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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카페에서 작가를 만나다: 미적 감수성의 필요성
    느낌의 복원/뮤지컬/연극/공연/전시 2012. 4. 24. 11:10

    어제 대학로 예술가의 집에서 철학가 김용규 진행으로 시인 김선우를 만나는 행사다. 단순히 시인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연극배우들이 낭독공연도 하고, 김용규의 철학강좌도 있고, 김선우 시인과의 대화도 있다. 김선우 시인은 잘 모르는데 주변 사람들이 같이 가자고 해서 갔다.

     

    시가 괜찮았다. 시어의 의미가 손에 닿을 듯 말 듯한 애매한 느낌이 좋았고, 그 애매함 속의 분명함도 빛이 나서 좋았다. 특히 표제시인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와 "내꺼"라는 두 개의 시가 인상적이었다. 앞의 시는 2011년 희망버스를 통해서 보여준 혁명의 희열과 가능성을, 뒤의 시는 소유의 의미에 대한 성찰이 돋보였다.

     

    시인과의 대화 가운데에서 강정마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시인은 자기가 가장 화가 나는 것은 미학적 감수성이 없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보지 못하는 무식한 지도자들이 지배하는 세상의 폭력성이라고 했다. 강정마을의 자연을 그렇게 파괴하면 그 자연을, 그 생태계를, 그 생명들을 인간이 만들 수 없는데, 인간의 욕심으로, 인간의 이기심으로 그렇게 짓밟히는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들으면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모두 시인이나 소설가로 만들 수는 없어도 최소한 미학적 감수성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사는 처음 기획하다 보니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너무 길었다. 퇴근 후 두 시간을 꼬박 앉아있기 쉽지 않다. 그리고, 낭독공연과 강연과 시인과 대화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따로 돌았다. 그러다보니 세 개 중 어디에 초점이 모아져야 하는지도 애매했다. 어느 하나를 중심에 잡고 나머지는 그것을 위한 부수적인 것으로 역할 분담을 다시 하면 돋보일 것은 돋보이면서 지루하지 않을 것 같다.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2011년을 기억함

     

    그 풍경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신을 만들 시간이 없었으므로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가녀린 떨림들이 서로의 요람이 되었다

    구해야 할 것은 모두 안에 있었다.

    뜨거운 심장을 구근으로 묻은 철골의 크레인

    세상 모든 종교의 구도행은 아마도

    맨 끝 회랑에 이르러 우리가 서로의 신이 되는 길

     

    흔들리는 계절들의 성장을 나는 이렇게 읽었다

    사랑합니다 그 길밖에

    마른 옥수숫대 끝에 날개를 펴고 앉은 가벼운 한 주검을

    그대의 손길이 쓰다듬고 간 후에 알았다

    세상 모든 돈을 끌어 모으면

    여기 이 잠자리 한 마리 만들어낼 수 있나요?

    옥수수밭을 지나온 바람이 크레인 위에서 함께 속삭였다

    돈으로 여기 이 방울토마토 꽃 한 송이 피울 수 있나요?

    오래 흔들린 풀들의 향기가 지평선을 끌어당기며 그윽해졌다

     

    햇빛의 목소리를 엮어 짠 그물을 하늘로 펼쳐 던지는 그대여

    밤이 더러워지는 것을 바라본지 너무나 오래 되었으나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번져온 수많은 눈물방울이

    그대와 함께 크레인 끝에 앉아서 말라갔다

    내 목소리는 그대의 손금 끝에 멈추었다

    햇살의 천둥번개가 치는 그 오후의 음악을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우리는 다만 마음을 다해 당신이 되고자 합니다

    받아줄 바닥이 없는 참혹으로부터 튕겨져 떠오르며

    별들의 집이 여전히 거기에 있고

     

    온몸에 얼음이 박힌 채 살아온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해

    빈 그릇에 담기는 어혈의 투명한 슬픔에 대해

    세상을 유지하는 노동하는 몸과 탐욕한 자본의 폭력에 대해

    마음의 오목하게 들어간 망명지에 대해 골몰하는 시간이다

     

    사랑을 잃지 않겠습니다 그 길밖에

    인생이란 것의 품위를 지켜갈 다른 방도가 없음을 압니다

    가냘프지만 함께 우는 손들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을 위해 눈물 흘리는

    그 손들이 서로의 체온을 엮어 짠 그물을 검은 하늘로 던져 올릴 때

    하나씩의 그물코,

    기약 없는 사랑에 의지해 띄워졌던 종이배들이

    지상이라는 포구로 돌아온다 생생히 울리는 뱃고동

    그 순간에 나는 고대의 악기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태어난 모든 것은 실은 죽어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말한다

    살아가고 있다!

    이 눈부신 착락의 찬란,

    이토록 혁명적인 낙관에 대하여

    사랑합니다 그 길밖에

    온갖 정교한 논리를 가졌으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옛 파르티잔들의 도시가 무겁게 가라앉아 가는 동안

    수 만 개의 그물코를 가진 하나의 그물이 경쾌하게 띄워 올려졌다

    공중천막처럼 펼쳐진 하나의 그물이

    무한 하늘 한 녘에서 하나의 그물코가 되는 그 순간

    별들이 움직였다

    창문이 조금 더 열리고

    두근거리는 심장이 뾰족한 흰 싹을 공기 중으로 내밀었다

    그 순간의 가녀린 입술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나는 들었다 처음과 같이

    지금 마주본 우리가 서로의 신입니다

    나의 혁명은 지금 여기서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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