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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7]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진정한 균형을 위하여
    행간의 접속/사회 2011. 3. 22. 12:55
    왼쪽으로더왼쪽으로당신들의대한민국세번째이야기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 각국사회/문화 > 한국사회/문화
    지은이 박노자 (한겨레출판사,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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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자 교수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제 3권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 사건들에 대해 발언하면서 우리 사회의 폭력성과 야만성, 비합리성에 대해 끊임없이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부분 1권, 2권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그중에서 인상적인 내용들을 뽑아보았다.

    먼저 진보에 대한 얘기를 한다. 특히 20대의 절반 정도가 스스로 '진보'라고 규정하지만 민주노동당의 지지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애기한다.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겠지만 그중 하나는 민주노동당 진보의 문화적 '코드'가 그들을 만족시킬 만한 수준이 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구호는 '진보'였지만 당의 현실을 지배한 것은 보수적인 장유유서 원칙과 패거리적 정파 등 지하 서클 시대로부터 물려받은 조직 매커니즘이다.

    그러면서 외국 진보정당의 사례도 얘기한다. 외국은 20대 활동가들을 체계적으로 발굴하여 그들이 국회의원에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일상적인 정치활동을 할 수 있는 분위기이다. 우리나라 정계에서 20대는 보좌관 정도가 아닐까?

    그 다음으로 우리 사회가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 얘기한다. 우리나라의 문제를 자질이 부족한 대통령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통령이 바뀌면 문제가 해결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대통령보다 오히려 사법부가 더 위험하다고 글쓴이는 말한다. 떡값검사 명단을 발표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를 집어넣겠다는 검찰과 법원이 그 근거이다. 도둑 잡으라는 사람을 오히려 도둑놈 취급하는 형국이다. 그래도 양식있는 판검사가 있어서 막 가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대학 업자들은 훨씬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고교부터 등급화시켜 입학시키고, 결국은 재산에 따라 입학을 허가하는 제도를 공공연하게 주장한다. 그래도 대학에 대해서 쓴소리를 하는 언론이 좀 있지만, 이보다 더 위험한 조직은 종교계이다. 종교계는 그들에 대해서 거론하는 것 자체도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거기다가 노조관료들도 여기에 한 발을 들여놓는다. 조합의 특권을 위해서 비정규직을 희생시키는 모습에서 기득권을 지키기에 몰입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대통령이 바뀌어도 사회에 뿌리깊게 박혀 있는 보수 기득권층이 바뀌지 않는 이상 이 사회의 보수성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럼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진보정당이 정당다운 노릇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쉽지 않아 보인다. 아무튼 우리 사회의 보수를 잘 보여준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급진적 개혁이라고 하는데, 거의 혁명에 가까운 얘기도 한다.

    '급진적 개혁'이란 피를 흘려 이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고서 쟁취할 수 있는 '최대한'을 의미한다. 우선 일부 대형 기업들을 국유화해야 한다. 이를 통해 추진할 급진적 개혁의 내용이란, 예컨대 무엇보다 먼저 '토건 국가 예산'을 '교육, 복지 예산'으로 바꾸어 무상교육, 무상의료의 실천을 통해 경기 부양을 도모하는 것, 부동산 보유세 등 부유층을 집중 겨냥하는 각종 부유세를 징수하고, 부동산 투기 적발 시에 투기로 벌어들인 재산을 모두 몰수하는 것, 대학 평준화와 '명문대' 개념을 불식시키기 위해서 최대한의 국가적 노력을 기울이는 것, 대기업 이사회에 노조 대표가 꼭 참여하여 노동자들이 경영에 활발히 참여할 수 있게 관련 법률을 개정하는 것, 남북한 간의 공통 군축으로 국방 예산을 줄이고 교육, 복지 예산을 늘리는 것 등이다.

    정말 이정도면 혁명이다. 기득권층은 불만이겠지만 정말 좋겠다. 그리고 마르크스의 글 중에서 가장 사랑하는 글도 인용했다.

    노동의 소외란 무엇인가? 첫째, 노동이 노동자에게 외재적이라는 사실이다. 즉 노동이 노동자의 실존에 속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노동자는 그 노동을 통해 자신을 확립하지 못하고 그 반면 자기 자신을 부정한다. 노동자는 노동으이 과정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불쾌감을 느끼며, 유쾌한 심신의 기운을 발산하지 못하는 반면, 그 심신을 파괴시킨다. 노동자는 노동하지 않을 때만 행복감을 느끼고, 오히려 노동할 때 불행하다고 느낀다. 노동하지 않을 때 자신의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고, 노동할 때는 '바깥'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즉 그의 노동이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요받은 노동이다.

    강요받은 노동이라... 그러나 노동 뿐이겠는가? 학생들의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마음은 아닌데 해야 하니까 하는 공부도 마찬가지이다. 공부의 소외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오슬로 대학에서의 경험을 얘기하면서 한국 대학과 비교를 해본다.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어 과정에 대한 수요가 너무 적어서 강좌를 폐지하려고 한다. 그래서 담당교수인 자기에게 먼저 와서 의견을 물었고, 자기는 그래도 필요하다고 했지만 결국 폐지했다. 그 대신 주변의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들으면 학점으로 인정해준다고 했고, 현 재학생들은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치하였다. 결론은 폐지였지만 그 과정에서 오슬로 대학이 진행한 과정은 기본을 지켰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대학이었으면 어땠을까? 한국의 대학이었다면 학생들과 교수들의 의견은 들을 생각도 하지 않고 불도저식으로 학과를 폐지했을 것이다. 그 학과가 아무리 희귀한 학과라도... 어쩌면 희귀한 학과이기 때문에 폐지했을 것이고.... 실제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대학이 어떤 이념을 갖고,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 없이 기능적으로만 생각하니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들이...

    국내 대학들이 "세계적 대학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돈이 필요하다"며 앞 다투어 학생들에게 무리한 등록금 인상을 강요하지만 '세계적 대학'은 돈이 아닌 기본적인 상식과 민주적 절차, 학생들의 학습권에 대한 존중으로 만들어지는 법이다. 당사자와의 충분한 협의도 없이 폐과 조처를 내릴 수 있는 대학이라면 과연 외국의 우수한 학생과 교수들이 몰려올 것인가? '세계성'이란 돈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학습자와 학문, 앎에 대한 존중으로 얻어지는 것이다.

    대학은 기업과 다른 곳이다. 그러나 기업에 너무 가까워지는 느낌이다.

    글쓴이는 91년도에 한 학기동안 고대를 다녔다는데, 그 때의 경험이 너무 인상깊어서 한국과 지속적인 인연을 맺고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 다음 해에 내가 입학했는데, 그 때는 다시 러시아로 돌아간 뒤였다고 한다. 그와 같이 학교를 다녔을 수도 있었을 뻔 했다는 것이 신기하고 같이 다니지 못한 것은 약간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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