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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36] 여성주의, 남자를 살리다: 남성과 여성을 넘어 인간으로...
    행간의 접속/사회 2010. 11. 11. 10:45

    여성주의남자를살리다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복지 > 여성학 > 여성학/페미니즘
    지은이 권혁범 (또하나의문화, 2006년)
    상세보기

    여성주의에 관한 여성들의 글에서 읽던 내용을 남성의 글에서 읽으니 처음에는 식상했는데, 읽을수록 공감이 간다. 여기저기 쓴 글들을 모아서 편집한 것이라 비슷한 내용이 반복되기도 해서 약간 아쉽긴 하지만 크게 부자연스럽지는 않다. 인상적인 내용들을 한 번 뽑아봤다.
    사랑을 시작하는 문화는 널려 있다. 직접 쓴 시를 선물하고 꽃을 바치며 우아한 레스토랑에서 촛불과 함께 데이트를 즐기는 식의 시나리오는 풍부하다. 그러나 이별의 문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별을 금기시하고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사건으로 생각하는 문화에서 헤어짐의 시나리오는 희귀하다. (중략)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사랑하고 때로는 헤어지는 게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헤어짐이 꼭 배신은 아니다. 사기를 쳤거나 돈을 떼먹은 게 아니라면 그것은 그저 사물의 변화 법칙의 결과일 뿐이다. 마음이 변한 그녀를 조용히 떠나 보낼 수는 없을까? 떠나는 은수를 위해서 마지막으로 들국화 한 다발쯤은 보낼 수 있는 남자는 없는가? 그것은 상대를 독립된 주체로 바라보는 그래서 그의 어떠한 최종적 선택도 결국은 수용해야 한다는 성숙한 생각, 그러한 세심한 생각을 키우고 배려하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사랑도 변심도 자유다.
    헤어질 때 감정에 파묻히는 광경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 번쯤 다른 풍경도 그릴 수 있는 여유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얘기이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쿨하게~
    '영원한 사랑'에 대한 강박적 믿음이야말로 사랑을 방해하는 큰 요인이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신화 때문에 연인들은 사랑을 겁내고 사랑의 상처를 두려워하고 사랑을 깰까 봐 노심초사한다. 영원성의 환상을 깰 때 우리는 사랑에 '쉽게' 몰입할 수 있고 '쉽게' 빠져나올 수 있다. 이게 우리 시대의 경박한 사랑 풍조라고? 기간이 중요한 게 아니고 진정성이 중요하다. 24시간이건 열두 달이건 아무런 이해타산 없이 미래에 대한 불안 없이 헌신적으로 몰입하는 사랑 말이다. 누군가 사랑이 밥 먹여 주냐고 반문한다. 밥 먹여 주지 못한다. 그러나 삶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근원적 행복을 준다. 영혼을 먹여준다.
    쿨한 얘기 또 나온다. '기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진정성이 중요하다'는 말이 콱 박힌다. 정말 세상의 연인들에게 말해주고 싶고, 다른 사람의 사랑을 함부로 말하는 사람에게도 콱 박아주고 싶다.
    주례사의 조건
    1. 결혼식은 검소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창조적으로 준비되고 진행되야 한다. 시장 바닥 같고 천편일률, 소비 지향적인 결혼식은 반대한다.
    2. 신랑은 단독 입장, 신부는 아버지에 이끌려 입장하는 성차별적인 방식은 받아들일 수 없다. 둘 다 단독 입장하거나 아니면 양쪽 다 부모님과 함께 입장해야 한다. 폐백도 양가 부모님께 모두 올려야 한다. 아니면 아예 하지 말든지.
    3. 신부와 신랑은 결혼 후에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무엇보다도 모든 형태의 성차별에 반대하고 서로 평등하고 대등한 인격적 관계를 유지할 것을 맹세해야 한다. 특히 가사 노동을 50대 50로 나눠 분담할 것, 딸 아들 구별/차별하지 않을 것, 친정/시가를 차별하는 어떤 말과 행위도 하지 않을 것을 약속해야 한다.
    4. 신부와 신랑을 결혼 후에 되도록 검소하게 독립적으로 사며 생태계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5. 신랑은 혹 가정 위기의 순간이 왔을 대, 특히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결정적인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날 때도 아내의 편을 확고히 들어야 한다.
    6. 당연히 평생 사랑하고 백년해로할 것을 맹세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일은 모르는 법. 불행한 결혼 생활보다는 이혼이 낫다. 이혼을 금기시, 범죄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혹 두 사람의 관계에 결정적 파경이 왔을 때는 흉기나 주먹을 사용해서 희망없는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지 말고 서로 재산 및 양육 문제를 공평하게 해결하며 깨끗이 헤어질 것을 맹세해야 한다. 사랑은 자유다.
    자기 제자들 중에서 주례를 부탁하는 사람이 있으면 위 조건을 받아들여야만 주례를 서주겠다는 말이다. 1번에서는 신선했지만, 6번까지 오면 충격적이다. 그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 결혼식에서는 이행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내 제자들에게 이 조건을 요구하며 주례를 서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 아이들이 어떻게 '비인간적'으로 '반자연적'으로 자라나는지는 모두 다 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비디오 교육, 학습지, 열 군데 학원 돌리기로 맹훈련하는 가운데 아이들은 점점 어떤 표준적인 '관념', 자신의 몸과 마음속에서 스스로 키워 낸 관념이 아니라 외부에서 만들어서 주입한 관념의 포로가 되어 간다. 문자 언어와 표준적인 이미지를 과도하게 접촉한 아이들은 무한한 창조적 상상력과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이 망가진다. 다양한 신체 움직임에서 오는 기쁨, 자연 속에서 뛰어 놀며 얻는 기쁨, 그리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느끼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게임방과 비디오와 영어가 악은 아니다. 그것들은 그 나름대로 필요하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도 아니고 놀이와 자연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아이들에게 제공되어야 할 교육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특히 유아들에게는 아무런 선험적인 관념이나 메시지를 갖지 않는 환경을 제때에 제공하는 것이다. 자연을 바라보며 아리는 아무것도 읽지 않고 해독하지 않는다. 문자 언어를 습득하지 않은, '도덕 교육'을 받지 않은 유아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것은 그저 인간에게 어떤 총체적인 이미지로 다가올 뿐이다. 따라서 거기서 언어로 환원되지 않는 우주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이 마음의 일부로 자리 잡게 된다. 그 자연은 참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온다.
    아내가 임신을 해서 아기를 갖고 있는데, 벌써부터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걱정이 앞선다. 경쟁 사회 속에서 낙오자로 놓아둘 수는 없고, 그렇다고 다른 아이들을 밟고 올라서라고 할 수도 없고, 대안적인 교육 방법이 주변 가까이에 있는 것도 아니고, 뜻은 좋으나 방법을 알 수 없으니 쉽지 않다. 아내와 뜻이라도 맞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으니 참 쉽지 않다.

    그리고 극기훈련을 싫어하는 이유도 들고 있다. 아이들을 극기훈련을 통해서 인간개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부정한다. 또한 다양한 기질을 무시하고, 획일적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에 반대한다. 그리고 개조의 대상이 되는 기질들, 가령 유약하고 세심한 성격 등이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이런 극기훈련을 통해 다양한 조건과 기질을 무시하는데, 이것은 사회적 기준을 절대선으로 가정하고, 이 선을 벗어나는 기질과 성격을 가진 아이들을 왕따시키도록 강제한다. 따라서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자기를 숨기고, 부정한다. 그러면서 남에 대한 배려, 협업, 차이의 인정은 없어진다. 이것이 극기훈련을 반대하는 이유이다. 나도 동의한다.

    남성과 여성을 넘어서 인간적으로 사는 삶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는 책이다. 아내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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