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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41] 삶을 위한 국어교육: 현실을 놓치지 않는 더듬이는 필요하다.행간의 접속/교육/청소년 2013. 6. 1. 23:55
이계삼 선생님이 우리교육, 함께 여는 국어교육, 녹색평론, 프레시안 등 각종 매체에 발표했던 국어교육 및 시사에 관한 글들을 2010년도에 모은 책이다.
1부는 삶, 사회, 국어교육으로 국어교육에 대한 사회적, 철학적, 인문학적인 생각들을 시사적인 내용을 포함하여 정리한 글을 모은 것이고, 2부는 삶을 위한 국어교육으로 함께 여는 국어교육에 연재했던 수업에 대한 생각들과 수업 사례들을 정리한 글들이다. 3부는 세상속으로라는 제목으로 교육을 넘어서 시사적인 일들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이다.
이 중 인상적인 부분들이 좀 있었는데, 발췌해 본다.
점점 더 파국의 기미를 짙게 드리우는 이 근대 자본주의 문명이 '어찌할 수 없는 본연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유구한 인간의 역사에서 이 시대는 아주 예외적인 상황임을 누군가는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아이들에게 다른 세계, 다른 욕망을 향하여 난 출구를 열어주는 것이 바로 고전 교육의 역할이다.
고전교육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다른 세계에 대한 출구를 여는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다시 보니까 지금의 세계에 대한 필연성에 대한 거부이자, 비판할 수 있는 근거로 고전교육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 이 시대, 자본주의에 살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이 세상이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텍스트의 육체성도 얘기한다. 텍스트를 직접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필사와 낭독이 바로 그것이다. 그냥 눈으로 읽는 것으로는 텍스트를 충분히 느낄 수 없다. 텍스트를 최대한 물질화하여 내가 느껴야 한다. 그러면 텍스트는 나에게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50분을 내내 수업을 한다고 할 때 학생들은 온 시간을 집중할 수 없다. 결국 여백이 필요한데 그 시간에 글쓴이는 여러 활동을 한다. 그 중에서 인상적인 것은 아무 생각 없이 창밖 바라보게 하기가 있다. 이런 낭비가 있을까 싶은데, 아이들은 그 시간 속에서 무위의 5분을 느꼈다고 한다. 5분 투자해서 진리를 얻는다고나 할까?
글쓴이는 또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고병권 선생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는데, 그 중 '교수하다'라는 말의 라틴어 어원에는 '고백하다'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자신이 그동안 문제시했던 것, 생각한 것, 배운 것을 고백하는 것이라니...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고백은 진실함을 바탕으로 해야 하는데, 나는 얼마나 진실했는지 되돌아보자니 차마 되돌아볼 수가 없다. 부끄러움 그 자체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현실주의에 대한 함정도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현실주의자라 믿는다. 그러나 그 현실감이란 대개 나날의 삶의 시야에 갇혀 자신이 속한 집단의 타성이 닦아놓은 길을 미끄러져가면서 얻은 윤활감이며, 눈앞의 이해관계에 갇힌 단견이기 쉽다. 현실은 그런 것이 아니리라.
현실주의와 타성을 구분해야 한다. 타성에 빠지면서 현실적이라고 포장하는 것은 현실주의가 아니다. 그럼 현실주의는 뭐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는 것? 잘 모르겠다.
교사로서 수업하기도 바끈 가운데에서도 깊이 있는 성찰과 내밀한 필력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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