 곳으로만 이해를 하고 있는데, 그런 기능 이외에도 정치적인 의도도 있다고 한다. 즉, 공식적인 관직체계가 몇몇 세도가문에게 넘어가면서 이들이 비공식적으로 회합하여 국가의 대사를 주무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서 정자가 생긴 것이다.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 사이에는 일종의 '공범의식'을 형성할 수 있는 아늑하고 안전한 공간, 곧 '아지트'로 사용할 수 있는 산속 정자가 다수 만들어진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요새도 비선 라인으로 정치를 주무르는 배후 세력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과거에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요새는 정자가 아니라 요정이나 호텔의 밀실 문화로 이어졌을 것이다.
어원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온다. 가게의 어원에 대한 얘기도 있다. 원래는 '가가'였다. 임시로 지은 가건물이었는데, 이 말이 오늘날의 '가게'가 되었다.
시장의 의미도 있다. '시'는 도시 한구석에 정연하게 정비된 상업구역이고, '장'은 행상이 몰려들어 교역하고 물러가는 곳이다. 따라서 시장이란 상설 점포가 밀집해 있으면서 동시에 매일이든 며칠 간격으로든 행상과 좌고가 시끌벅적하게 몰려드는 특정 공간을 말한다.
도깨비의 어원도 있다. 원래 개비는 가늘게 쪼갠 나무토막인데, 여기에 무엇인가를 덧씌우면 덧개비가 되고, 이 말이 변해서 도깨비가 되었다. 비슷한 말로 아무것도 없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보이면 허깨비가 된다.
팔각형의 의미도 있다. 팔각형은 사각형과 원의 중간 도형인데, 사각형은 땅이고, 원은 하늘이다. 팔각형은 결국 하늘과 땅을 연결하거나 하늘과 땅을 융합하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근대화 시기 서울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풍경을 깊이 있고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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