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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1] 가던 새 본다: 털털한 삶, 털털한 무거움행간의 접속/문학 2013. 3. 12. 23:56
한창훈의 소설집이다. 토속적인 언어로 서민들의 삶을 그리는 작가의 색깔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작품집이다.
「가던 새 본다」는 할머니의 말년 모습을 통해서 지나온 삶에 대한 회한과 죽음에 임하는 자세 등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할머니와 손자의 거리감이 오히려 할머니의 모습을 객관화시켜서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숭어」는 섬마을에 돈 받고 시집 온 아내와 사는 섬마을 남자의 이야기이다. 그냥 시골도 아니고 물일까지 해야 하는 섬마을에서 적응하기 힘들 수 밖에 없어서 자꾸 육지로 가자는 아내를 어떻게든 눌러 앉히려고 애쓴다. 몇 번이고 가출했지만 결국은 돌아오는데 살기 힘든 현실이 무겁지 않게 그려져 있다.
「행어」는 젊은 시절 같은 마을에 살던 두 남녀가 몸과 마음을 나누었지만 여러 상황으로 헤어지고 다른 인연을 가진 사람들과 결혼을 했다가 20여 년이 지난 후에 뱃일을 하다 만나서 아스라이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거친 삶 속에서 아련하게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애틋하다.
「1996 겨울」은 김승옥의 「서울 1964 겨울」을 약간 본따서 만든 작품인데, 변두리 성인물 동시 상영관에서 우연히 만난 세 남자가 비루한 삶을 서로 나누는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김승옥의 작품처럼 무겁지는 않다.
「입덧」은 농민 운동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전염병으로 생강 농사를 망치게 되자 농민회 차원에서 정부에 항의를 하는 내용이 주된 이야기이고, 그 주변에 풍물 이야기, 과거 운동하던 이야기, 가족들 이야기, 아내의 입덧 이야기 등이 자연스럽고 짜임새 있게 녹아들어가 있는 작품이다. 희망을 풍물 속에 녹여서 부드럽게 이야기한다.
그 뒤의 작품들도 있는데 완성도가 좀 떨어지는 느낌이다.
사투리가 주는 현장감 있는 현실 밀착형 대화체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면서 몰입하게 만든다. 그래서 읽게 되었는데 실망시키지 않는다. 전라도 출신이면서도 충청도 사투리까지 잘 묘사해내는 것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문구와 교류해서 그런가?
본문도 본문이지만 한창훈의 털털한 일상의 모습을 담은 동향 시인 유용주의 발문도 재미가 있었다. 작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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