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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63] 도가니: 그래도 싸워야 하는 이유
    행간의 접속/문학 2012. 11. 4. 00:30

     


    도가니

    저자
    공지영 지음
    출판사
    창비 | 2009-06-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거짓과 폭력의 도가니 속에서 피어난 용기와 희망!우리 문단의 대...
    가격비교

     

    이제 읽었다. 원래 베스트셀러니 화제의 책 같은 것들과는 무관하게 나의 취향대로 책을 읽는 스타일인데, 요즘 문학 관련 책을 읽은지가 오래 된 것 같아서 소설 읽을 생각을 했고, 도서관에서 반납된 책들을 살펴보던 중에 이 책이 있어서 읽게 되었다.

     

     

    1. 감정이입

     

    앞부분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이 불길한 느낌, 지옥과 같은 불구덩이 속에, 진흙탕 개싸움 속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과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숙명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을 내가 느꼈다는 것이다. 나 자신도 교사이면서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 주인공 강인호에 감정이 이입되어 한판 싸움을 벌인 것 같았다.

     

    2. 무진에 대해서

     

    배경이 되는 무진이라는 도시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김승옥의『무진기행』에 나오는 가상의 도시인데, 여러 가지 면에서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다. 남자 주인공이 아내와 자식을 서울에 남기고 내려온다는 점, 그리고 그 남자가 내려오도록 손을 쓴 사람이 아내라는 점, 무진에서 남자 주인공은 여러 부조리한 면을 보고 갈등한다는 점, 그리고 그 부조리한 면이 무진이라는 이름처럼 안개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점, 마지막에 남자 주인공이 아내의 요구에 따라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지 못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것 등이 비슷하다. 한가지 다른 점은 이 소설의 주인공은 그 부조리한 면에 그래도 적극적으로 대항한다는 점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일종의 오마주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3. 제목에 대해서

     

    '도가니'라는 제목은 서유진이 무진의 부조리한 상황을 "이 무슨 미친...... 광란의 도가니야?"하는 부분에 처음 쓰였고, 뒤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한 번 더 쓰인다. 그것으로 봤을 때 부조리한 상황들이 한데 모여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읽으면서 그 의도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내 개인적으로는 확~ 와닿는 느낌은 아니었다. 부조리함을 더 드러내는 제목이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4. 진실에 대해서

     

    중간 정도 읽다보면 언론에 자애학원의 비리가 폭로되면서 여러 측면에서 유리한 상황을 선점하는 내용이 진행되는데 작가는 진실에 대한, 정확하게는 진실의 게으름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복선을 깐다. 진실의 게으름이라니?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더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

     

    아... 이런 생각을 하다니. 기가 막히다. 진실이 우리에게 불편한 것은 그것이 너무 진실해서 그런 것이었다. 진실이 승리하지 못하고 외면당하는 것도 그런 것이고...

     

    5. 가진 자들

    강인호와 서유진의 반대편에는 가진 자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것을 갖고도 왜 그렇게 목숨 걸고 싸우고, 거짓말 하는지에 대해서도 작가는 생각한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 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의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거짓말의 합창은 그러니까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포함하고 있어서 맑은 하늘에 천둥과 번개를 부를 정도의 힘을 충분히 가진 것이다.

     

    이런 생각 정말 공감된다. 작가의 치밀함이 돋보인다.

     

    6. 싸우는 이유

     

    서유진과 강인호가 힘든 싸움 속에서 좌절하고 흔들리기도 한다. 둘은 술을 마시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유진이 이 싸움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서유진의 아버지는 목사님이고,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싸움을 하다 고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다. 그 아버지의 얘기를 한다. 길지만 인용한다.

     

    사춘기 무렵부터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생각했어. 왜 세상에서는 착한 사람이 맞고 고문당하고 벌받고 그리고 비참하게 죽어가나? 그럼 이 세상은 벌써 지옥이 아닐까? 대체 누가 이 질문에 대답해 줄 것인가? 누군가 그러더라. 엄마였던가, 선생님이었던가, 아님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다른 목사님이셨던가.... 아니면 그 사람들이 모두 그랬던가. 열심히 공부하고 그래서 어른이 되면 모든 것을 알게 될 거라고. 그리고 나도 그 말을 믿었지. 그런데 얼마 전, 자애학원 사건을 접하면서 나는 깨닫게 된 거야. 어른이 되면 그 대답을 알게 되는 게 아니라, 어른이 되면 그 질문을 잊고 사는 것이라고 말이야. 이제 나는 정말 그 질문에 대답하고 싶어. 그렇지 않다면 내 아버지의 삶도 연두와 연두 아버지도 너도 나도, 우리의 삶은 정말 꾸드러빠진 떡조각처럼 무의미해질 거야. 가난한 것도 두렵지 않고 고통도 그리 무섭지 않아. 내게 가해진 모든 평판들 소문들도 자기네들끼리 실컷 지껄이라지. 하지만 의미가 사라지는 것, 뭐랄까, 우리의 삶이 그냥 먹고 싸는 것, 돈을 모으고 옷을 사고 하는 그 너머의 무엇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나는  확인하고 싶어. 그렇지 않다면 살아가는 걸 견딜 수 없을 거 같아.

     

    생존을 넘어선 가치 있는 무언가를 쥐고 있는 것, 의미있는 거을 지키면서 역사를 진보시키는 사람들의 모습을 얘기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서유진이 장경사의 차를 우연찮게 얻어 탔을 때, 장경사가 충고를 한다.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여기에 서유진이 말한다.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

     

    그렇다. 이 싸움은 나를 지키는 싸움이고, 나의 양심을 지키는 싸움이다. 누구를 바꾸고, 세상을 바꾼다는 생각, 사치고 허영이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자신의 딸 세미가 고통받고, 불행해질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인호에게 유진은 자신의 경험을 얘기해주면서 무엇이 진정으로 세미를 위하고, 후세를 위하는 것인지 얘기한다.

     

    우리 아버지의 삶과 죽음은 인류의 반 이상이 겪는 그 어쩔 수 없는 가난과 편모라는 핸디캡 속에서 오히려 내가 왜 귀하고 자랑스러운 사람인지, 그 이유가 되어주셨어. 아버지 때문에 나는 그냥 남루하고 그냥 불쌍한 편모슬하가 아니었다구. 내가 불쌍하고 불행한 적이 있다면 그건, 나도 가끔은 뻔히 아니라는 걸 알면서 그것과 타협하고 싶어질 때야.

    .

    서유진의 이런 얘기들. 이게 작가가 하고 싶은 얘기고, 곧 주제다.

     

    7. 결말에 대해서

     

    힘겨운 싸움 끝에 법정에서 교장과 행정실장은 집행유예, 생활지도교사는 징역을 받는다. 그리고, 학생들은 전학을 가거나 생활 공동체를 꾸려 새로운 생활을 해나가고,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교육청에 관선이사 파견, 공립화를 요구하며 새로운 싸움을 진행한다. 그러는 가운데 인호는 농성장에 경찰이 투입된다는 얘기를 듣고 빨리 와달라는 연락을 받는다. 아내에게 이 싸움의 의미 등을 담은 편지를 써놓고 아내 머리 맡에 놓아두기까지 했지만 그는 아내 곁을 떠나지 못하고, 농성장에 가지 않고 서울로 올라간다.

     

    어떻게 비겁해 보이는 이 행동이 소설을 더 현실적으로 만들고, 주인공에 대해서 독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약한 존재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주인공이 다시 싸움의 한복판에 서서 정의를 위해, 지켜야 할 가치를 위해 싸우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를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만약 나라면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된다. 인호가 정말 힘들게 고뇌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농성장에 가는 것보다는 아내를 따라 가는 것이 더 타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게 삶이고, 그게 현실일 수 있다.

     

    8. 영화에 대해서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계속 생각했는데, 영화는 보고 싶지 않다. 책만으로도 충분히 먹먹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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